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면 계절이 먼저 보였다. 달력을 보고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겨울에는 산에 올라가도 먹을 것이 거의 없었지만 계절이 바뀌면 산길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도 달라졌다. 봄이면 새로 올라오는 풀과 꽃이 보였고, 여름이면 풀숲이 짙어졌다. 산딸기가 익는 때가 있었고 도라지 뿌리가 눈에 들어오는 때도 있었다. 칡뿌리는 조금 달랐다. 땅속 깊이 들어가 있어 줄기를 잡아당긴다고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비탈을 타고 올라가 줄기를 따라가며 땅을 파야 했고, 어린아이에게는 제법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흙 속에서 굵은 칡뿌리가 모습을 드러내면 그동안 들인 수고가 아깝지 않았다.
산에 오르는 이유가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서 구할 수 있는 땔감이 점점 줄어들면서 아이들도 능선을 넘어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 했다. 나뭇가지를 주워 지게에 얹고 다시 산을 내려오는 일이 생겼고, 산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날씨가 달라지는 것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처럼 라디오에서 일기예보를 들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우리 집에는 라디오가 없었으니 비가 올지 안 올지도 미리 알 방법이 없었다. 아침에는 하늘이 멀쩡해 보여 산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를 만나는 일도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옷이 젖는 것을 막으려고 주변에서 방법을 찾았다. 큰 잎을 골라 몸을 가리거나 옷 위에 덧대면 가는 비 정도는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쏟아지면 별 소용이 없었지만, 그때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젖지 않으려면 무엇을 이용할 수 있을까 둘러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잎이었고, 그것으로 몸을 가렸다. 주변에 있는 것을 살펴 필요한 만큼 이용하는 일은 산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늘 같지 않았다. 낮에는 익숙한 길이었지만 해가 지고 나면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달도 뜨지 않은 흐린 날 지게에 땔감을 가득 싣고 산길을 내려오는 일은 어린아이에게 쉽지 않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웠고, 잘못 발을 내디디면 미끄러질 수도 있었다. 지게에 실린 무게 때문에 몸을 바로 세우기도 힘들었다.
그럴 때면 산 중간에 있는 무덤에 기대어 쉬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아이가 어두운 산속 무덤가에서 쉬는 일이 무서울 법도 한데, 그때는 그런 생각보다 지친 몸을 쉬게 하는 것이 먼저였다. 무덤 주변에는 풀이 거의 없었고 넓고 깨끗하게 정리된 곳도 많았다. 지게를 내려놓고 무덤 옆에 몸을 기대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으며, 너무 지친 날에는 그대로 누워 잠이 들기도 했다.
무덤에 음식이 놓여 있는 날도 있었다. 제사를 지내고 간 뒤였을 것이다. 배가 고플 때는 상하지 않은 음식이라면 먹었다. 누가 놓고 갔는지, 누구를 위한 음식인지 따져볼 형편도 아니었다. 먹을 수 있으면 먹었다. 여러 무덤이 가까이 모여 있는 곳은 쉬기에도 좋았다. 주변에 큰 나무가 많지 않아 바람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고 하늘을 가리는 것도 적었다. 지게를 내려놓고 무덤에 기대어 누우면 눈앞에 하늘이 넓게 펼쳐졌다.
그때 별을 많이 보았다.
도시에서 보는 밤하늘과는 달랐다. 전등이 거의 없으니 주변이 아주 어두웠고,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 또렷하게 보였다. 북두칠성은 알아볼 수 있었고 금성도 알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별 가운데 내가 아는 것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렇다고 아는 별만 보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눈을 조금 옮기면 이름을 모르는 별들이 계속 나타났고, 그 별들을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이 이어졌다.
저 하늘은 어디까지 있을까. 우주는 대체 어디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저 많은 별 가운데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은 몇 개나 될까. 사람처럼 살아가는 생명이 다른 곳에도 있을까. 그곳에도 밤이 있고 별이 보일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별은 얼마나 먼 곳에 있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물어도 당장 답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긴 적도 없었다. 산에서 내려오느라 몸은 지쳐 있었지만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생각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갔다. 어린 마음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 자체가 이상하고 신기했다.
