4차 항암 전날, 삭발을 하기로 했다.
세영 씨가 일하는 미용실이 프라이빗한 공간이 아니라 거기서 삭발을 하기엔 좀 힘들 거 같아서, 세영 씨 집에 가서 깎기로 했다. 나 같은 암환자에게 머리를 밀어보는 건 세영 씨도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하얀색 욕조에 걸터앉았고, 욕조 바닥에 신문지를 잔뜩 깔았다.
"언니 지금 밀까? 민다? 언니, 자르기 전 지금 머리 사진 찍어둬야 하는 거 아닐까?"
세영 씨는 계속 미안해하며 주저했다. 나는 괜찮으니, 그냥 쭈욱 밀라고 하며 머리를 내밀었다.
윙 소리가 나며 얼마 안 남은 내 커트 머리가 밀렸다. 두피에 찌릿한 통증도 시작되고 있었고, 사방으로 떨어지는 머리카락 전쟁으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나는 머리가 깎여 나가는 게 오히려 시원했다.
세영 씨는 깎으면서도 "언니, 미안해~ 괜찮아?" 하며 내가 괜찮은지 계속 확인했다.
내가 "나 너무 시원하다. 괜찮아!" 하니까 그제야 마음을 놓는 거 같았다.
바닥에 떨어지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보고 있으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2달 전 유방암 판정을 받고 7월 초에 의사 선생님을 만났을 때 담당 간호사 바바라에게 탈모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나는 여러 부작용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아마존에 저렴한 가발도 많으니 비싼 거 사지 말라며 농담처럼 말할 땐, 항암 치료는 나에게 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머리를 삭발하기 전까지는 모든 일상이 그전과 같았다. 아무도 내가 암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머리를 깎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암환자 딱지가 붙는 것 같았다.
머리를 다 밀고 욕조에서 나오며 얼핏 거울에 마주한 내 모습이 벌거벗은 듯 너무나 민망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어색하다. 연예인들은 항암 치료 중 삭발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sns에 공개도 하더구만, 나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나 그냥 비구니인데?" 하며 웃으니 세영 씨는 "그래도 이 상황에서 언니가 웃으니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어차피 머리를 삭발해야 하니 미리 아마존에서 가발을 여러 개 주문했었다. 그런데 주문하는 족족 실패하는 바람에 모두 반품했다. 품질도 별로였고, 너무 어색해서 그 가발을 썼다가는 서프라이즈 재연 배우하러 달려가야 할 판이었다.
그러다 CCS(Canadian Cancer Society) Prince George Wig Bank에서 암환자들에게 가발을 무료로 대여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하는 스타일을 이야기하면 사진을 몇 개 보내주고 그중에서 선택해서 골라 받을 수 있다. 나는 그곳에서 내 머리 스타일과 비슷한 인모 가발 하나를 받아뒀었다. 아마존 가발보다는 괜찮았지만 그 가발은 무겁고 워낙 앞머리숱이 많아서 스카프라도 하나 둘러야 표시가 덜했다.
일단은 세영 씨 집에 갈 때 필요해서 그 가발을 가져갔었다. 삭발한 머리를 감추고 싶어 얼른 가져간 가발을 썼다. 거기에 두건까지 두르니 세영 씨가 "인제야 정희언니 같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날은 Wellspring Cancer Support 센터에서 암환자들을 위한 "Look Good, Feel Better"라는 무료 워크숍이 있는 날이었다. 병원에서 줬던 팸플릿에서 보고 예약을 했는데 마침 우리 집 근처였다. 오며 가며 봤던 예쁜 건물이 암환자들을 위해 자원봉사하고 지원하는 단체였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암환자들은 항암 치료 때문에 머리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눈썹이 빠지기도 하고, 눈밑이 까매지거나 얼굴색이 변하기도 한다. 워크숍에서는 암환자들이 자신 있게 살 수 있도록 눈썹이 없을 때 이쁘게 그리는 방법, 생기 있게 화장하는 법, 감염을 예방하며 깨끗하게 화장품을 쓰는 습관, 머리 관리법과 가발 쓰는 법 등을 알려 주신다.
워크숍에는 나를 포함한 4명의 암 환자들이 와 있었다. 두 명은 삭발을 한 채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고, 한 분은 가발이었는데 굉장히 자연스러워서 말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나는 그날 세영 씨에게 삭발을 하자마자 처음으로 가발을 쓰고 이곳에 들른 거였다. 내 머리가 가발인지 알았을까? 내심 궁금했다.
