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 처음으로 발령받은 곳은 내 출생지였다. 세 살 무렵까지만 살았기에 여기서 지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만이, 이곳에서 출생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발령 후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내 주민번호 뒷자리 지역번호* 네 자리가 지역민들과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자주 보는 동네 주민들에게 또는 이장님들께 이 얘기를 꺼내며 스몰토크를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시큰둥했다. 잘 쳐줘야 약간의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는 정도였고 그것도 대체로 여기 살던 시절의 우리 부모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주민등록담당 업무를 맡으면서 제적등본을 보게 될 일도 많았는데, 근무 기간이 쌓이고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새삼스럽게도 깨달았다. 내가 여기서 태어났다고 한들, 나는 이곳 주민들과는 태생부터 다르구나, 넘어설 수 없는 경계가 있구나.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토박이의 정의는 ‘대대로 그 땅에서 나서 오래도록 살아 내려오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대대로 그 땅에서 났‘다는 건 제적 서류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제적등본은 호주제 폐지 이전의 기록이고 서류를 떼러 오시는 분들도 보통은 상속 업무를 위해 발급하시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제적등본에 나와 있는 전(前) 호주, 호주의 출생연도를 보면 대체로 1900년대 초반, 때로는 대한제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대대로 살아 내려오는 동안, 주소지는 한 자릿수의 변동도 없는 게 대다수였다.
제적등본을 찾기 위해 주소를 검색하면 같은 성씨의 비슷한 이름들이 주르륵 나왔고 그런 이름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어떤 글자가 항렬자인지도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동네 주민의 이름을 듣고는 그 마을 이장님과 서로 같은 집안인지, 누가 항렬이 위인지도 짐작해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일하다가 주워들은 정보로 정말 그랬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주민번호 뒷자리 중 네 자리가 같다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하물며 세 살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자라 온 동네에서도 나는 완벽한 그 동네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부모님은 온라인 게임 발령 때문에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되셨다지만, 나는 출생지부터가 이 지역(군)인데도 그랬다. 나에게는 이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온 조상이 없고 한데 모여 사는 친척들도 없었다. 어느 노래가사처럼 나에게 토박이란 ‘살아서는 갖지 못하는 그런 이름 하나’ 임에 분명했다.
앞서 다른 글**에서 쓴 바 있지만, 나는 결혼 후 비로소 이곳에 혈연으로 묶이게 되었다. 남편의 집안(이라고 쓰니 무슨 고관대작을 배출한 것 같지만 이곳에서는 같은 혈연이라는 뉘앙스로 많이 쓴다) 사람들은 읍에서 십분 거리에 모여 사는데 큰집도 물론 그곳에 있고, 선산도 가족묘도 있고 물려받은 농지도 있고 철이 되면 묘사도 함께 지낸다. 명절에 가장 연로하신 어르신 댁에 가서 다 함께 절을 올린 적도 있다. 집성촌의 사전적 의미 말고 그 실체를 조금이나마 엿본 것은 혼인하고 나서였다.
토박이란, 생득적이면서 동시에 후천적인 지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 지역 토박이인 시부모님 두 분과 달리 우리 부모님은 경북의 같은 도시 출신으로서 엄마의 온라인 게임 발령 때문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셨다. 그 도시에서 출생, 성장, 진학, 결혼까지 마치셨지만 우리 부모님에게는 더 이상 토박이라는 이름을 가질 기회는 없다. 만약 이제 와서 그곳으로 돌아간다 한들, 밖에 나와 산 세월이 내 나이보다 많으시니까. 토박이의 기준이 얼마나 깐깐한지. 아마 다시 태어나더라도 토박이가 되는 건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속담이 있는 나라에서 토박이라는 것, 나아가 같은 성씨 같은 집안 출신이라는 건 결국 느슨한 혈연으로 이어진 공동체 안에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지역 유지 어르신과 함께 묘사를 지내러 가거나, 때로 시외할머님의 조카손주쯤 되신다는 분이 우리 가게에 부러 방문하실 때, 이 좁은 지역슬롯가 핏줄로 연결되어 있음을 절감한다. 너와 우리 사이를 가르는 경계는 분명 존재한다.
이러한 경계는 인구이동이 잦은 곳에서는 옅어진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몇 년 거주해 보았지만, 서울 토박이가 아니라고 배제당하는 기분을 느낀 적은 없다. 서울 사대문 안 토박이 숫자래 봐야 전체 서울시민 인구에 비하면 아주 적을 테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심지어 서울과 부산의 일부 지자체에서는 토박이 지원 조례를 마련해, 외려 장기 거주자를 우대해 주는 정바카라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전입해 오는 신규 주민을 소외시키는 정바카라이 될 테니까.
너와 우리를 가르는 경계선이 여전히 보이지만, 점점 연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년기에 내가 느꼈던 이방인으로서의 감각을 요즘 나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외국인들이 귀화해서 정착하는 세상에서 무슨 토박이 타령이냐 싶기도 하다. 대대로 한 곳에 붙박여 사는 시대가 저물고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의 수도 점점 줄고 있다. 다시 태어날 때쯤엔, 토박이라는 개념은 제적등본 서류에서나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신규로 부여되는 주민번호 뒷자리에서 지역번호 네 자리는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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