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물어도 곧바로 답을 들을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부모님이 몰라서라기보다 내가 묻는 것과 부모님이 알고 있는 것의 방향이 달랐다. 부모님은 농사짓는 법이나 날씨를 살피는 법, 먹을 것을 마련하는 법처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몸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조금 달랐다.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질문할 사람이 생겼다고 여겼다. 선생님이었다. 교과서에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손을 들면 됐고, 선생님은 다시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생긴 궁금증은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내게서 나온 질문은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 번은 수업을 듣다가 궁금한 것이 생겼다. 공바카라 한쪽에 적어놓고 손을 들까 잠시 망설였다. 선생님은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고 아이들은 각자 공바카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물으면 수업을 끊는 것 같았다. 내가 제대로 묻고 있는지도 자신이 없었다. 옆자리 아이들이 들으면 별것도 아닌 것을 묻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마음도 있었다.
손을 들지 않았다.
수업은 그대로 지나갔고, 나는 공바카라에 적어둔 것을 다시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는 꼭 알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다시 생각났다.
그냥 물어볼걸.
그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
교과서 내용처럼 수업과 직접 관련된 것은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바카라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이나 학교에 오는 길에 생긴 궁금증은 어디에 가져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께 물어도 되는지, 내가 혼자 생각해 볼 문제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질문에도 저마다 어울리는 자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질문을 직접 꺼내지 않아도 답을 건네주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국민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은 모르는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성적에 따라 자리를 정했고, 1등과 꼴찌가 정해진 자리에서 공부하는 것도 낯설지 않았다. 선생님은 짝꿍과 함께 문제를 모두 풀기 전에는 집에 가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어린 나에게는 엄격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뒤에도 선생님은 부족한 공부를 가르쳐주셨다. 세 명씩 한 조가 되어 밤까지 남아 공부했고, 선생님은 우리가 문제를 풀 때까지 옆에서 살펴보셨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다시 설명해 주셨다. 한 번 설명해서 알아듣지 못했다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풀어보고, 또 틀리면 다시 살펴보았다.
선생님은 공부가 끝난 뒤 우리를 동네까지 데려다주셨다. 여자아이들은 자전거에 태우고 남자아이들은 걸어서 따라갔다.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배가 고팠다. 그래도 마음은 이상하게 든든했다. 선생님이 답을 대신 써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풀 수 있을 때까지 곁에 있어주셨기 때문이다.
중학교에서 만난 한문 선생님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답을 주셨다.
그 선생님은 한문을 가르치셨지만, 한문을 배우기 전에 먼저 한글을 익혀야 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한글을 제대로 쓰거나 읽지 못하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 방과 후에 가르쳐주셨다. 다른 학생들이 돌아간 뒤에도 글자를 짚어주고 읽게 하면서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하셨다.
그 아이들에게는 한문이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바카라에 적힌 것을 읽을 수 있어야 했고,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했다. 선생님은 그들이 왜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지부터 살폈다. 그리고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 한글을 다시 가르쳤다.
한 분의 선생님은 답을 찾을 때까지 곁에 있어주셨고, 다른 한 분은 질문을 하기 전에 필요한 것부터 갖추게 해 주셨다.
그 차이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나는 당시에는 그것을 ‘질문에 대한 답변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한 분은 문제를 끝까지 가르쳐주셨고, 다른 한 분은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셨을 뿐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두 선생님 모두 아이가 막혀 있는 지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수업 시간에 손을 들지 못했던 것도 어쩌면 비슷한 일이었다. 나는 질문을 몰라서가 아니라, 질문을 꺼내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멈춰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아이가 막히는 지점이 어디인지 먼저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질문에는 말로 묻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씩 생겼다. 어떤 아이에게는 설명을 한 번 더 해주는 것이 답이었고, 어떤 아이에게는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주는 것이 답이었다. 질문의 모양이 다르면 답을 건네는 방법도 달라질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교과서 밖의 질문도 받아주셨다. 교과서 공부도 중요했지만 내 관심은 자연이나 별, 비와 나무처럼 교과서의 순서와는 다른 곳으로 자주 향했다. 그런 질문을 던져도 귀찮아하지 않고 들어주셨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음악이나 미술은 배워도 그것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렵고,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먹고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절이니 어머니에게는 당연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기술은 지금도 살아가는 데 중요한 힘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는 어른이 미리 정해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교과서에 있는 질문만 질문이 아니었다. 어떤 아이에게는 숫자가 궁금하고, 어떤 아이에게는 기계가 궁금하고, 또 어떤 아이에게는 그림이나 음악이 궁금할 수 있다. 나처럼 자연이나 별을 오래 바라보며 궁금해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손을 쉽게 들지 못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공바카라 한쪽에 적어두었다. 질문을 하고 싶은 마음과 굳이 묻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번갈아 찾아왔다. 어떤 질문은 수업이 끝나면서 사라졌고, 어떤 질문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따라왔다.
나중에 바카라을 읽다가 우연히 답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예전에 묻지 못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이것을 물어봤다면 금방 알았을 텐데.
하지만 모든 질문이 그렇게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래 남아 있다가 다른 경험과 만나면서 풀리는 것도 있었다. 바카라에서 만난 한 문장이 예전의 궁금증을 건드리기도 했고, 직접 보고 겪은 일이 뒤늦게 그때의 질문과 연결되기도 했다.
그제야 질문이 반드시 그 자리에서 답을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두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도 그와 닮아 있었다. 어떤 답은 곁에서 기다려주는 일이었고, 어떤 답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질문을 잘하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궁금한 것을 궁금한 채로 남겨둘 수 있는 마음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공바카라 한쪽에 질문을 적어두곤 했다.
당장 답을 찾지 못해도, 잊지만 않으면 언젠가 다시 그 질문 앞에 설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