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진료 후 두 달 만에 유방 외과 전문의 John 선생님을 만나 Follow-up 진료를 받았다. 이 날 선생님에게 꽤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은 간단한 촉진 검사를 하신 후 굉장히 놀라워하시며, 만약 우리가 오늘 처음 만나는 거였다면, 검사 결과 없이는 유방암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기 힘들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손으로 만져지는 유방 조직이 너무 부드러워졌고, 치료의 경과도 정말 좋아 보인다며 몇 번이나 감탄하셨다.
물론 촉진 검사만으로 정확히 알 수는 없고, 항암치료가 다 끝나고 초음파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선생님의 그 말씀만으로도 정말 위안이 되고 기분이 좋았다.
이 날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날이었다. 8월에 성형외과 선생님과도 따로 면담이 있었고, 외과 절제 수술 시 같이 들어가서 조직 확장기 삽입술을 함께 시행하기로 논의를 이미 끝낸 상태였다. 12번의 항암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나면 4주에서 6주 뒤에 수술을 하게 될 거라고 하셨다.
아직 6번의 항암치료가 더 남아있으니, 그동안 내 몸속의 암을 더 많이 없애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는 항암치료를 담당하시는 내과 종양 전문의 선생님도 만났다. 항암치료는 3번을 한 사이클로 보고, 한 사이클이 끝날 때마다 환자의 부작용과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전문의와 Follow-up 진료를 한다. 이번에는 6번째 항암치료를 마치고 두 번째 사이클을 마무리하는 시점이라 다시 Follow-up 진료를 받는 날이었다.
Feng 선생님께서도 진료하신 후 탈모 외에는 큰 부작용이 없다고 하니 경과가 아주 좋다며 웃으셨다.
며칠 전 Yun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암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며 부랴부랴 전화를 한 것이다. 사실 Yun 아버님이 올해 4월에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5월에 만나서 밥 한번 먹자고 했지만,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아무도 만나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마음을 좀 추스르고 괜찮아지면 6월에나 보자 했는데, 6월에 내가 덜컥 암에 걸려 버려 연락을 못 하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번 통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은 당시 아버님이 암에 걸리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가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같은 암센터에서 치료를 받으셨다는 것이다.
아버님은 강한 항암치료를 견디지 못하셨고 두 번째 사이클을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한다. 항암을 견디기에는 너무 연세도 많으셨고, 그만큼 체력이 버텨주지 못하셨던 것 같다. 매주 맞아야 했던 항암 주사도 몸이 안 좋아 제때 맞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나중에는 걷지도 못하셨고, 음식도 제대로 드시지 못했다고 한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사실, 항암치료는 체력이 버텨주지 않는다면 너무나 힘든 과정이다.
내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5년 가까이 정말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5년 전에는 그냥 걷기나 하고 요가 같은 스트레칭만 하면서 운동을 다 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2022년 홈트로 시작한 덤벨 운동으로 근력 운동을 처음 시작했고, 3년 전부터는 거의 매일 아침 YMCA 센터에 가서 HIT(High Intensity Interval Training), 덤벨, 바벨 수업 등의 근력 유산소 수업을 들었다. 훌륭한 선생님과 함께하는 이 수업들이 나에게는 든든한 기초 체력이 되어주었다. 특히 HIT 수업은 50분 내내 뛰고 달리고 일어서고 앉는 동작을 해야 하는 고강도 유산소 수업인데, 초반에는 따라 하기 너무 숨이 차고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즐기면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수업이 다 끝나고 나면 온몸에 땀이 나고 개운하다. 손이 아픈 이후로 덤벨의 무게를 줄이긴 했지만, 꾸준하게 근육을 챙겼다. 근육은 내 몸의 자산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YMCA에만 간 게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려고 노력했다. 일 년 정도는 배드민턴에 푹 빠져서 신나게 게임을 했고, 또 다른 일 년은 테니스에 빠져 살았다. 손가락 관절염 통증으로 라켓 스포츠는 잠시 멈춰야 했지만, 그 후엔 달리기 연습을 꾸준히 해서 하프 마라톤도 완주했다.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내년엔 풀 마라톤에 도전할 계획이었다. 틈틈이 하이킹을 다니고, 강아지 산바카라으로 매일 한 시간씩 걷는 것 또한 일상이 되었다.
처음엔 나처럼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하게 지내던 사람에게 왜 암이 걸렸을까 하는 의문도 잠시 가졌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그동안 꾸준히 운동해 온 덕분에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와도 버텨낼 수 있는 체력과 근육을 어느 정도 갖춰놓았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한 마음이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피로감이 커지고 근육과 체력이 쉽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평소 꾸준히 운동해 온 것이 지금의 나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평소에 쌓아둔 체력과 근육은 일종의 ‘체력 저축’이었던 셈이다. 당장 필요할 때를 위해 미리 저축해 둔 것처럼,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특히 항암치료에서는 정해진 치료 일정과 약의 용량을 가능한 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부작용이 심해지거나 혈액 수치 등 전반적인 몸상태가 좋지 않으면 치료가 연기되거나 약물 용량이 조정되기도 한다. 나는 다행히 항암 치료 첫째, 둘째 주를 제외하고는 열도 없었고 피로감도 크지 않았다. 물론 이것이 모두 운동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내가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항암치료를 견뎌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체력이 항암치료를 견뎌내는 데 충분한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땀 흘려 운동했던 순간들이 너무나 감사하게 다가온다. 늘 동기부여가 되어준 운동 소모임 ‘뚝심’에도 감사하다.
지금은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어서 YMCA 수업에는 갈 수 없지만, 여전히 운동은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일주일에 적어도 3번 정도는 지하에 내려가서 홈트 영상을 틀고 덤벨 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어떨 땐 유산소 운동만 하기도 한다. 삭발한 채 덤벨을 들고 운동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영화 <지. 아이. 제인>의 데미 무어가 생각나서 웃음이 난다. 삭발한 내 모습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고 어색하다.
운동 후 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밖으로 나가 강아지 산바카라 겸 3km 정도를 가볍게 달린다. 데이지 때문에 달리다 멈추고 걷기도 하지만, 아침에 햇빛을 받으며 달리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게 운동한 후 샤워를 하고 나면 어떤 암도 다 물리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난다.
5년간 땀 흘려 만든 건강한 몸과 체력이 항암제라는 무기를 든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고 믿고 있다.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도 지금까지 만들어온 체력이 분명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사실, 건강할 때는 운동의 가치를 이렇게까지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프고 난 이후의 나는 확실히 마음 가짐이 달라졌다. 건강할 때 흘린 땀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된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어떤 나이, 어떤 상황에 있던, 건강할 때 운동하고 우리 몸을 지키자.
멈추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계속.
나중에 꾸준하게 운동한 힘을 발휘할 날이 반드시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