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기쁨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우리는 그렇게 생산자가 된다

by상모솔새

우리 집 다섯 살 어린이는 이번 봄, 이런저런 농업활동으로 바빴더랬다. 식목일 행사에서 심은 방울토마토를 시작으로, 어린이집 텃밭을 가꾸는 한편 농장에서 딸기를 따 왔다. 작년에 이어 이년 째 햇감자를 캐 오기도 했다. 도구는 쇠숟가락 하나, 준비물은 모자와 팔토시. 두 돌이 되기 전, 할머니댁 텃밭에서 고구마를 캐 본 경험도 있다. 다 캐 놓은 고구마 중 동글동글 숟가락보다 작은 것을 골라, 땅 속에 얕게 파묻어 둔 것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훗날 농사일을 도모하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그중에서도 올 상반기 베스트 수확을 꼽자면, 우리 집 베란다에서 방울토마토를 수확한 일이다. 어린이집에서 고사리손으로 화분에 심어 온 토마토 모종은 웃자람, 잎말림, 물을 자주 안 줘서 더운 날씨에 시들기 등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고작 두 알이지만 열매를 맺었다. 영양부족인지 내내 익지 않고 초록빛이던 열매가, 어머님 친구로부터 얻어 온 알비료를 뿌리니 며칠 지나지 않아 붉게 익었다. 비록 둘 중 한 알뿐이었지만. 아이는 매우 기뻐하며, 아빠에게 방울토마토를 양보해 주었다(이미 쓴 바 있지만 나는 과일과 토마토를 먹지 않고, 아이는 그런 내 식성을 꼭 닮고 말았다). 두 달이 넘도록 기다린 끝에 얻은 방울토마토는 껍질이 좀 질겼지만 평범한 토마토 맛이 난다고 했다.


어린이집에도 텃밭이 있을 정도이니까 이곳에서 텃밭은 생활의 일부다. 마치 김치냉장고 같은 존재랄까? 모든 집에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우리 엄마 집엔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에도 텃밭이 있었다. 봄이 되면 담장을 둘러 두릅이 나고 여름이 되면 딸기가 나는 마당 한 켠엔 채소들이 자랐다. 마당의 일부는 잔디밭이어서 손이 무척 많이 갔을 텐데도, 엄마는 딸기도 잔디도 없는 마당 한 켠에 텃밭을 마련하고는 이런저런 채소를 심으셨다. 가끔 집에서 고기라도 굽는 날이면 마당에서 깻잎을 따 오는 건 항상 내 몫이었다.


자기만의 텃밭이 없더라도 수확의 기쁨은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지역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다면 그 기회는 매우 가까이에 있다. 일철에 각 농가에 일손을 보태는 ‘농촌일손돕기’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상반기 양파 캐기, 하반기 단감수확으로 그 품목이 고정되어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수월할까, 하는 물음을 두고 직원들은 여러 의견을 내놓는다. 양파 작업은 쪼그려 앉아 하니까 허리가 아파 별로라는 의견이 다수였으나 두 가지 다 경험해 본 바로는 경사진 밭에서 작업해야 하는 단감 수확 쪽이 나는 더 긴장되고 힘들었다. 과일을 먹지 않으니 즉석에서 단감 따 먹기라는 메리트도 없고. 아, 어느 것이 수월한지 골라 보았자 의미는 없다.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마지막 일손 돕기 현장은 양파밭이었고, 하늘에는 적당히 구름이 있었다. 양파 캐기 최대의 적이라 할 수 있는 날씨가 도와주어서 이 날 작업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우리들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엉덩이에 방석을 하나씩 매달고서 미리 대를 잘라 둔 양파를 쏙쏙 흙에서 뽑아내기만 했다. 캐낸 양파를 자루에 담는 건 숙련된 일꾼들의 몫이었다. 제법 할 만하네, 싶다가도 광활한 양파밭을 보면 그게 아닌가, 싶었다. 중간에 먹는 두부김치는 별다른 조리가 되어 있지 않아도 맛있었다.


수확의 기쁨은 그것을 요리해 먹을 때 더욱 커진다. 요 몇 년간 우리 엄마는 6월이 되면 이곳저곳으로 귀농한 친구들의 농장에 블루베리를 따러 다니셨다. 그중 일부는 아이의 바람대로 블루베리 머핀이 되어 접시 위에 올랐다. 쇠숟가락으로 퍼올린 햇감자는 감자튀김이 되어 아이 입 속으로 들어갔다. 단 두 알로 만든 감자튀김은 아이 간식으로나 적당할 만큼 약소한 양이었다. 먹는 내내 자신이 캐 온 감자라고 어찌나 유세를 하던지.


방울토마토는 우리에게 두 알의 열매를 선사한 뒤로는 통 다음 소식이 없었다. 이 반려 채소를 기르는 동안 어머님께 고민상담을 종종 했었는데, 내년엔 처음부터 큰 화분이나 스티로폼 박스에 심어서 기르라 신다. 봄철에 종묘사에 가면 모종을 하나씩도 살 수 있다고. 제대로 기르면 여름 내내 방울토마토를 따 먹을 수 있을 거라고.


불현듯 몇 해 전, 농사를 짓는 남편 친구가 베란다 채소로 방울토마토를 추천해 줬던 기억이 났다. 제 때에 물만 주면 사 먹을 필요가 없다며. 스티로폼 박스에 심긴 고추며 상추, 방울토마토는 내가 아침마다 지나는 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필요한 것을 길러 먹는다는 발상은 이곳에서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때로는 당연하다.


제주에서 귤을 돈 주고 사 먹으면 한소리 듣는다고 했던가? 면 단위에서 상추를 돈 주고 사 먹는다면 슬프지만 당신은 외톨이일 가능성이 높다···.열매가 맺히고 이파리가 무성해지는 속도가 먹어치우는 속도보다 빠르기에 텃밭 채소들은 종종 나눔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집 방울토마토는 나눔은 꿈도 못 꿀 속도로 천천히 자라고 있다. 마지막 수확일로부터 열흘쯤 지났나, 아침에 드디어 새로운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속도로는 토마토소스 한 번 만들기도 어렵겠다. 그래도 한 알씩 얻어지는 수확의 기쁨을 위해 오늘도 나는 토마토 화분을 돌본다. 이곳에서 나는 제법 자주 생산자가 된다.


···이러다가 내년 봄엔 종묘사 앞을 기웃거리게 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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