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의 부작용

by고들정희

두 달 전 강아지 데이지의 털 빠짐이 너무 심해 로봇청소기를 하나 장만했었다. 리트리버의 피를 이어받은 데이지에게 이렇게 털이 많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매일 청소를 해도 카펫이고 마룻바닥이고 할 것 없이 털이 날아다니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특히, 거실 구석에는 언제 생겼는지 모를 털뭉치가 늘 쌓여있곤 했다. 카펫에 박힌 강아지 털을 없애려고 여러 가지 청소용구를 사봤지만 만족스럽지 않았고, 결국 로봇청소기의 딥 클리닝 기능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요즘은 잠자기 전 거실 전체를 돌려놓고 잔다. 아침에 로봇청소기를 뒤집어 보면 노란 털이 둥글게 말려 브러시에 끼어 있다. 로봇청소기가 미처 가져가지 못하고 바닥에 남아 있던 동그란 털뭉치까지 치우고 나면 묘하게 기분이 개운하다. 그리고 데이지와 아침 산바카라을 나갈 때는 로봇청소기를 2층으로 가지고 올라가 산바카라하는 동안 청소를 돌린다. 데이지가 올라가지 않는 2층이라 털문제는 없지만, 방에는 카펫이 깔려 있어 딥 클리닝으로 청소하면 유용하다.


그런데 어제는 청소가 끝난 후 안방에서 긴 머리카락들이 서로 엉켜 길쭉한 막대기처럼 단단하게 말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로봇청소기가 머리카락을 빨아들인 후 돌돌 말다가 너무 길어 그대로 놓고 간 모양이었다. 2층에서 내가 머무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도 내 머리카락이 하루 사이 이렇게 많이 떨어졌나 싶어 놀라웠다.


생각해 보니 그날 아침부터 조금 이상하긴 했다. 일어나자마자 늘 침대 정리를 하는데 베개 커버에 머리카락이 여러 가닥 떨어져 있었다. 하얀색 침구이다 보니 검은 머리카락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평소에는 한두 가닥 정도 있을까 말까 한데, 이렇게 많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샤워를 하며 머리를 감으려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았더니 시커먼 머리카락이 쑤욱 빠져나왔다.


'아..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다른 부작용들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탈모만큼은 피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두 번째 항암치료를 시작할 때쯤부터 탈모가 시작되 수주 안에 완전히 다 빠지게 될 거라고 했는데, 나 역시 두 번째 항암치료가 끝난 지 4일째 되던 날부터 그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목요일에는 3차 항암주사를 맞았다. 다음날 아침, 베개 위에는 전날보다 훨씬 많은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돌돌이로 머리카락을 모으는데만 한참이 걸렸다. 지하에서 운동을 할 때도 바닥 매트에 머리가 한가득 떨어져 있었다. 그걸 다 치우고 올라와 샤워를 했다. 머리를 감으니 마치 미역줄기처럼 머리가 빠졌다. 빠지는 머리카락을 되도록이면 욕조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이렇게 계속 빠지다가는 조만간 욕조 하수구가 막힐 판이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데 세면대 안에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쌓였고 주변이 온통 머리카락이다.


올봄 긴 머리에서 어깨까지 오는 단발로 자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아직 긴 머리였다면 이 많은 머리카락을 어떻게 다 감당했을까. 잠깐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티셔츠 위에는 마치 낙엽이 떨어지듯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는 입안에 늘 쓴맛이 느껴진다. 가끔은 몸에 힘이 빠지거나 뼈마디가 쑤시기도 한다. 그래도 다행히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쉬면 괜찮아졌고, 견딜만했다.

그런데 탈모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지금은 거울로 내 모습을 보면 아직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매일 눈앞에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니 그 변화가 크게 느껴진다. 아침마다 이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머리가 빠진다는 것은 다른 어떤 부작용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고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이제는 내가 진짜 환자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는 청소를 할 때마다 데이지 털뭉치와 함께 내 머리카락 뭉치를 발견하게 될 거다.

데이지의 털전쟁이 아닌 내 머리카락 전쟁을 하게 될 줄이야.


그렇다고 아직은 덜컥 삭발부터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은 아주 짧게 자르기로 했다. 그래야 나중에 삭발을 하게 되더라도 조금 덜 충격적일 것 같았다.

토요일에 예약을 하고 세영 씨에게 가서 짧은 컷을 해달라고 했다. 삭발할 때 남편이 내 머리를 밀어주기 편하게.

세영 씨에겐 암이라는 사실을 오픈하지 않았는데, 예약하면서 항암 중이라는 것도 이야기하게 됐다. 세영 씨는 나를 보자마자 "언니, 갑자기 무슨 일이야?"며 걱정해 주었다.


30년 넘게 거의 긴 머리를 유지하며 살았다. 짧은 머리를 한 적도 몇 번 있지만 이 정도로 짧게 자른 커트 머리는 여고생 때가 유일했던 것 같다. 머리를 자르는 동안, 거울 속의 내가 커트머리인 친언니와 점점 닮아가고 있어 깜짝 놀랐다. 울 엄마 얼굴도 문득문득 보이는 것 같다.

세영 씨가 아주 이쁘게 잘라주었다. 그런데 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너무나 어색했다. 머리도 감아주고 이쁘게 드라이도 해주었는데 결국 모자를 푹 눌러쓸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다 깎고 나와 운전을 하는데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 눈이 부셔서인지 눈물이 날 뻔했다.

머리를 조금 짧게 자른 것만으로도 마음이 이런데, 삭발을 할 때는 기분은 어떨지 상상도 안 된다.

걸크러쉬가 된 나


커트를 한다고 머리가 안 빠지는 것도 아니고, 이 머리로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다음 주에 다 밀어버려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남아 있는 머리카락을 조금 더 즐기고, 조금 더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결국, 컷을 한 지 3일 만에 삭발을 하기로 했다. 목요일에 4차 항암이 있으니 그 전에.

이제 내 머리는 임시로 붙여놓은 장식품처럼 느껴진다. 건드리면 우수수 떨어지고, 머리카락이 머리에 붙어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 짧게 자르고 나니 오히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는 일은 더 힘들어졌다.


원래는 남편이 삭발을 해주기로 했지만, 머리에 상처를 낼까 걱정을 많이 해서 세영 씨에게 다시 부탁했다.

덤덤하게 받아들이자.


오늘은 군대 가는 심정으로 머리 잘 깎고 올게요.

수요일 연재
이전 07화괜찮지 않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