산에서는 별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계절이 바뀌면 들려오는 소리도 달라졌다. 봄이 되면 아침부터 산 쪽에서 새들이 울었다. “짹짹” 하고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저쪽 산에서 “뻐꾸기, 뻐꾸기” 하고 들려오는 소리도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새가 보일 때도 있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소리는 분명한데 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나무 위를 한참 올려다보곤 했다.
여름에는 매미 소리가 산을 가득 채웠다.
그 사이로 작은 새들이 짧게 울다가 금세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새소리는 조금씩 사라지고 개구리울음과 풀벌레 소리가 들판을 채웠다. 가을이 깊어지면 새소리도 한결 드문드문해졌고, 겨울에는 잎이 모두 떨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서 들려오는 새 한 마리의 울음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나는 그때 그 소리가 무슨 새의 울음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산 어딘가에 새가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낮에는 새들이 산과 들 사이를 오갔고, 숲이나 밭 가장자리에서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었다. 어른들은 먹을 수 있는 풀과 나물을 보면 금세 알아보았다. 나도 몇 가지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지만 꽃 이름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다.
그렇다고 이름을 모른다고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다. 저 꽃은 왜 저곳에서 피는지, 같은 꽃인데도 어떤 곳에서는 많이 피고 어떤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지가 눈에 들어왔다. 산에 자주 다니다 보면 계절은 날짜보다 먼저 몸으로 알게 된다. 풀의 색이 달라지고 먹을 것이 달라지며 산길의 상태도 달라졌다. 비가 온 뒤에는 땅의 냄새가 달라졌고 비탈길에서는 발을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날씨가 맑은 날과 흐린 날의 산도 서로 달랐다.
관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것을 관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산에 자주 다니다 보니 보이는 것이 많아졌을 뿐이다. 필요한 것을 찾으러 산에 들어갔고 위험한 곳에서는 조심했으며 비가 오면 젖지 않을 방법을 찾았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산은 무엇을 가르쳐주겠다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곳이 아니었고, 나 역시 무엇을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산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눈앞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익혀갔다.
산에서 내려오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지게를 내려놓고 무덤에 기대어 쉬는 동안에는 잠시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다. 주변에 나무가 적은 무덤가에서는 별이 더 잘 보였고 달이 없는 밤이면 하늘은 더욱 깊어 보였다. 북두칠성을 찾고 금성을 바라본 뒤에도 눈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 모르는 것들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았다. 답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그 생각을 그만둘 이유도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 없으니 혼자 생각했고, 생각하다 보면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품었던 질문들은 답을 얻지 못한 채 오래 남아 있었다.
훗날 일본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오래된 질문들이 다시 떠올랐다. 일본어로 된 바카라이라 모르는 단어가 많았다. 사전을 옆에 놓고 단어를 찾아가며 며칠 동안 밤낮으로 읽었다. 바카라장을 넘길수록 어린 시절 무덤에 기대어 올려다보던 하늘이 떠올랐다. 그때 품었던 생각들이 바카라 안에서 조금씩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우주가 어디까지인지, 별은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다른 곳에도 생명이 있을 수 있는지 궁금했던 어린 시절의 생각이 그제야 바카라이라는 통로를 만난 셈이었다.
귀국한 뒤에는 한국어판도 사서 다시 읽었다. 내용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처음 일본어판을 읽을 때 느꼈던 설렘은 다시 오지 않았다. 모르는 단어를 하나씩 찾아가며 겨우 한 문장을 이해하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던 시간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마 처음의 마음은 바카라에 대한 감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남아 있던 질문 하나가 마침내 바카라을 통해 길을 찾았다는 기쁨에 가까웠다.
산에 오르던 어린 시절에는 그것을 몰랐다. 그저 산에 가면 계절이 달라 보였고 비가 오면 젖지 않을 방법을 찾았으며, 어두운 길에서는 잠시 무덤에 기대어 쉬었다. 그러다 하늘이 눈에 들어오면 별을 보았고 북두칠성을 찾고 금성을 확인한 뒤에도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하늘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는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저 별들은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다시 궁금해졌다.
아무도 그 질문에 답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품고 있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답을 바로 찾을 방법이 없었고, 그래서 질문은 사라지지 않은 채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산에서 보았던 계절의 변화와 이름 모를 꽃, 비에 젖은 산길과 어두운 하늘, 그리고 무덤에 기대어 바라보던 별들은 그렇게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함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