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왜 저렇게 생겼을까

by이룸

산에 오르면 이상하게 나무뿌리에 눈이 간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만한 곳에서도 나는 걸음을 늦추게 된다. 비가 내린 뒤라면 더 그렇다. 흙이 젖어 비탈을 따라 조금씩 쓸려 내려간 자리에는 땅속에 있어야 할 뿌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젖은 뿌리에 흙이 군데군데 붙어 있고 작은 돌이 뿌리 사이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춘다.

얼마 전에도 산길을 걷다가 그런 나무를 만났다. 비탈 한쪽의 흙이 파여 굵은 뿌리 하나가 길게 드러나 있었고, 빗물이 지나간 자리는 가느다란 골을 만들고 있었다. 나무는 그 뿌리로 땅을 붙잡고 서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앞에 서서 바라보다가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어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런데 뿌리만 찍는 것보다 나무 전체를 함께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와 주변의 흙, 비가 지나간 흔적까지 함께 보여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니 오래전 산길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던 어린 내가 떠올랐다.

그때도 땅 위로 드러난 뿌리가 이상했다. 산이나 들에서 나무를 보는 일은 흔했지만 나무를 보려고 밖에 나간 것은 아니었다. 걷다가 마주쳤고, 일을 하다가 곁을 지나쳤다. 그런데 어느 날 땅 위로 뿌리가 드러난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뿌리 한쪽이 흙 밖으로 나와 있었고 그 옆에는 돌 하나가 박혀 있었다. 뿌리가 돌을 피해 돌아간 것인지, 돌이 나중에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땅속에 있어야 할 뿌리가 밖으로 나와 있는 모습도 이상했고, 돌과 맞닿은 부분에서 뿌리가 굽어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뿌리를 만져보았다. 흙이 묻어 있었고 표면은 나무줄기처럼 단단했다. 주변의 흙을 손가락으로 조금 털어내자 뿌리가 더 드러났고, 돌에 가까운 부분은 다른 곳보다 굽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사람 생각이 났다. 사람의 손이나 발이 돌에 눌려 있으면 아플 텐데, 나무도 그럴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아프다고 할까.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가기도 마음에 걸렸다. 나는 주변의 흙을 손으로 끌어모아한 움큼씩 뿌리 가까이에 가져다 놓았다. 흙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고, 다시 주워 담아 조금씩 올려놓았다. 드러난 뿌리가 흙 아래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손바닥으로 흙을 눌러 단단하게 다졌다. 그렇게 해놓으면 나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실제로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고, 그때는 나무뿌리가 왜 땅 밖으로 드러나는지도 몰랐다. 다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단순한 생각이었다. 뿌리가 땅 위로 나와 있으니 다시 흙을 덮어주면 된다고 여겼고, 돌에 눌려 있으니 그 주변을 조금 편하게 만들어주면 나무도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나무의 생태를 이해해서 한 행동도 아니었고, 어디에서 배운 지식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습에서 사람의 몸을 떠올렸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본 것뿐이었다.

그 뒤로 자연을 보는 눈도 조금씩 달라졌다. 나무를 보면 줄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살폈고, 땅 위로 나온 뿌리 주변의 흙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눈에 들어왔다. 바카라을 읽다가 나무뿌리에 관한 내용을 만나면 예전에 보았던 나무가 떠올랐다. 뿌리는 물과 양분을 흡수하고 나무를 지탱하며, 비나 바람 같은 자연환경에 따라 주변의 흙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릴 때 품었던 궁금증도 조금씩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의 생각이 틀렸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고, 모르면서도 눈앞의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기 때문에 나중에 알게 된 지식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산길에서 나무뿌리를 바라보는 습관은 지금도 남아 있다. 비가 많이 온 뒤 산에 오르면 흙이 쓸려 내려간 자리를 먼저 살펴보게 되고, 뿌리가 드러난 나무를 만나면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살핀다. 왜 이곳의 흙만 낮아졌을까, 빗물이 어느 방향으로 흘렀을까, 뿌리는 원래부터 이렇게 드러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때로는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어두기도 한다. 예전에는 흙을 덮어주려고 손을 댔다면 지금은 그 나무가 서 있는 자리와 주변의 흔적을 오래 바라보게 된 셈이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나는 오래 생각해 왔다.


비가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고, 바람이 불면 가지가 흔들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땅의 모양도 조금씩 달라진다. 나무는 자신이 겪은 시간을 말로 설명하지 않지만 뿌리와 줄기, 껍질과 가지의 모양으로 그 흔적을 남겨놓는다. 나는 그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면서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그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땅 위로 드러난 뿌리를 보며 나무도 사람처럼 아플 수 있을지 궁금해했고, 그래서 흙을 덮어주었다. 지금의 나는 그 앞에서 비와 흙과 나무가 지나온 시간을 생각한다. 바라보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궁금해서 한 번 더 살펴보는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산길에서 땅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오래전 흙을 손으로 모아 뿌리 위에 덮어주던 기억 때문인지, 나무뿌리에는 지금도 이상할 만큼 정이 간다.


휴양림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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