두 분은 삭발한 지 오래되셨는지 몰라도 민머리를 내놓고 있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서구인들의 두상은 동그랗고 이쁘기도 하지. 게다가 금발이라 조금 자란 머리도 색이 옅어 우리처럼 새까만 점처럼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 삭발 자체가 잘 어울리는 두 분이기도 했다.
기초 화장품부터 색조 화장품까지 모두 갖춘 화장품 키트도 주시고, 고민거리도 함께 나누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이 날 날씨가 좀 덥기도 했지만, 내 가발이 워낙 두껍고 무거운 데다 두건까지 하고 다니다 보니 머리에 비니를 몇 겹 쓰고 있는 것처럼 더웠다. 많이 갑갑하기도 했다. 나는 집에 가자마자 가발을 훌렁 벗어던지고, 지윤 씨가 집에서 쓰라고 선물해 줬던 수술용 스크럽 캡처럼 생긴 면두건을 썼더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캘거리에서 1시간 30분 거리인 캔모어에서 일하는 남편은 원래는 주말에만 집에 오는데, 요즘은 목요일에 있을 항암치료에 같이 가기 위해 수요일 밤에도 집에 온다. 남편이 집에 오자마자 나를 보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오늘 수고했다며 기특해했다. 나는 그래도 절대 내 삭발한 머리는 못 보여주겠다고 하니 이해한다고 했다. 잘 때도 면두건을 쓰고 잤다.
남편은 캘거리로 이사 온 뒤부터 서서히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 완전히 삭발을 하고 다닌 지 수년째다. 어쩌다 보니 이제 우리는 삭발 커플이 되었다. 30대 연애 시절, 둘 다 머리숱이 풍성했던 때가 문득 그립다. 그동안 머리가 빠져 고민하던 남편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다음 날 아침부터 머리카락 전쟁은 끝이 났다.
목요일에는 4차 항암 주사를 맞으러 갔다.
그전에 MRI 결과가 나왔는데 다행히 간에는 전이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와서, 항암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병원 갈 때 처음 가발을 쓰고 갔는데, 주사 맞는 동안 손 저림 방지로 얼음 물병을 들고 있어야 하니 가발 덕분에 덜 추워서 좋은 점도 있었다.
삭발을 하고 난 후로는 외출할 때마다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 강아지를 산바카라할 때면 예전 같으면 모자 하나만 휙 쓰고 나가면 된다. 보통 30분 이상은 걸어야 하니 여름에는 햇빛을 가릴 모자를 꼭 써야 하는데, 가발을 쓰고 모자까지 쓰기에는 너무 더웠다. 그래서 생각하다가 가발 없이 스카프만 두르고 뒤쪽은 머리카락처럼 약간 늘어뜨려 묶었다. 그 위에다 모자를 썼더니 그나마 머리가 없다는 느낌이 덜하고, 자연스러웠다. 힙합 하는 대머리 가수들이 왜 스카프를 먼저 쓰고 모자를 쓰는지 이해가 되었다. 암에 걸리니 앞머리, 옆머리, 심지어 뒷머리의 소중함까지 알게 되네.
강아지 산바카라 갈 땐 힙합 걸이 되었다가, 욕실에서는 마음 수련 중인 비구니 스님이 되고, 가발을 쓰고 스카프를 동여매면 보헤미안풍의 나름 귀여운 여인(남편의 말)이 되는 등 하루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며 지내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다 가끔 집에서 검은 비니 하나만 쓰고 있을 땐 영락없이 '나 홀로 집에'에 나오는 도둑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이제 곧 가을이 시작될 테니 가발을 써도 많이 덥지 않을 계절이 온다는 것, 그것도 감사할 일이다.
중학교 때부터 오랜 친구인 Y가 내 암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내가 이쁜 가발 사줄게~” 하더니, 금세 한국에서 가발이 하나 도착했다. 암환자들이 많이 구매하는 가발이라며, "오늘도 잘 버텨줘서 너무 고맙다"라고 했다. 눈물 많은 내 친구는 카톡에서도 눈물이 보였다. 가발뿐만 아니라 가발 스탠드, 빗, 항암 두건까지 다 챙겨 보낸 친구.
내가 더 고맙지 친구야. 늘 마음이 솜뭉치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Y다.
무거운 가발을 쓰다가 친구가 보낸 커트 가발을 써보니 너무 가볍고 편안하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 제품이 제일 좋다니까!
머리가 없다는 게 사람을 이렇게 자신감 없이 만들 줄 몰랐다.
나도 어느새 익숙해져서 집에서 민머리로 돌아다닐 날이 올까?
절대 안 올 거 같긴 한데.
뭐, 머리는 다시 자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