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대답을 얻지 못한 궁금증은 집을 나선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당을 벗어나 길로 나서면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새로운 질문을 하나씩 달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모르는 것이 생기면 선생님께 물어보면 됐지만, 학교 밖에서 만나는 것들은 교과서처럼 얌전히 자기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사는 마을과 들판과 산에는 이름을 모르는 것들이 훨씬 많았다.
마당 한쪽을 내려다보면 개미가 줄을 지어 지나갔다. 따뜻한 날에는 벌이 꽃 주변을 맴돌았고, 나비는 잠깐 내려앉았다가 인기척만 느껴도 날아가 버렸다. 풀숲에서는 뱀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서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길은 자꾸 그쪽으로 갔다. 풀잎이 흔들리고 뱀의 몸이 그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어디까지 갔는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게 됐다. 새는 더 어려웠다. 까마귀처럼 이름을 아는 새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새가 더 많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사진을 찍어 이름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눈으로 생김새를 기억해 두었다가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새의 이름을 알게 된다고 해서 마음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무엇을 먹는지, 밤에는 어디에서 쉬는지, 계절이 바뀌면 다른 곳으로 떠나는지까지 꼬리를 물고 궁금해졌다.
개미는 유난히 오래 보게 되는 벌레였다. 한 마리가 지나가면 조금 뒤에 또 한 마리가 따라왔다. 처음에는 몇 마리뿐이던 것이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줄처럼 이어져 있었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을 그 길에 가져다 놓았다.
개미 한 마리가 멈추더니 손가락을 피해 옆으로 돌아갔고, 뒤따라오던 개미도 잠시 방향을 바꾸었다. 길이 막혔으니 다른 길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손가락을 치우자 다시 원래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게 이상했다. 개미들은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지도 못할 텐데 길이 막히면 돌아가고 길이 열리면 다시 지나갔다. 앞에 있는 개미와 뒤에 있는 개미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지, 냄새 같은 것을 따라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몇 번이고 같은 일을 해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싫증 나지 않았다. 개미에게는 내가 만든 길이 장애물이었을 뿐이고, 나는 그 작은 행렬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었다. 한참을 쪼그리고 있다가 어머니가 부르면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왜 그렇게 오래 있었느냐고 물으면 나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벌도 마찬가지였다.
꽃이 여러 송이 피어 있는데도 어느 꽃으로 내려앉는지 유심히 보았다. 한 번 내려앉았던 꽃으로 다시 가는 것 같으면 그 이유가 있을 것 같았고, 다른 꽃으로 옮겨가면 또 그것이 궁금했다. 나비는 가까이 가기가 어려웠다. 몇 걸음만 다가가도 날아가 버리니 멀찍이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뱀은 가까이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더 멀리서 보았다. 머리가 먼저 풀 사이로 사라지고 한참 뒤에 꼬리가 따라 들어가는 모습은 볼 때마다 신기했다. 잠깐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방금 전까지 그곳에 뱀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자연은 늘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른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어떤 풀은 먹을 수 있고 어떤 것은 먹으면 안 되는지, 산에서 어느 길이 안전한지, 비가 많이 오면 무엇을 먼저 챙겨야 하는지 같은 것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묻는 방향은 조금 달랐다. 꽃 이름을 물으면 이름은 알려주셨지만, 나는 그 이름을 듣고 다시 생각했다. 왜 이 꽃은 이곳에서 피는지, 다른 곳에서도 자라는지, 해마다 같은 계절에 나타나는지 궁금했다.
이름 하나를 알아내면 질문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질문이 그 자리에 들어왔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발걸음이 늦어졌다. 가까이 가서 보다가 잘 모르겠으면 한두 걸음 물러나 다시 보았다. 같은 장소도 비가 온 뒤에는 냄새와 색이 달랐고, 햇볕이 오래 내리쬔 날에는 풀이 축 늘어져 있었다. 며칠 뒤 다시 가보면 전에 보았던 꽃이 사라지고 다른 것이 피어 있었다. 나는 그런 차이를 알아가는 일이 재미있었다. 그때는 그것을 관찰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공부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공바카라에 적어둘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시험에 나올 것도 아니었고 누가 잘했다고 칭찬해 줄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한 번 본 것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며칠 전 보았던 개미가 다시 떠올랐고, 이름 모를 새가 다시 나타날지도 궁금했다. 같은 장소를 지나면서 전에 보았던 것과 달라진 부분을 찾기도 했다.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혼자 계속 말을 걸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자연이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아니었다. 개미가 걸음을 멈춰주지도 않았고, 새가 나무 위에서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꽃은 이름을 모르는 채 피었다가 졌고, 뱀은 내가 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듯 풀숲으로 사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다시 보는 것뿐이었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다음에 또 보고, 답을 알 수 없으면 기억해 두었다가 언젠가 바카라이나 사람을 통해 확인하면 됐다. 급하게 답을 만들어낼 이유도 없었다. 궁금한 채로 며칠을 지내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바카라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뒤에는 그런 순간이 가끔 찾아왔다. 어느 날 바카라장을 넘기다가 예전에 마당에서 보았던 꽃의 이름을 발견하면 괜히 반가웠다. 그림을 보고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정말 그 꽃이 맞는지 기억을 더듬어보기도 했다. 이름 하나가 붙어 있는 것이 묘하게 반가웠다. 내가 아무렇게나 바라보았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기록할 만한 대상이었다는 사실도 그때 조금씩 알게 됐다.
그렇다고 바카라을 읽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카라을 읽으면 모르는 것이 더 늘어났다. 이름을 알면 생김새가 궁금했고, 생김새를 알면 사는 곳이 궁금했다. 사는 곳을 알게 되면 그곳의 날씨와 먹이가 궁금해졌다.
하나를 알았다는 것은 다른 하나가 문을 열었다는 뜻에 가까웠다. 나는 그 문을 자꾸 열어봤다.
지금 생각하면 자연은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청설모도, 개미도, 벌도, 나비도, 달팽이도, 이름 모를 새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각자의 방식대로 움직이다가 사라졌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때의 나에게 자연은 바카라 보다 먼저 펼쳐진 것이었다.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준비도 필요하지 않았다. 궁금하면 집 밖으로 나가면 됐다. 마당을 보고, 길을 걷고, 들판을 지나 산에 오르면 또 다른 것이 나타났다. 이름을 몰라도 볼 수 있었고 설명을 듣지 못해도 기억할 수 있었다.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가면 어디로 가는지 조금 더 지켜보았고, 이름 모를 새가 나뭇가지에 내려앉으면 날아갈 때까지 눈으로 따라갔다. 풀숲에서 뱀이 사라진 뒤에는 흔들리던 풀잎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까지 바라보았다. 그것으로 궁금증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음에 다시 만나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면 됐다.
나는 아직 자연에게 무엇을 배웠다고 말할 만큼 자라지 않았다. 그저 질문할 곳이 마땅하지 않았고 눈앞에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래서 보고 또 보았다. 이름을 몰라도 보고, 답을 몰라도 보고, 다음 날이면 어제 보았던 자리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바라본 것들이 하나둘 기억 속에 쌓이고 있었다. 훗날 그것들이 내게 어떤 버릇으로 남을지는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