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하실 일이 남았어요

시골에서 정년 이후의 삶

by상모솔새

얼마 전 집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이후, 비로소 내 휴대전화 요금이 아빠 통장 대신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다. 진작에 결혼한 다 큰 딸의 폰 요금을 계속 내주고 계셨던 거다. 변명하자면 우리 아빠는 통신회사 직원으로 정년까지 채우신 뒤, 정년 이후에도 계약직 근무를 하셨기 때문에 아빠가 가족 모두의 폰 요금을 내시는 게 자연스러웠다고나 할까… 계약직 근무까지 종료되고, ‘진짜’로 퇴직을 하시게 되자 각자의 통신비는 제자리를 찾아갔다.


몇 년 전쯤엔 퇴직 이후의 일을 고민하시는 듯했으나, 3년을 더 근무하시고 나서는 당분간 따로 일자리를 구할 생각이 없어 보이신다. 그렇다고 아빠가 마냥 한가로이 지내시는 건 아니다. 정해진 요일에 지역 친환경 골프장에서 라운딩, 남는 시간엔 집 마당에서 골프 연습을 하시다가 밥때가 되면 아직 정년퇴직이 1년 남은 엄마 대신 식사 준비를 하셔야 한다. 거기다가 매주 동료들과의 식사 모임까지 더하면 할 일이 많다. 몸이 바빠질수록 퇴직 이후의 우울이 찾아오기 어려울 테다.


사실 여기서 우리 아빠는 바쁜 축에도 못 낀다. 인구소멸위기 상위권, 노령화지수 상위권인 이 지역에서 60대는 물론이고 70대에도, 그 너머에도 일하는 어른들은 무수히 많다. 애초에 농사일에 정년이 어디 있는가? 공무원 시절 산업팀에 재직하면서(여기서 산업이란 결국 농업을 뜻한다) 만나본 농부들은 대다수가 60대 이상이었으며, 40대부터 그 아래는 청년농부로 불리었다.


자영업에도 정년은 없고 가게들이 번화가에서처럼 쉽게 바뀌지 않아서 내 일생보다 길게 장사를 하시는 분들도 꽤 있다. 우리 가게 근처에 종종 포장해서 먹는 중식집이 있는데 이곳은 실은 내 돌잔치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사장님 내외는 우리 부모님보다 약간 더 나이가 많으시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앞 오래된 문구점 사장님은 우리 어머님과 친구이기도 한데, 며느님에게 가게를 물려주고 쉬시는 줄 알았더니 어느 날 동네 키즈카페에 갔다가 마주쳤다. 대신 오후에만 근무하신다나? 그 얘길 어머님께 전하니 하시는 말씀은 역시, “놀면 뭐하노.”


십수 년 전쯤 친구분들과 함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러 학원에 다녔던 이야기도 우리 어머님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인데, 그중 몇 분은 지금도 관련 일자리를 구해 꾸준히 하시는 듯하다. 농사나 자영업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공공일자리, 돌봄 일자리까지. 여기서 어르신들이 일하는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고 특별한 장면도 아니다. 어르신이 어르신을 살피는 노노케어라는 일자리도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하는 게 자연스럽다. 근로활동이 아니라도 파크골프나 수영이라든지 할 거리는 많다. 아, 손주 돌봄도 빼놓을 순 없다.


퇴직 전 아빠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할 일은 이것저것 많이 남아 있다. 정년이 지나도 삶은 이어지고 할 일은 끝나지 않는다. 60세가 되어 퇴직한 뒤 새로이 농업을 시작하는 사례도 많다. 대표적으로 공무원 정년퇴직 후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 경우.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인터넷을 하다가 20대나 30대쯤에 ‘ㅇㅇㅇ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인가요’, 하는 글들을 보면 헛웃음이 날 지경이다. 뭐 키즈모델하기엔 늦었겠지만.


아빠의 환갑파티 때, ‘세 번째 스무 살’이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샀었다. 이 현수막은 엄마의 환갑 때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는데, 왜인지 이곳에서는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60세는 경로당 막내조차 못 되는 나이니까.

역할이 있다는 건 사람을 젊게 만든다. 예순 이후에도 할 일은 남아있고 그 모습은 달라도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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