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할 사람이 없었다

1부. 질문할 사람이 없었다

by이룸

질문은 선생님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생긴 생각인지, 그전부터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학교에서는 모르는 것이 생기면 선생님께 물어보면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교과서를 읽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손을 들었고, 선생님이 내 자리로 오시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질문을 하면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집에도 궁금한 것은 많았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보다 오히려 집과 들과 산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더 궁금할 때가 많았다. 왜 나무마다 껍질의 모양이 다른지, 같은 산에 자라는 풀인데도 잎의 생김새가 제각각인 이유는 무엇인지, 비가 내리기 전 하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밤에 보이는 별은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같은 것들이었다. 궁금하다고 해서 바로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부모님께 물어보면 대답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세상 물정을 모르셨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어린 시절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은 대부분 부모님에게 배웠다. 농사철이 언제 시작되는지, 어느 밭에 무엇을 심어야 하는지, 일을 하려면 어느 집에 먼저 손을 빌려야 하는지, 잔치가 있으면 몇 사람의 음식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같은 것은 부모님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오랫동안 농사를 짓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경험이 이미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두 분 모두 학교에 다니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한글을 읽고 쓰지 못했고, 아버지도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숫자를 계산하는 일만큼은 두 분 모두 빨랐다. 농사에 필요한 셈이나 물건을 사고팔면서 따져야 하는 계산은 머릿속으로 금방 해냈다. 정식으로 구구단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계산을 못해서 일을 그르치는 분들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 살아가면서 익히는 지식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에게는 글보다 다른 재주가 많았다.

음식을 잘하셨다. 마을에 잔치가 있는 날이면 어머니는 아침부터 음식을 만들러 갔다. 우리 마을은 한 성씨만 모여 사는 곳이 아니어서 친척도 가까이 살았지만 서로 다른 성을 가진 집들도 함께 어울려 지냈다. 농사일이 몰리는 시기에는 품앗이를 했고, 잔치가 있으면 서로 사람을 보태며 일을 나누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단순히 일을 거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음식을 준비할지 정하고, 재료의 양을 가늠하고, 마지막에는 음식의 간을 맞추는 일까지 맡았다. 여러 사람이 먹는 음식은 한두 사람의 입맛에 맞추는 것과 달랐을 텐데도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그 일을 해냈다. 잔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음식을 조금 싸 오는 날도 있었다. 품앗이라는 것은 그렇게 손만 오가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의 집에 들어가 함께 일을 하고, 그날의 음식과 마음까지 나누는 일이었다.

잔치가 있는 날이면 어머니의 모습도 평소와 달랐다.

농사일을 할 때와 달리 한복을 꺼내 입고 참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은 뒤 비녀를 꽂았다. 머리에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조금 발라 윤기를 내기도 했다.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다시 만지고 치맛자락을 살피다가 나를 불러 물었다.

“이게 낫나?”

나는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어머니가 거울을 보며 묻는 모습이 좋아서 한참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논밭에서 흙을 묻히고 일하던 사람이 그날만큼은 머리를 빗고 옷매무새를 고쳤다. 어머니에게는 그 시간이 농사일과 살림에서 잠시 벗어나는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나는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평소와 다른 어머니를 보는 일이 좋았다.

장구를 칠 때는 더 달랐다. 장구를 어깨에 가로메고 치마를 살짝 올려 고정한 채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한 마리 새처럼 보였다. 평소 집 안에서 보던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나타난 것 같았다.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한 번 들은 노래의 가사를 절반 가까이 기억해 따라 부르기도 했다. 가사를 적을 수는 없었지만 노래의 리듬과 가사는 귀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것을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 어머니가 노래를 잘한다고만 생각했다.

사람을 대하는 모습도 그랬다. 배가 아프다며 찾아오는 동네 사람들이 있었다. 병원이 멀었던 시절이라 낮에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새벽이나 밤늦게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고,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까지 가리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콩이나 쌀을 가져왔고 어떤 사람은 빈손이었다. 어머니는 무엇을 가져왔는지를 먼저 묻지 않았다. 아픈 사람이 찾아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여러 번 궁금해했다. 왜 저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지, 왜 받은 것이 없는데도 그렇게 해주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물어보지는 못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묻던 질문과는 성격이 달랐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답을 들었다고 해서 어디에 적어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나무는 왜 나무마다 다르게 생겼을까. 산에 피는 꽃들은 누가 심어놓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자리에서 해마다 다시 피어나는 것일까. 비는 어디에서 시작되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일까. 밤하늘의 별은 얼마나 멀리 있으며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린 마음에는 별 하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비슷한 말을 했다.

