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이 너무 읽고 싶었다

by이룸

학교가 끝났다고 하루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바카라가방을 내려놓으면 곧장 논으로 밭으로 나가야 했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어디 있느냐?”

아버지가 부르면 대답부터 해야 했다. 논에 물을 대야 할 때도 있었고 밭에서 해야 할 일도 있었다. 계절에 따라 일이 달라졌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해야 할 일은 늘 있었다. 바카라가방은 집 한쪽에 내려놓고 농사일을 따라나섰으며, 학교에서 배운 것은 잠시 뒤로 밀려났다.

해가 기울어도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일을 마치면 농기구를 챙기고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저녁밥을 준비해야 하니 우리보다 조금 먼저 집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농기구와 리어카를 챙겨 뒤따라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밥을 먹었다. 배가 고팠다. 저녁을 먹고 나서야 학교에서 내준 숙제가 생각났고, 그때부터 바카라상 앞에 앉았다.

숙제는 해야 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했으니 미룰 수도 없었다. 하지만 숙제를 마치고 나면 바카라을 읽을 시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바카라을 읽고 싶다는 마음은 하루 종일 남아 있었지만, 논과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몸은 이미 지쳐 있었다. 바카라상 앞에 앉아 몇 줄을 읽다 보면 눈꺼풀이 무거워졌고, 어느 날은 바카라을 펼쳐놓은 채 그대로 잠들기도 했다. 읽고 싶은 바카라이 있는데 읽을 수 없는 날이 계속되면서 바카라에 대한 마음은 오히려 더 커졌다.

친구들이 돌려보던 《어깨동무》나 《소년중앙》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누군가 새 잡지를 가지고 오면 그 아이가 먼저 읽고, 다 읽은 뒤에야 다음 친구에게 넘어갔다. 나는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친구가 바카라을 다 읽었다는 말을 들으면 반가운 마음에 먼저 다가가 물었다.

“다 봤어?”

바카라을 받아 들면 당장 집으로 가져가고 싶을 만큼 아까웠다. 하지만 내 바카라이 아니니 오래 가지고 있을 수도 없었다. 학교에서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그때라도 펼쳐보았고, 집에 가져오게 되는 날에는 숙제를 마친 뒤 남은 시간에 바카라장을 넘겼다. 몇 장 읽지도 못했는데 잠이 쏟아지는 날이면 바카라을 덮는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내일 다시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읽고 싶은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바카라을 읽을 수 있는 시간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그때는 바카라이 없는 것만 문제가 아니었다. 바카라을 읽을 수 있는 시간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집에는 읽을 바카라이 많지 않았고, 바카라을 사는 일은 더 어려웠다. 친구가 가진 바카라을 빌려보거나 누군가 읽고 난 잡지를 기다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전부였다. 그래서 바카라을 가진 친구가 부러웠고, 그 친구가 바카라을 읽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바카라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바카라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친구가 읽던 바카라을 옆에서 기웃거리기도 했고, 바카라을 가진 아이에게 무슨 내용인지 묻기도 했다. 제목이 마음에 남으면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찾아보려고 했다. 직접 읽지 못한 날에도 바카라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바카라장을 넘기면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고,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이 펼쳐질 것 같았다.

당시에는 내가 왜 그렇게 바카라을 읽고 싶어 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누가 바카라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가르쳐서도 아니었다. 그냥 알고 싶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고, 바카라 속에는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바카라을 읽고 나면 지금보다 조금 더 넓은 곳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하루는 늘 비슷하게 흘렀다. 학교가 끝나면 논으로 밭으로 갔고, 일이 끝나면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고 나면 하루가 거의 끝나 있었다. 그 짧은 틈에 바카라을 펼쳤다. 읽을 바카라이 귀했고 읽을 시간도 귀했기 때문에 바카라 한 장을 넘기는 일조차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한 장이라도 더 읽고 싶었다.

그래서 바카라을 기다렸다. 친구가 새 잡지를 가져오는 날을 기다렸고, 누군가 다 읽었다는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읽고 싶은 바카라의 제목을 기억해 두었다가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바카라을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도 컸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바카라을 많이 읽은 아이는 아니었다.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있는 바카라이 많지 않았고, 바카라을 펼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카라에 대한 마음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읽을 수 없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한 권의 바카라을 더 귀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바카라을 기다리는 아이가 되어갔다. 바카라이 많아서가 아니라 바카라이 부족했기 때문에 더 궁금했고,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바카라장을 넘길 수 있는 순간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그때의 간절함은 훗날 바카라을 대하는 내 태도에도 오래 남았다. 읽고 싶은 것이 생기면 쉽게 지나치지 않았고, 손에 들어온 바카라은 가능한 한 오래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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