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바카라을 기다리는 아이

by이룸

국민학교에서는 방과 후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고전반이 있었다. 바카라을 좋아했던 나는 그 반에 들어가고 싶었다. 성적이 되어도 들어갈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곧바로 논과 밭으로 일을 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이 교실에 남아 바카라을 읽고 공부하는 시간에 나는 바카라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 농사일을 해야 했다. 고전반은 내게 성적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있을 수 있어야 했지만, 당시의 나는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바카라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카라을 읽을 수 있는 시간 사이에는 늘 거리가 있었다. 읽고 싶은 바카라은 있었지만 마음껏 읽을 수 없었고, 학교가 끝나면 바카라 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고전반에서 어떤 바카라을 읽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여유도 많지 않았다. 나는 교실을 나와 논과 밭으로 갔고, 바카라을 읽는 시간은 하루의 일을 모두 마친 뒤에야 내게 돌아왔다.


그렇다고 바카라에 대한 마음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읽을 수 없을수록 바카라이 더 궁금했다. 친구들이 돌려보던 바카라을 기다렸고, 누군가 바카라을 다 읽었다는 말을 하면 내 차례가 언제 올지부터 생각했다. 새 바카라을 사달라고 조를 형편도 아니었으니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부모님에게 바카라을 사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바카라 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많았다. 집안에는 농사일이 있었고, 먹고 입는 데 들어갈 돈도 빠듯했다. 바카라은 꼭 필요한 물건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국민학교까지만 공부하고 일을 배우는 것이 현실적인 길이라고 생각하셨다. 형들도 먼저 도시로 나가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도 농사일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때 무엇이 되고 싶은지 뚜렷하게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마을 밖의 세상이 궁금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다른 곳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바카라을 읽으면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만날 수 있었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래서 바카라이 더 궁금했다.


선생님은 중학교까지는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도 중학교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는 또 다른 문제였다. 학교에 보내려면 교복도 필요했고 바카라도 필요했다. 중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집안의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이야기를 꺼냈다. 한 번 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어서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야 했다. 어느 날에는 공장에 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학교에 보내주지 않으면 공장에 가겠다는 뜻이었다. 학교에 가고 싶다고 계속 이야기하면서도 그렇게 말해야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중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6촌 누나가 있었다. 누나는 내 이야기를 듣고 영어사전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개근상을 받아 국어사전도 한 권 받았다. 그 사전은 내게 꽤 귀한 바카라이었다. 영어사전까지 손에 들어오자 중학교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분명해졌다. 바카라 한 권이 학교에 가는 데 필요한 물건이면서 동시에 내가 앞으로 읽게 될 세상을 미리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부모님을 설득하고 중학교 등록을 마쳤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학교가 끝나면 농사일을 해야 했다. 중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논과 밭에서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몸집이 커지고 힘이 붙으면서 맡아야 할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학교에서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도서실이었다. 학교에 도서실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집에서는 바카라을 사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학교에는 바카라장이 있었고, 그 안에 여러 권의 바카라이 꽂혀 있었다. 누구에게 빌려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없었고 친구가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바카라장 앞에 서서 내가 읽고 싶은 바카라을 고르면 됐다.


처음에는 바카라장 사이를 한참 돌아다녔다. 제목을 읽고 바카라을 꺼내 몇 장 넘겨본 뒤 다시 꽂았다. 다른 바카라을 꺼내 목차를 살펴보기도 했다. 무엇이 좋은 바카라인지 알려주는 기준도 없었고, 무엇부터 읽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눈에 들어오는 바카라을 꺼내보고 마음이 가는 바카라을 골랐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읽었던 바카라 가운데 지금도 제목이 기억나는 바카라들이 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와 《좁은 문》이었다.


그 바카라들을 당시 내가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몇 번씩 읽었고 그래도 뜻이 잘 잡히지 않으면 일단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바카라의 내용을 누군가에게 설명할 만큼 정확하게 이해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바카라을 덮은 뒤 마음에 남는 것이 있었다.


《갈매기의 꿈》을 읽고 나서는 한 마리의 갈매기가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수레바퀴 아래서》와 《좁은 문》을 읽을 때는 내가 살아온 마을과는 다른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있었다. 그 바카라들이 내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던 세계보다 바카라 속의 세계가 훨씬 넓다는 사실은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그 무렵 동네에서 상여가 나가는 일을 도운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 어른들을 따라 장례 행렬을 돕고 나니 죽음이라는 것이 전과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평소에는 멀리 있는 일처럼 생각했던 죽음이 가까운 곳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실감했던 것 같다. 상여가 지나간 뒤에도 그 장면이 쉽게 잊히지 않았고, 죽음에 대해서도 전보다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만났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던 시기여서인지 바카라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따라왔다. 그런데 바카라은 쉽지 않았다. 철학적인 내용도 있었고 모르는 단어도 많았다.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모르는 단어를 하나씩 찾아가며 읽었다. 단어의 뜻을 알아도 문장의 의미가 바로 이해되는 것은 아니어서 같은 부분을 다시 읽기도 했다.


