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학교가 끝나면 논과 밭으로 갔다. 중학생이 되었다고 농사일에서 빠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몸집이 커지고 힘이 붙으면서 맡아야 할 일이 늘어났다. 어느 때부터인가 마을 어른들은 나를 아이로만 보지 않았다. 품앗이 일손이 필요한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내 이름도 그 안에 들어갔다.
모내기철이면 이른 아침부터 논으로 나갔다. 논에는 벌써 사람들이 들어가 있었고, 물에 잠긴 논바닥은 발을 디딜 때마다 푹푹 빠졌다. 발을 들어 올리면 진흙이 발목까지 따라왔다. 논두렁에 모아둔 모를 한 움큼씩 집어 들고 줄을 맞춰 심었다. 앞사람이 몇 포기를 심고 나가면 나도 그 뒤를 따라가며 빈자리를 채웠다. 처음에는 어른들의 손놀림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지만 몇 번 해보면서 내 손에도 속도가 붙었다. 허리가 아파 잠시 몸을 세우면 저쪽 논에서도 사람들이 허리를 굽힌 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누가 어느 집에서 왔는지 따로 묻지 않아도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집의 일이 끝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집으로 옮겨갔다. 오늘 내 논에 와준 사람이 있으면 나중에는 내가 그 사람의 논으로 가야 했다. 농사철에는 그런 일이 이어졌다. 품앗이는 누군가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도움을 받는 일이 아니었다. 농사를 지어내려면 서로의 손이 필요했고, 나도 그 안에서 내 몫을 해야 했다.
벼를 수확할 때가 되면 들판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누렇게 익은 벼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면 마음이 급해졌다. 비가 오기 전에 베어야 했고, 한 집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릴 여유도 없었다. 낫을 들고 논으로 들어가 벼를 베고, 베어낸 벼를 모아 옮겼다. 어른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이에서 나도 내 몫을 해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나면 손가락에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일이 끝나면 농기구를 챙겨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리어카에 농기구를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해가 이미 넘어가 있었다. 앞에서 끄는 손잡이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논밭에서 온몸으로 일을 하고 난 뒤였으니 당연했다. 그래도 집까지 끌고 가야 했다. 어머니는 먼저 돌아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농기구를 내려놓은 뒤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야 학교 숙제를 꺼냈다.
그런 날에도 바카라은 읽고 싶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농사일이 아니라 학교 도서실이었다. 집에서는 바카라 한 권을 사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학교에는 바카라이 꽂혀 있었다. 바카라장 앞에 서면 읽을 바카라이 눈앞에 가득했다. 누구에게 빌려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없었고, 친구가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내가 고르면 됐다.
처음에는 바카라장 앞을 한참 서성였다. 제목을 읽고 바카라을 꺼내 몇 장 넘겨본 뒤 다시 꽂았다. 다른 바카라을 꺼내 목차를 살피기도 했다. 그렇게 바카라장을 오가다가 읽고 싶은 바카라을 몇 권 골라 옆에 쌓아놓았다.
한 번에 다섯 권을 빌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꽤 묵직했다. 바카라가방 안에 다섯 권의 바카라을 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좋았다. 집에 도착하면 다시 농사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방 속에 읽을 바카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하루 종일 논과 밭에서 몸을 움직이고도 바카라을 펼칠 생각을 하면 이상하게 힘이 조금 남는 것 같았다.
나는 바카라을 읽는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한 권을 읽고 나면 다음 바카라을 펼쳤고, 다섯 권을 모두 읽으면 도서실에 가져가 반납한 뒤 다시 다섯 권을 빌렸다. 읽을 바카라이 떨어지면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했던 어린 시절과 달랐다. 바카라이 필요하면 도서실에 가면 됐다.
바카라을 고르는 방식도 그때부터 조금씩 생겼다. 학교에는 추천 도서 목록이 있었지만 나는 그 목록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바카라장 사이를 걸으며 제목을 살폈고, 눈에 들어오는 바카라을 꺼내 몇 장 읽어보았다. 철학에 관한 바카라에도 마음이 갔고 한국의 고전도 찾아 읽었다. 어려운 바카라을 골랐다고 해서 내용을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읽다가 막히면 다시 읽었고 그래도 뜻을 알기 어려우면 일단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바카라을 덮지는 않았다.
