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이끌다 보면 묘한 유혹이 생긴다. ‘내가 있어야 된다’는 마음이다. 중요한 결정은 내가 해야 마음이 놓이고, 문제가 생기면 내가 나서야 빨리 해결되는 것 같다. 오랫동안 경험을 쌓았으니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다. 누구보다 회사의 사정을 잘 알고, 어떤 결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일이 막히면 자연스럽게 내게 질문이 온다.
“대표님, 어떻게 할까요?”
처음에는 그 말이 바카라임처럼 들린다. 나를 믿고 있다는 뜻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이 달라졌다. 모든 일에 내가 답을 주어야 하는 회사라면, 그것은 정말 건강한 회사일까.
내가 잘하는 것이 조직에는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오랫동안 일을 하면 판단이 빨라진다. 비슷한 문제를 이미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다. 젊은 직원이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답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기다리기가 어렵다.
“이렇게 하면 돼.”
한마디면 일이 끝난다. 빠르다. 효율적이다. 당장은 그렇다. 그런데 같은 일이 반복된다. 또 질문이 온다. 나는 다시 답한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된다. 내가 계속 답을 주는 동안 그 사람은 답을 찾는 연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유능할수록 조직이 나에게 더 의존하는 역설이 생길 수 있었다. 내가 빨리 결정해 준 것이 회사에는 편리했지만, 누군가의 판단 근육을 사용할 기회를 빼앗았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꽤 불편했다.
회사가 자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젊은 날에는 회사의 성장을 숫자로 많이 보았다. 매출이 늘고, 공장이 커지고,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것. 모두 중요하다. 기업은 지속하기 위해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회사를 오래 이끌다 보니 성장에는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가 없어도 일이 굴러가는가. 담당자가 자기 자리에서 판단할 수 있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 상의하여 해결할 수 있는가. 후배가 선배보다 더 좋은 방법을 제안할 수 있는가. 대표의 눈치를 보기보다 고객과 제품과 현장을 보고 결정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회사는 건물이나 매출만 커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란 것이다.
나는 이제 그것이 더 어려운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길이 한 사람에게로 모이면 회사에서 모든 정보와 결정이 한 사람에게 모이는 것은 처음에는 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이 바빠지면 모든 일이 함께 늦어진다. 그가 자리를 비우면 판단도 멈춘다. 조직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들어 있는 셈이다.
좋은 회사라면 경험과 기술과 판단의 기준이 사람들 사이에 흘러야 한다. 누군가 알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실패에서 얻은 경험이 다음 프로젝트에 남으며, 개인의 노하우가 조직의 지식이 되어야 한다. 회사를 제조업의 눈으로 보면 더 분명하다.
좋은 제품은 한 명의 숙련자가 감각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설계가 있고, 공정이 있으며, 품질 기준이 있고, 확인하는 체계가 있다. 사람이 바뀌어도 일정한 품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기업도 결국 사람의 능력을 시스템의 힘으로 바꾸어야 오래간다.
맡긴다는 것은 바카라임을 버리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결과에 대한 최종 바카라임을 지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래서 맡겼다가 다시 들여다보고, 결국 내가 결정한다. 그러면 맡긴 것이 아니다. 일만 나누었을 뿐 판단은 여전히 내가 쥐고 있는 것이다. 진짜 맡김에는 작은 위험이 따른다. 내가 생각한 방법과 다른 방식으로 할 수도 있다. 실수할 수도 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도 있다. 그 불편함을 견뎌야 한다.
물론 기업에서 모든 실패를 경험하게 둘 수는 없다. 안전과 품질, 재무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문제에는 분명한 기준과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경계 안에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 볼 공간을 주어야 한다. 바카라임을 준다는 것은 실수하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판단할 기회를 함께 주는 일이다.
노자는 『도덕경』 제17장에서 가장 좋은 지도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을 정도의 지도자. 그리고 일이 이루어진 뒤 사람들이 말한다.
我自然. (아자연)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했다.”
예전에는 이 구절을 정치나 통치의 이야기로 읽었다. 회사를 오래 운영하며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질문으로 다가온다. 좋은 경영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사람일까, 조직의 자립성을 키우는 사람일까. 대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칭찬받는 회사보다 구성원들이 자기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하여 대표를 찾을 일이 줄어드는 회사. 어쩌면 후자가 더 잘 자란 회사일 수 있다.
“대표님이 안 계셔도 됩니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대표님이 안 계셔도 회사는 잘 돌아갑니다.”
젊은 날의 나라면 조금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필요 없다는 말처럼 들렸을 테니까. 지금은 오히려 그 말을 듣고 싶다. 내가 없는데도 생산이 돌아가고, 품질이 유지되고, 고객과의 약속이 지켜지고, 새로운 기술을 고민하며, 문제가 생기면 구성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어 해결한다면.
그것은 내가 필요 없는 회사가 아니다. 내가 해야 했던 일이 제대로 회사 안에 남은 것이다. 사람은 떠나도 기술은 남아야 한다. 경험은 다음 사람에게 건너가야 하고, 회사의 철학과 기준은 개인의 기억보다 오래가야 한다. 그것이 조직의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
내 방식보다 더 좋은 방식이 나오는 날
후배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을 제안할 때가 있다. 처음에는 마음 한구석이 묘할 수 있다.
‘내가 해온 방법도 괜찮은데.’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 보면 기쁜 일이다. 다음 사람이 이전 사람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조직은 앞으로 갈 수 없다. 내 경험은 다음 세대가 출발할 바닥이지 그들이 넘지 말아야 할 천장이 아니다. 나는 이 문장을 마음에 두고 싶다. 선배의 가장 좋은 유산은 후배가 자신을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해봐서 안다”보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를 더 자주 물어야 한다.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것 역시 내가 계속 배워야 할 공부다.
뿌리는 열매를 자랑하지 않는다
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회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눈은 꽃과 열매에 간다. 그러나 나무를 붙들고 있는 것은 땅속의 뿌리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꽃이 피었다고 앞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열매가 열렸다고 자기 몫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래에서 물을 끌어올리고 나무가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는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회사에서 그런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언제까지나 가장 높은 가지 끝에 서 있으려 하기보다 다음 사람이 마음껏 가지를 뻗을 수 있도록 뿌리 쪽으로 내려가는 것. 그것도 경영자의 한 모습일 수 있다.
회사는 결국 사람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 창업자가 영원히 있을 수는 없다. 대표도 언젠가는 자리를 내려놓는다. 그때 회사가 함께 늙어버린다면 내가 만든 것은 조직이 아니라 내 개인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회사를 키우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역할만 키우고 있는가.
사람들에게 답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답을 찾는 힘을 키워주고 있는가.
내가 없어도 이 회사는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는가. 아직 완전한 답은 없다.
다만 방향은 조금 알 것 같다.
더 많이 결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을 더 많이 만드는 것.
내 이름이 모든 곳에 남는 회사가 아니라, 내가 없어도 우리가 지켜온 기술과 기준과 신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회사.
그런 회사를 만들 수 있다면 언젠가 내가 한 걸음 물러나는 날에도 마음이 허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날 누군가 묻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후배가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고, 회사가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한다면, 나는 조금 멀리서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이제 회사가 자기 발로 걷는구나.’
어쩌면 경영의 마지막 성과는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가가 아니라, 마침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얼마나 많아졌는가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