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생활을 다룬 매체에서 양을 길러 직접 도축하는 일에 관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아마 귀하게 기른 양을 직접 도축함으로써 생명과 식재료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고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내가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는 어린아이 몇이 들어가서 뛰놀 만큼 넓은 닭장이 있었다. 사료나 곡식, 수박 껍질 같은 게 닭들의 주된 먹이였다. 외할머니 댁의 달걀은 당연히 모두 이 닭장에서 나왔다. 특별한 날에는 그 닭들이 식탁에도 올랐으리라.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닭을 잡아 대접한다던가. 우리 아빠가 닭고기 대접을 받으셨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미루어 짐작해 보면 외할머니께서는 닭을 직접 잡으실 수 있었으리라.
지금도 시골집 마당에서는 닭을 기르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내 시댁 큰집에는 닭장이 있고, 닭이 항시 몇 마리 있으며, 큰어머님은 설날에 닭떡국을 끓이신다. 닭을 먹이는 일과 먹는 일이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닭을 먹이는 자가 닭을 먹는다. 나는 새해가 되면 어쩐지 경건한 마음으로 떡국에 든 닭고기를 한술 떠 입에 넣는다. 이 닭, 살아생전에 나랑 눈 마주친 적 있으려나…
어린 시절, 동네에는 소를 기르는 집이 꽤 많았다. 내 친구(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 집에서도 한우를 몇 마리 길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를 먹이는 건 맏이인 그 친구의 몫이었고 가끔 소 돌보는 일 때문에 같이 못 놀 때가 있었다. 우리 앞집에서도 소를 대여섯 마리 키웠는데 그 집 한 켠에는 네모지게 뭉친 건초 더미가 쌓여 있었고 항상 마당에서 볏짚 지푸라기가 굴러다녔다. 소를 기르는 일은 품도 많이 들고 생활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소를 서너 마리 기르는 집에서는 벼 수확 후 남은 볏짚으로 소를 충분히 먹이겠지만, 규모가 큰 한우 사육 농가에서는 그걸론 부족하다. 소에게 먹일 작물을 일부러 재배하게 되는데, 공무원 시절 이러한 ‘조사료 재배’ 지원사업 업무를 해 본 적이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겨우내 비는 농지에 호밀이나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품종을 주로 재배한다. 본청에서 오신 팀장님의 지휘 아래, 실제로 해당 농지에 재배하기로 한 작물을 기르고 있는지 작황은 어떠한지 현장 조사도 나갔다. 막연하게 초록빛이구나 생각했던 들판의 풀들은 소들의 귀중한 식량이었다.
추수가 끝난 논에 굴러다니는 거대한 마시멜로들을 본 일이 있으신지. 이들의 정체는 ‘곤포 사일리지’로, 건초를 모아 뭉쳐 비닐로 감싼 것이다. 숙성시켜 소의 먹이로 사용한다는 걸 업무를 맡고서 나도 처음 알게 되었다. 볏짚과 마찬가지로 조사료도 주로 곤포 사일리지 형태로 만들어 보관한다. 다 자란 호밀을 수확하는 현장, 그러니까 거대 마시멜로의 탄생 현장에도 출장을 나갔었다. 억 소리가 난다는 값비싼 농기계가 건초를 동그랗게 뭉치고, 건초덩이가 요리조리 굴려지며 비닐 포장되는 모습은 내 핸드폰 사진첩에 여전히 영상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련한 먹이를 먹고 자란 소들은 농가의 큰 자산이다. 소 키워 자식들 대학 보냈다는 말도, 우골탑이라는 단어도 소 사육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보여준다. 예전에 비하면 다소 낮아졌을지 모르나 지금도 가축으로서 소는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 소들은 경매장을 거쳐 누군가의 식탁 위로 오를 것이다. 먹이는 사람과 먹는 사람은 달라도, 소를 키워 얻는 소득이 농가를 먹여 살린다.
축산업무를 맡고 나서야 우리가 먹는 일 이전에 가축을 먹이는 일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닭에게 영양 사료를 주고, 소에게 예방접종을 맞히며, 축사에 선풍기를 달아주고 꿀벌이 겨우내 먹을 화분을 제공해 주는 일들. 무엇보다 사료와 건초를 먹이고 돌보는 일.
도시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이 모든 일들이 결국은 우리를 먹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