바카라을 고를 때는 목차부터 살펴보는 경우도 많았다.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훑어보면 바카라의 윤곽이 대강 보였다. 제목 하나가 마음에 들어 읽기 시작한 바카라도 있었고, 목차를 보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항목에 마음이 끌려 빌린 바카라도 있었다. 누가 읽을 바카라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바카라장 앞에서 내가 읽고 싶은 것을 골랐다.
그 일이 내게는 꽤 중요했다.
국민학교 때는 바카라을 읽고 싶어도 바카라이 없었다. 친구들이 돌려보던 잡지를 기다려야 했고, 새 바카라을 갖는 일은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중학교 도서실에서는 바카라이 내 앞에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꺼내볼 수 있었고, 읽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바카라으로 바꾸어도 됐다. 기다리기만 하던 독서가 처음으로 내 선택이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농사일을 하고 늦은 밤 숙제를 마친 뒤 바카라을 펼쳤다. 졸음이 쏟아져 바카라 위로 고개를 떨구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 다시 바카라을 세우고 몇 줄을 읽었다. 하루 종일 논과 밭에서 움직였던 몸은 무거웠지만 바카라장을 넘기는 손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바카라 속에는 내가 살아온 마을과는 다른 세계가 있었다.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있었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 있었으며, 이름조차 몰랐던 생각들이 문장으로 적혀 있었다. 바카라을 읽을수록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그 사실이 나를 주눅 들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음 바카라을 펼치게 했다.
누가 나에게 독서법을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다. 무엇부터 읽어야 하는지 스스로 정했고, 바카라을 읽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독후감을 잘 쓰는 법을 배운 적도 없었다. 다만 바카라을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읽었고, 더 알고 싶어지는 것이 생기면 다른 바카라을 찾아보았다.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또 다른 바카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렵 학교에서는 한 선생님이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생들을 남겨 가르쳤다. 한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아이들에게 한글과 한자를 따로 가르쳐 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교실에 남아 공부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글을 읽는 일이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바카라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에게도 바카라은 한동안 그런 것이었다.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고, 읽고 싶어도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바카라장 앞에 서서 내가 읽고 싶은 바카라을 직접 고를 수 있었다. 그 변화가 좋았다.
그때 내가 바카라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바카라을 읽으면 무엇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읽는 시간이 좋았다. 특히 내가 고른 바카라을 읽는 일이 좋았다. 추천 도서 목록에 적힌 순서대로 따라가는 것보다 바카라장 앞에서 제목을 살피고, 목차를 펼쳐보고, 마음이 가는 바카라을 골라내는 일이 더 재미있었다.
그렇게 바카라을 읽다 보면 예전에 품었던 궁금증이 다시 떠오르기도 했다. 산에서 보았던 것, 들판에서 만났던 것,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던 것들이 바카라 속에서 다른 이름과 설명을 얻기도 했다. 어릴 때는 그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카라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었다. 하나를 알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도서실에서 다섯 권을 빌려 나오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바카라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보다 더 오래 남아 있는 것은 내가 읽을 것을 처음으로 스스로 골랐다는 감각이다. 누군가 읽고 난 바카라을 기다리는 아이에서 벗어나 바카라장 앞에서 직접 바카라을 고르고, 읽고, 다 읽으면 다시 다른 바카라을 찾아갈 수 있었다.
품앗이 일을 마치고 흙 묻은 손으로 리어카를 끌고 집에 돌아오던 아이가 밤이면 바카라장을 넘겼다. 낮에는 논과 밭에서 몸으로 일을 배웠고, 밤에는 바카라을 통해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세상을 만났다. 둘은 서로 다른 일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조금씩 이어지고 있었다. 논에서 생긴 궁금증을 바카라에서 만나기도 했고, 바카라에서 읽은 이야기가 다음 날 눈앞의 풍경을 다르게 보이게 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모르는 것을 대하는 방법을 하나씩 익혀갔다. 누군가에게 물을 수도 있었지만, 바카라장 사이를 걸어가 직접 찾아볼 수도 있었다. 무엇을 읽을 것인지,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 다시 어떤 바카라을 펼칠 것인지는 내가 정할 수 있었다.
도서실에서 빌린 다섯 권은 바카라 다섯 권보다 조금 더 큰 의미로 내게 남았다. 읽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기다리기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궁금한 것이 생기면 내가 직접 바카라장을 뒤져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을 궁금해할 것인지 정하는 일부터 내 몫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