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가장 잘 통하는 언어는 따로 있다
“여기 사람은 아니다. 외지 사람이다.” 가게에 타 지역 손님이 다녀가시면 이따금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외지 사람’ 임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몇 가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유력한 것은 말씨이다. 어느 지역 말씨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다르다는 건 쉽사리 판별할 수 있다. 때로 내가 아는 지역 말씨를 들으면 어디쯤에서 오셨겠구나 짐작하기도 한다.
말씨는 ‘너’와 ‘나’를 가르는 가장 선명한 구분선이다. 전국적으로 생김새도 옷차림도 고만고만한 나라인데도 말씨만큼은 지역적인 차이가 크다. 우리 지역 사투리도 억양이 강하고, 사용되는 어휘 면에서도 표준어와 다른 부분이 꽤 있다. 관광객들이 가끔 못 알아듣고 되물을 정도다. 면사무소에 근무하던 시절, 어느 팀장님은 타 지역 민원인이 방문하고 나면 ‘다른 나라 말씨’를 쓴다고 표현하곤 했다. 나는 내심 그 정도까지 배타적인 표현을 쓸 일인가 속으로 생각했지만(놀랍지 않게도 그 팀장님은 이 지역 토박이다)…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뒤 한동안 내 사투리를 ‘고치는’ 데에 열과 성을 기울였다. 상경한 지 일 년쯤 지나 사람들이 비로소 “어디서 왔냐”라고 묻지 않기 시작했을 때, ’경상도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소 놀라워하며 ‘몰랐다’고 할 때 나는 굉장한 희열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여전히 사투리를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사용하는 동기들을 보며 약간의 우월감마저 느꼈더랬다.
표준어의 사전적 정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국어시간에 이 정의를 접한 이후로 잊은 적도 없다. 이 개념을 배울 당시의 나는 입신양명을 꿈꾸는 시골 학생이었고 후에 자유롭게 표준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되리라고 믿었었다. 상경하면서 어느 정도 표준어에 가까운 말씨를 쓰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흉내 낼 수 없는 말투가 있었다.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대학 동기 하나는 줄곧 서울에서 자라온 사람이었고, 정말로 kbs 영상자료에서나 접할 법한 ‘서울 사투리’를 썼다. 나는 때로 그 언니의 말투와 그것을 만들어 온 환경을 동경했다.
세월이 지나 나는 고향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첫 발령지에서 민원대를 맡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표준어를 써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걸려오는 민원 전화에 또는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며 나는 상대방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끔, 최대한 사근사근하게 서울말을 쓰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듣다 못한 옆자리의 선배가 말해 주었다. 일할 땐 ’사투리를 쓰라‘고. 이 지역 사람들은, 특히 어르신들은 표준어를 알아듣기 어려워한다고, 제발 사투리로 말하라고 했다. 자신도 초임 때 표준어로 말해 보니 오히려 알아듣지 못하더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날 나는 내색은 안 했지만 아주 크게 충격을 받았다. 내 안에서 표준어가 차지하고 있던 가장 높은 자리는 그때 무너졌다.
재미있게도 내가 지금 자영업을 하면서 매장에서 사용하는 말씨는, 내가 예전 신규 직원일 때 썼다가 한소리 들었던 그 말씨이다. 타 지역에서 오는 관광객 손님이 많기에 나는 표준어에 가깝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매장 리뷰에는 친절하다는 후기가 꽤 있는데 나는 그게 내 말씨 덕분이라고 본다. 아마 타지 사람이 듣기에 여기 사투리보다는 표준어가 상냥하게 느껴질 것이다.
대학 때 교환학생 신분으로 체코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체코어라고는 인사말밖에 몰랐으므로 그 나라 말은 현지에서 조금 배운 게 다였다. 그러니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영어로 했다. 내가 지내던 기숙사에는 세탁실이 별도로 딸려 있었고 관리 직원에게 요청하면 세탁실 열쇠를 받을 수가 있었다. 그 직원은 다소 퉁명스러운 중년 여성이었는데 어느 날 더듬더듬 체코어로 말을 걸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녀가 미소를 띠는 것을 보았다. 평소 태도가 딱딱했던 건 다른 나라 말을 써서 그랬을까.
나는 가게에서 손님을 응대할 때 말고는, 이 지역 사투리를 쓴다. 여기서 지내면서 내 말투는 점점 다시 현지화되었다. 청자의 연령대에 따라 강한-사투리와 약한-사투리를 골라 쓰는 능력도 약간은 갖추었다. 지금 서울에 ‘올라가’ 대학 시절 친구들을 만난다면 아주 낯설 것이다. 그 시절과는 다른 말씨일 테니까.
서울에선 서울말을, 이곳에선 사투리를.
지역에서 가장 잘 통하는 언어는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