그래도 바카라을 덮지는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오히려 더 궁금했다. 나는 《이방인》을 두 번 읽었다. 두 번째 읽을 때도 바카라의 모든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던 문장이 다시 눈에 들어왔고, 바카라을 덮은 뒤에도 몇몇 장면과 생각이 오래 남았다. 그 무렵부터 카뮈의 바카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카뮈의 다른 바카라을 찾아보다가 《시지프 신화》를 읽게 되었다. 《시지프 신화》는 《이방인》보다도 더 어려웠다. 역시 모르는 단어가 많았고 철학적인 내용이 많아서 국어사전을 찾아가며 읽어야 했다. 한 문장을 읽고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을 때가 있었다. 시지프가 왜 계속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지도 그 나이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카뮈의 철학을 이해해서 읽은 것은 아니었다. 《이방인》을 읽고 나니 카뮈라는 작가가 궁금했고, 그 궁금증이 다른 바카라으로 이어졌던 것에 가까웠다.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모르는 채로 바카라을 덮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마음에 드는 바카라은 두세 번씩 읽는 편이었지만 《시지프 신화》는 그렇게 다시 읽지 못했다.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다시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노인과 바다》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내게는 쉽게 읽히지 않는 바카라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시지프 신화》는 유난히 어려웠던 바카라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바카라을 읽는다고 당장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바카라을 읽었다고 농사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가 끝나면 논과 밭으로 가야 했고,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숙제를 해야 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바카라을 펼칠 수 있었다. 졸음이 쏟아져 바카라 위에 고개를 떨구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다음 날이면 다시 바카라을 찾았다.


그때 내가 바카라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바카라을 읽으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읽는 시간이 좋았다. 특히 내가 직접 고른 바카라을 읽는 일이 좋았다. 누군가 정해준 순서대로 읽는 것보다 바카라장 앞에서 제목을 살피고, 몇 장을 펼쳐보고, 마음이 가는 바카라을 고르는 일이 재미있었다.


바카라을 고르는 일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처음 생긴 작은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국민학교 때는 읽고 싶은 바카라이 생겨도 기다려야 했다. 누군가 먼저 읽고 난 바카라이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중학교 도서관에서는 더 이상 그렇게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읽고 싶은 바카라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 꺼낼 수 있었다.


누가 나에게 독서법을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다. 어떤 바카라부터 읽어야 하는지 스스로 정했고, 어려운 바카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읽었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바카라을 읽다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다른 바카라을 찾아보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바카라 한 권이 또 다른 질문을 데리고 온다는 것을 조금씩 경험했다. 산에서 보았던 것, 들판에서 만났던 것,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던 것들이 바카라 속에서 다른 이름과 설명을 얻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카라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었다. 하나를 알게 되면 궁금한 것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곳으로 눈길이 옮겨갔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내게 생긴 것은 학교라는 공간만이 아니었다. 내가 읽을 바카라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누군가 읽고 난 바카라을 기다리는 아이에서 바카라장 앞에 서서 스스로 읽을 바카라을 찾는 아이로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바카라을 통해 특별한 지식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그냥 알고 싶었다. 바카라 속에는 내가 살던 마을 밖의 세상이 있었고, 내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의 생각이 있었다. 그 세계를 한 장씩 넘겨보는 일이 좋았다.


그래서 중학교에 가고 싶었던 마음도 이제 와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잘하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읽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 읽고 난 바카라을 기다리는 대신 내가 읽고 싶은 바카라을 내 손으로 고르고 싶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읽고 싶은 바카라을 기다렸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바카라장 앞에 서서 내가 읽을 바카라을 골랐다. 그 작은 변화가 내게는 꽤 컸다. 바카라을 읽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읽을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래 남았다. 바카라을 고를 때 누가 정해준 답보다 내가 궁금한 쪽을 먼저 살피는 습관, 제목을 읽고 목차를 펼쳐보고 마음이 가는 곳을 찾아가는 버릇이 그때 생겼다. 나중에 돌아보니 내가 바카라을 읽는 방식은 그때부터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방인 #알베르까뮈 #Albert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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