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도서보다 목차가 좋았다

by이룸

도서실에 익숙해지면서 바카라을 고르는 데도 내 방식이 생겼다. 바카라장 앞에 서면 제목부터 훑었다. 마음에 드는 제목이 있으면 바카라을 꺼내 표지를 보고 몇 장 넘겨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본문보다 먼저 목차를 펼쳤다.

목차에는 바카라의 길이와 방향이 대강 드러났다. 제목만 봐서는 알 수 없던 내용도 목차에 들어 있었다. 어떤 바카라은 첫 장부터 읽고 싶었고, 어떤 바카라은 중간에 적힌 한 항목 때문에 손이 갔다. 목차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으면 바카라을 조금 더 살펴보았다. 별다른 마음이 들지 않으면 다시 꽂았다.

학교에는 추천 도서 목록도 있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정해놓은 바카라들이었다. 나도 그 목록에 있는 바카라을 읽었지만 꼭 그 순서대로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바카라장에는 목록에 없는 바카라이 훨씬 많았고, 나는 그쪽이 더 궁금했다. 제목이 낯선 바카라을 꺼내보기도 했고, 오래되어 표지가 바랜 바카라을 펼쳐보기도 했다. 그러다 정말 읽고 싶은 바카라이 도서실에 없으면,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사달라고 떼를 쓰곤 했다. 신청한 바카라이 전부 다 들어오지는 않더라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서고 한쪽에 어느새 그 바카라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할 때면 참 반가웠다.

특히 철학 바카라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내용인지 정확하게 알고 고른 것은 아니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면 일단 목차를 펼쳤다. 어려운 말이 많아 몇 페이지 읽다가 멈춘 바카라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 바카라이 재미없다고 단정하지도 않았다. 아직 내가 읽을 때가 아닌가 보다 하고 다시 꽂았다.

한국의 고전도 찾아 읽었다. 바카라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문장이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쓰는 말과 달랐고 낯선 표현도 많았다. 그래도 아는 대목까지는 읽었다. 어떤 바카라은 며칠 붙잡고 있었고, 어떤 바카라은 생각보다 빨리 반납했다.

바카라을 빌릴 때 꼭 처음부터 끝까지 읽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다. 도서실 바카라이 풍족하진 않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돌려주면 됐다. 읽다가 궁금한 바카라이 생기면 다음번에 빌리면 되었다.


목차를 먼저 보는 습관은 바카라의 종류와 상관없이 이어졌다. 소설이든 교양서든 역사바카라이든 일단 앞쪽을 펼쳤다. 바카라 한 권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편했다. 제목만 보고 기대했던 내용과 목차가 전혀 다른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더 관심이 생겼다.

바카라장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싫지 않았다. 한 권을 고르고 나면 옆에 있는 바카라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바카라의 제목을 읽다가 또 한 권을 꺼냈다. 그러다 처음 골랐던 바카라을 다시 꽂고 다른 바카라을 가져오는 날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바카라을 고르는 데 누군가의 조언을 많이 받지 않았다.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정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선생님이 추천해 준 바카라도 있었지만, 도서관에서 어떤 바카라을 빌릴지는 결국 내 손으로 결정했다.

그래서 추천 도서 목록보다 목차가 더 좋았다.

추천 도서는 이미 누군가가 골라놓은 것이지만 목차는 그 바카라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본 뒤 마음이 가는 바카라을 골랐다. 읽어보고 아니면 돌려주고, 괜찮으면 다음에 다시 찾아 읽었다.

당시에는 이것이 특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카라을 펼치면 목차가 있으니 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바카라을 많이 읽는 친구들이 어떤 바카라을 읽는지도 살펴봤지만 그대로 따라 하지는 않았다. 내 손에 들어오는 바카라은 결국 내가 골랐다.

철학 바카라을 읽다가 이해하지 못한 채 넘어간 대목도 많았고, 고전을 읽다가 무슨 뜻인지 몰라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들여다본 적도 있다. 그렇다고 반드시 그 자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카라을 덮었다가 나중에 다시 펼치기도 했다.

어떤 내용은 몇 년이 지나서야 뜻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바카라을 읽다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르는 채로 다음 장을 넘겼다. 나중에 비슷한 내용을 다른 바카라에서 만나면 그때 조금 다르게 읽혔다.

바카라을 읽는 시간이 늘면서 바카라의 내용보다 먼저 보이는 것들도 생겼다. 저자가 어떤 순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왜 이 제목을 붙였는지,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자연스럽게 살펴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분석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읽었다.

도서실에서 바카라을 고르는 시간은 내게 조용한 시간이었다.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와 늦은 밤 바카라을 펼칠 때와는 달랐다. 도서실에는 아직 읽지 않은 바카라들이 눈앞에 가득했다. 바카라표지에 적힌 제목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참이 지나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다섯 권을 골랐다. 많이 읽으려고 정해놓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날 읽고 싶은 바카라을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다음에 도서실에 오면 또 다른 바카라을 고르면 됐다.

바카라을 읽으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바카라도 재미있었지만, 한 문장을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바카라에 더 오래 머물렀다. 그래서 철학 바카라이나 고전 쪽으로 손이 자주 갔다.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피하지는 않았다.

어떤 바카라은 끝까지 읽었고 어떤 바카라은 중간에 그만두었다. 바카라마다 내게 머무는 시간이 달랐다.

지금도 바카라을 펼치면 목차부터 보는 습관이 남 있다. 바카라의 내용을 미리 알려고 해서가 아니다. 먼저 전체를 훑어보는 것이 오래된 버릇처럼 되어 있다.

중학교 도서실에서 바카라을 고르던 시절에는 그저 바카라장이 좋아서 그랬다. 추천 도서라고 적혀 있는 바카라도 보고, 아무 표시도 없는 바카라도 보았다. 제목을 보고 꺼내고, 목차를 펼치고, 몇 장 읽어본 뒤 다시 꽂았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바카라을 가방에 넣었다.

그때 내게 필요했던 것은 누군가 정해준 한 권이 아니었다. 바카라이 많았고, 나는 그 앞에서 고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추천 도서 목록보다 목차를 먼저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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