“바카라에 다 나온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바카라에 다 나온다면 바카라을 읽으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우리 집에는 그 바카라이 없었다. 우리 집에서 바카라은 학교 교과서가 거의 전부였다. 동화바카라이나 어린이 잡지를 사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읽는 《어깨동무》나 《소년중앙》이 부러웠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친구가 다 읽은 잡지를 빌려서 읽을 수는 있었지만 새것을 내 것으로 갖는 일은 달랐다.

나는 친구가 잡지를 다 읽기를 기다렸다.

한 친구가 읽고 나면 다른 친구에게 넘어갔고, 그다음에야 내 손에 들어왔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잡지였지만 내게는 새 바카라과 다르지 않았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다른 이야기가 나왔고, 그림 하나에도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읽고 싶은 마음은 많은데 다음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니 오래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다.

바카라을 살 돈이 있으면 먹을 것을 먼저 사야 했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배가 고픈데 바카라을 먼저 살 수는 없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바카라이 없는 곳에서 다른 것을 보았다.


친구들과 가까운 과수원에 들어가 과일을 따 먹다가 들킨 적도 있었다. 어른들이 우리를 발견했을 때 나는 달리기부터 했다. 평소 산을 오르내리며 놀던 터라 어느 길로 들어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달리기에도 자신이 있었다. 뒤도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익숙한 산길로 들어갔다. 결국 붙잡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붙잡혔더라도 친구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혼나는 것이 무서워서 도망쳤지만, 친구를 대신 내어주는 일은 더 싫었다. 어른들은 우리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짐작했을 것이다. 붙잡지 못했다고 해서 모르는 것은 아니었고, 나중에는 짐작만으로도 충분히 혼이 났다. 그때는 억울하다는 생각보다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고구마를 수확하고 난 밭에 싹이 난 고구마가 보이면 그것을 캐 먹기도 했다. 흙을 털어 급하게 먹고 물을 마시면 허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이 먼저 보였고, 산과 들은 우리에게 놀이터이면서 때로는 먹을 것을 찾는 곳이기도 했다.

산에서는 먹을 것이 조금 더 많았다.

산딸기도 있었고 도라지 뿌리도 보였다. 칡뿌리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굵은 칡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비탈을 타고 내려가 흙을 파고 또 파야 했다. 겨울을 제외하면 산과 들에는 계절마다 다른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른들은 나물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꽃의 이름까지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궁금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나는 이름을 몰랐다. 왜 저 풀은 여기에서만 자라는지, 왜 저 꽃은 다른 꽃과 다르게 생겼는지 물어보고 싶어도 마땅히 물을 사람이 없었다.

당시에는 산에 오르는 일도 집안일의 일부였다. 땔감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무를 하러 갔고, 가까운 곳의 땔감이 줄어들면 능선을 넘어 더 먼 곳으로 가기도 했다.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집에서 해야 할 일이었고, 아이들도 그 일을 함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가면 땔감만 보이지 않았다.

발밑에 작은 풀이 보였고 바위틈에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의 모양도 날마다 달랐다. 비가 온 다음 날이면 같은 길인데도 전혀 다른 냄새가 났다. 산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계속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 변화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 가르쳐준 것은 아니었다.

동네에 공부를 많이 하신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다. 어른들에게 예를 갖추는 법이나 유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나는 그 말씀도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궁금증을 모두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때로 아주 사소했고, 때로는 어른들이 왜 그런 것을 궁금해하느냐고 생각할 만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질문을 마음속에 넣어두는 일이 점점 익숙해졌다.

학교에서는 손을 들면 선생님이 대답해 주셨지만 집에서는 내가 알아서 해야 했다. 바카라이 없으면 친구의 바카라을 기다렸고, 이름을 모르는 꽃은 다음에 다시 보려고 기억해 두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묻기 전에 먼저 바라보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는 그것을 특별한 습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궁금한 것이 많았을 뿐이다.

지금 돌아보면 질문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린 시절에는 분명 답을 듣고 싶었고, 바카라 한 권이라도 마음껏 읽고 싶었다. 하지만 답을 쉽게 얻지 못했던 시간 동안 나는 이상한 버릇 하나를 갖게 되었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지나치지 않고 한 번 더 바라보는 버릇이었다.

그 버릇은 학교를 벗어나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바카라을 읽게 되었을 때는 목차부터 살폈고, 길을 걸을 때는 남들이 그냥 지나치는 건물의 창이나 문을 보았다. 산에서 나무를 하던 아이가 어느 날 공간을 설계하는 일을 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때부터 이어진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궁금했다.

질문할 사람이 없어서 더 오래 바라보았고, 바카라이 없어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자세히 보았다.

아마 내 호기심은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