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보다 기다림이 어려웠다

by진경수

충고는 생각보다 쉽다. 특히 내가 이미 지나온 길을 누군가 이제 막 걷고 있을 때 그렇다. 어디에 돌부리가 있는지 안다. 어디서 넘어지기 쉬운 지도 알고 있다. 그러니 말해주고 싶어진다.


“그렇게 하면 안 돼.”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쪽이 더 좋아.”

“괜히 돌아가지 말고 이렇게 해.”


좋은 뜻이다. 상대가 덜 실패했으면 좋겠고,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굳이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 역시 그런 말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충고는 몇 분이면 할 수 있지만 사람을 기다리는 데는 몇 달, 때로는 몇 년이 걸린다는 것을. 그래서 충고보다 기다림이 훨씬 어려웠다.



내가 아는 길이 그의 길은 아니었다


산을 오래 다니다 보면 같은 정상으로 가는 길도 여러 갈래가 있다는 것을 안다. 짧지만 가파른 길이 있고, 조금 돌아가지만 편안한 길도 있다. 능선을 타고 가는 길이 있는가 하면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도 있다. 어느 길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나는 내가 걸어본 길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 길에서 넘어져본 적이 있으니 위험한 곳도 안다. 하지만 내가 걸었던 길이 다음 사람에게도 반드시 가장 좋은 길이라는 보장은 없다. 시대가 달라졌고, 사람이 다르며, 그가 지닌 능력과 꿈도 다르기 때문이다.


경험은 귀하지만 경험을 정답으로 바꾸는 순간 간섭이 시작될 수 있다.



좋은 뜻이 너무 앞서갈 때


누군가 일을 서툴게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내가 하면 금방 끝낼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손이 먼저 간다.


“내가 할게.”


일은 빨리 끝난다. 마음도 편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나는 점점 더 잘하게 되고, 그 사람은 계속 처음 자리에 머문다. 내가 대신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알았다. 도와주는 것과 대신 살아주는 것은 다르다. 사람이 자라려면 자기 손으로 해보아야 한다. 실수도 자기 것이어야 한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해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과정을 모두 걷어내고 정답만 건네주면 당장은 빠르지만 그 사람 안에 경험이 쌓이지 않는다.


씨앗을 심고 매일 흙을 파헤쳐 뿌리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한다면 그 씨앗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사람도 자꾸 들여다보고 잡아당긴다고 빨리 크는 것은 아니었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기다림을 수동적인 태도라고 생각했다. 적극적인 사람은 움직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기다린다고 여겼다. 살아보니 오히려 반대일 때가 있었다.


기다리려면 상당한 힘이 필요했다. 당장 말하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하고, 내가 직접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내려놓아야 한다. 상대가 실패할 가능성까지 견뎌야 한다. 그러면서도 정말 위험한 순간에는 손을 내밀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좋은 기다림은 방치와 다르다. 기다림은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믿고 바라보는 일이다. 나는 이 차이를 꽤 늦게 배웠다.


노자는 『도덕경』 제17장에서 가장 좋은 다스림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이 일이 이루어진 뒤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我自然. (아자연)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했다.”


이 말이 사람을 이끄는 일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리더는 모든 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함께한 사람이 나중에


“내가 해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일 수 있다.


내가 알려주었다는 흔적, 내가 키웠다는 표시, 내 덕분이라는 이름표까지 붙이려 한다면 상대의 성장은 결국 내 성과가 되어버린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없어도 걸어갈 수 있도록 조금씩 내 손을 빼는 일인지 모른다.



충고에는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충고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경험은 나눌 가치가 있다. 먼저 걸어본 사람이 위험한 곳을 알려주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다만 이제는 충고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하려 한다.


‘저 사람이 지금 내 말을 필요로 하는가.’


말의 내용만큼 때가 중요했다. 상대가 아직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마음에 들어가지 않는다. 때로는 충고보다 질문 하나가 낫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방법으로 해보고 싶은가?”

“내가 도와줄 것이 있나?”


질문은 상대에게 생각할 자리를 남겨준다. 충고가 내 경험을 건네는 일이라면, 질문은 그 사람이 자기 답을 찾을 공간을 건네는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대답보다 좋은 질문을 건네는 어른이고 싶다.



부모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자식에게는 더 어렵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고, 가능하면 조금 편한 길을 갔으면 한다. 그래서 자꾸 알려주게 된다.


하지만 자식 역시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부모가 자식의 비를 대신 맞아줄 수는 있어도 평생 우산을 들고 따라다닐 수는 없다. 언젠가는 자기 손으로 우산을 펴야 한다. 비를 조금 맞아보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어느 비는 피해야 하고 어느 비는 그냥 맞으며 걸어도 되는지 자기 몸으로 알게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붙잡고 싶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주어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 순간을 알아보는 일이 참 어렵다.



한 걸음 뒤의 자리


산에서 함께 걷는 사람이 힘들어할 때가 있다. 앞에서 자꾸 빨리 오라고 재촉하면 더 힘들어진다. 그럴 때는 조금 앞서가다가 기다린다. 혹은 한 걸음 뒤에서 그 사람의 보폭에 맞춘다.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 내 다리의 힘을 나누어줄 수도 없다. 그러나 혼자 걷는다는 느낌은 덜어줄 수 있다.


“천천히 와도 괜찮아요.”


그 말이면 될 때가 있다.


삶에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길을 대신 정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 길가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넘어지지 말라고 계속 소리치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거리에서 걷는 사람.


돌이켜보면 나 역시 누군가의 충고보다 기다림 덕분에 성장한 순간이 많았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준 사람.

실수하고 돌아왔을 때 “내가 그럴 줄 알았다”라고 하지 않은 사람.

다시 해보겠다고 했을 때 묵묵히 자리를 내어준 사람.


그런 사람의 얼굴은 오래 남는다. 말은 잊어도 기다려준 시간은 이상하게 기억된다.


그래서 이제 사람을 만나면 조금 덜 말하고 싶다. 물론 잘되지 않는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할 말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마디를 덜하고 질문 하나를 더 건네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속도로 상대가 자라지 않더라도 조금 더 기다려보려 한다. 꽃마다 피는 계절이 다르듯 사람에게도 자기 시간이 있을 테니까.


노자의 무위는 어쩌면 그런 기다림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손이 없어도 상대가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거두어야 할 때를 아는 것. 살아보니 사람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은 끝없이 충고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먼저 달라지는 것이었다.


말을 조금 덜하고, 판단을 조금 늦추고, 상대의 시간을 조금 더 믿는 것.

충고는 입으로 하지만, 기다림은 마음으로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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