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은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니다.

by고들정희

매주 월요일에 피검사를 하고 있다. 피를 뽑으면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MyChart로 검사 결과가 도착한다.

결과를 확인해 보면 다른 건 대부분 정상인데, 백혈구 수치는 늘 정상 범위보다 낮게 나온다. 그렇게 될거라 알고 있었던 부분이긴 하지만 수치를 보면 늘 조심하게 된다. 그래도 걱정했던 혈소판은 정상을 유지하고 있어서, 출혈과 관련해서는 아직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


알다시피 백혈구는 우리 몸의 면역을 담당하는 세포다. 항암 치료 중에는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면 감염에 취약해질 수 있어서 가장 유심히 보는 지표 중 하나다. 백혈구가 우리 몸을 지키는 '전체 군인의 수'라면, 호중구(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는 세균이 침입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싸우는 '최전방 부대'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몇 주간 백혈구 수치와 함께 호중구의 수치도 정상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숫자가 떨어지면 몸은 속이지 않고 어김없이 반응을 보인다. 호중구가 줄어들면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외부 칩입에 취약해져 이비인후과 쪽이 쉽게 염증이 생기거나 재발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몇 주 전부터 얼굴에 여드름 같은 뾰루지가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고, 눈에는 예전에 생긴 적이 있었던 다래끼 같은 염증이 재발했다. 안과 선생님 말로는 면역력이 떨어져서 숨어있던 염증 반응이 다시 올라온 거라며 연고를 처방해 주셨다. 그래도 이런 건 아프지는 않으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런데 지난주부터는 귓속에 물이 찬 거처럼 가끔 통증이 느껴져서 불편했다. Follow-up 할 때 의사 선생님께 귀를 좀 봐달라고 부탁했는데 염증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도 여전히 신경이 거슬린다.

제일 안좋은 건 어제부터 왼쪽 아래 어금니쪽 잇몸까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있었던 치주염이 갑자기 악화되어 치아가 흔들리고 통증이 생긴 듯하다. 치주염이 있어도 한번도 아프거나 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엔 위아래 이가 부딪히기만 해도 통증이 있어서 뭘 먹기가 부담스러워졌다.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는 오른쪽으로만 씹어야 할 것 같다. 항암치료 중이라 치과 치료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니, 일단 집에서 소금물로 한번 다스려 봐야지.


항암 치료가 내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숫자만이 아니라 몸에서 나타나는 이런 작은 반응들을 통해서도 곧바로 실감하게 된다.

평일엔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은 내 잇몸 통증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이가 아프니 낮에 숭늉을 끓여서 먹었다고 했더니, 그렇게 해서는 몸이 축난다면서 음식으로 면역력을 높여줘야 한다고 신경을 바짝 세우고 있다. 입맛이 없어서 매주 하던 요리도 잠시 중단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억지로라도 먹여야겠다며 다시 요리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이번 주에 집에 돌아오면 전복죽과 고등어구이를 해줄 거라며 미리 장 볼 리스트를 나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입맛 없어도 잘 먹어야 한다며 몇 번이나 당부한다. 하필 잘 먹어야 하는 시점에 이가 아파서 잘 못 먹게 되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낯설다. 걱정 많은 남편을 위해서라도 남편이 해준 요리들을 삼켜서라도 다 먹어야지 별 수 없다. 입 맛이 없어 먹을 의욕이 없을 때도, 어떻게든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그 정성과 번잡스러움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사실, 이런 남편의 정성뿐만 아니라 가끔씩 예고도 없이 전해오는 주변 사람들의 안부 카톡도 힘든 항암 치료에서 마음에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어제 항암 치료는 어땠어?"

"맛있는 거 먹고 힘내요!",

"기도하고 있어~~"


그동안 받았던 지인들의 안부 메시지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든든해진다. 비록 백혈구 수치는 떨어졌지만,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마음은 오히려 더 밀도 높게 채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항암은 혼자 치르는 외로운 싸움이 아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몸이 지칠수록 마음을 붙잡아 주는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지친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내 몸의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이 시기에, 나를 걱정해 주고 기도해 주고, 밥을 먹여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을 요즘 더 자주 하게 된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고통과 시련을 주시나?'라고 생각하면, 이 더딘 치료 과정이 온전히 나 혼자 견뎌야 하는 외로운 싸움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원망이 더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돌아보면 내 곁에는 가족과 지인들의 살뜰한 마음이 늘 있었고, 그들이 내 뒤에 병풍처럼 서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그곳에 기대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것처럼.

남편이 차려주는 따뜻한 밥 한 그릇, 캐나다와 한국의 가족과 지인들이 보내주는 기도와 응원도 내게 계속 힘을 보태준다.

내가 강한 사람이어서 잘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아끼고 걱정해주는 마음들이 하나둘 쌓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잘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피검사 결과표에 찍힌 숫자만 보면 내 몸의 면역력은 분명 떨어져 있다.

하지만 이들 덕분에, 내 마음의 면역력은 어느 때보다 단단해져 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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