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둘째 아이 미술 수업을 하는 동안 도서관에 앉아 바카라을 읽었다. 읽고 있던 바카라은 이하영의 [말은 운명을 데려온다]였다. 바카라장을 넘기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을 다시 찬찬히 돌아보게 되었다.
내 몸속에 암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가 아니었다. '내 몸속에도 암이 생길 수도 있구나' 하는 약간의 신기함이었다.
암세포는 사람들의 몸 속에 매일 생겼다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매일 생겨났던 수많은 암세포 중 하나가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이렇게 커지기까지 내 몸속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게 궁금했다.
그렇다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원망하거나 자바카라한 적은 없다. 그저 이것도 순리인가 보다, 여기에도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암을 겪고 나니,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쓰던 말들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암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사용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속으로 참으면 곪는다, 곪다가 암 된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속을 뒤집어놓는 사람을 만나면 "암 유발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식습관이나 생활습관보다, 오히려 감정적으로 꽉 막히고 답답한 상황에서 '암'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접해왔던 것 같다.
물론 이런 것들이 암의 원인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 암이 왜 생겼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암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암이라는 일을 겪고 나니, 이상하게도 내가 살아온 습관과 방식까지 하나씩 다시 생각하게 되어서다.
돌아보면 나는 평소 "괜찮다"라는 말을 참 많이 하며 살았다.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오래 붙잡기보다 "괜찮아요, 괜찮아. 그러라지 뭐, 내 갈 길 가련다" 하며 빨리 떨쳐버리려고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평온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는 일부러 괜찮은 척하며 나를 숨기곤 한 적도 있다. 실제로는 상처를 받고, 속이 문드러지거나 괴로울 때도 있었지만, 결국 나 자신을 억지로라도 '괜찮은 상태'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물론 내가 모든 일에 참고, 견디기만 하는 성격은 아니다. 화가 날 때는 화도 내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말한다.
특히, 남편과 다툴 때는 그 순간 너무 화가 나서 내 속내를 다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싸운 후라도 남편없이 아이들과 있으면 언제 싸웠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간다. 내 감정을 온전히 인정하고 허용하는 법을 잘 몰랐던 걸까.
어린 시절의 내 모습도 떠오른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내 안에는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일찍부터 자리 잡았다. 늘 참는 편이었고, 어른들에게 떼를 써본 기억도 별로 없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의 집은 아주 부자였다. 아버지는 건설업을 하셨고, 어머니는 소일거리로 옷 가게를 하셨다. 친구는 늘 풍족하게 자랐음에도 부족한게 많다고 생각했는지 엄마에게 참 많이 떼를 썼다. 엄마 옷 가게에 함께 놀러가면 옷 가게 옷들을 다 헤집어 입어 보기도 하고, 원하는 것을 사달라고 조르고, 고집을 부렸다. 심지어 나랑 같은 반이 되고 싶으니 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말해 달라고 떼를 쓴 적도 있었다. 그러면 친구 엄마는 대부분 원하는 것을 다 들어 주시곤 했다. 어린 마음에 그런 모습이 참 신기했고, 부자들에 대한 첫 이미지가 그렇게 각인되었던 것 같다. 너무 많이 가져 소중함을 모르는 거라는 건 철들어 알게 된 생각이고.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가 떼를 쓰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자신의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는 연애를 할때도 마음을 숨기지 않고 직진했다. 반면 나는 늘 좋아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짝사랑을 즐겼다. 커서도 친구들과 있으면 내 고집을 피우기보다 주로 양보하고 참았고, 대학에 가서도 선배들에게 "괜찮아요"를 연발하는 후배였다.
원하던 것을 조르고 떼를 쓰며 온전히 내 감정을 표출해 본 적 없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감정을 표현하는 법보다 참고 삭이는 법이 훨씬 더 익숙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감정을 잘 정리하며 살아온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쩌면 감정을 잘 소화한 게 아니라, 너무 빨리 덮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내 마음이 괜찮지 않으면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보다, 어떻게든 없애려고만 했던 것 같다. 괜찮지 않은 나를 내버려 두지 못했다. 괜찮지 않은 마음을 인정하기보다 괜찮은 마음으로 바꾸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그동안의 나를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참고 견디며 살아온 나도 나였고, 어떻게든 괜찮아지려고 애썼던 나도 나였다. 그것은 내게 부족했던 모습이라기보다, 수많은 일을 지나오며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이기도 했다.
내 몸속에서 암세포 하나가 자라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이제는 내 마음속에서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감정들이 어떻게 쌓이고 지나갔는지 돌아보게 된다.
다만, 앞으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지금 나는 암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항암치료를 계속하면서 몸이 달라질 수도 있고, 수술도 하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힘든 순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모른다.
아마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고, 어느 날은 많이 지칠 수도 있고, 갑자기 눈물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두려운 날도 있을 것이고, 고통스러운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앞으로의 나에게 미리 말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을 버리지 말자.
다만 그 힘에 하나를 더 보태자.
괜찮지 않은 나를 그대로 받아주는 힘.
힘들면 힘들다고 인정하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하고, 속상하면 그 마음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싶다.
울고 싶으면 굳이 눈물을 참지 않고, 괜찮아질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는 사람이 나 자신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늘 괜찮아지려고 애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이제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나에게도, 앞으로의 나에게도.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