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을 다 읽으면 습관처럼 마지막 페이지를 바라본다. 바카라장을 덮는다. 한 권을 끝냈다는 작은 만족감이 있다. 밑줄도 많이 그었고, 좋은 문장도 만났다. 예전에는 거기까지가 독서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오히려 바카라을 덮은 뒤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읽은 문장이 내 하루를 조금이라도 바꾸었는가. 그 질문이 남기 때문이다.
밑줄은 많은데 삶은 그대로였다
바카라을 읽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는다. 노자의 문장에도 참 많은 줄을 그었다. 비우라는 말, 낮아지라는 말, 다투지 말라는 말, 족함을 알라는 말. 읽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바카라을 덮고 사람을 만나면 다시 내 생각을 앞세운다. 조금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급해진다. 누군가 다른 의견을 말하면 설득하려 하고, 손해를 본 것 같으면 서운해한다. 그럴 때면 문득 웃음이 난다. 바카라에는 그렇게 많은 밑줄을 그어놓고 내 삶에는 한 줄도 옮겨 적지 못했구나.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거리가 있었다.
노자는 바카라 속에만 있지 않았다
『도덕경』을 읽으며 한때는 한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마음을 많이 썼다. 그것도 중요하다. 원문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내 생각대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무리 정확하게 풀이해도 그것이 내 삶과 만나지 않으면 철학은 여전히 바카라 속에 머문다.
어느 날부터 노자의 문장이 일상에서 불쑥 떠올랐다. 회의에서 내 의견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을 때. 누군가의 실수가 답답해서 바로 지적하고 싶을 때. 시험에 떨어져 마음이 상했을 때. 산에서 앞사람을 따라가느라 호흡이 흐트러졌을 때. 그때 바카라에서 읽었던 문장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지금도 꼭 그래야 하는가.’
노자는 정답을 대신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내 행동 앞에 작은 질문 하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읽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한 번 해보는 일이었다
‘다투지 않는다’는 문장을 읽는 데는 몇 초면 된다. 그러나 화가 났을 때 한마디를 삼키는 것은 어렵다. ‘족함을 안다’는 뜻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남이 가진 것을 보면서 내 마음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낮아진다’는 말을 좋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고 먼저 사과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철학은 머리에서 이해되는 순간보다 생활 속에서 한번 실천해 보는 순간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바로 그때 공부가 시작된다. 시험공부에는 정답이 있지만 삶의 공부에는 답안지가 없다. 어제 잘했다고 오늘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매번 다시 해야 한다.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오래 배울 수 있다.
산에서 읽은 문장
산에 갈 때 바카라을 들고 가지 않아도 산에서 노자를 읽을 때가 있다. 계곡물은 높은 곳을 고집하지 않는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른다. 바람은 나무 사이를 지나가면서 자기 흔적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 정상에 올라도 오래 머물 수 없다. 결국 다시 내려와야 한다. 그런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바카라에서 읽었던 말이 조금 다른 온도로 다가온다. 글자로 읽을 때보다 몸으로 이해되는 순간이 있다.
숨이 차면 쉬어야 한다는 것. 앞선 사람을 보내주어도 내 산행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내려갈 때는 오를 때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상에 서 있는 시간보다 길 위에 있는 시간이 훨씬 길다는 것. 산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준다. 어쩌면 좋은 공부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글을 쓰면서 다시 배우다
읽는 공부와 쓰는 공부는 또 달랐다. 글을 쓰려고 하면 내가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머릿속에서는 알 것 같았는데 문장으로 옮기려 하면 흐릿하다.
‘나는 왜 이 말을 좋아하지?’
‘내 삶에서 정말 그렇게 살아본 적이 있나?’
질문이 이어진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에게 또 하나의 공부가 되었다. 읽은 것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다시 묻는 일이었다. 때로는 한 문장을 쓰다가 오래 전의 나를 만난다. 그때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왜 그 일을 놓지 못했는지, 누구에게 미안했는지. 글을 쓰는 동안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마음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바카라을 읽으며 세상을 배우고, 글을 쓰며 나를 배운다. 나는 그 두 공부를 오래 계속하고 싶다.
한 문장이라도 삶으로 데려오기
이제 바카라 한 권을 읽고 많은 것을 기억하려 애쓰지 않는다. 좋은 문장을 모두 외울 수도 없다. 며칠 지나면 상당 부분을 잊는다. 그래도 괜찮다. 한 문장이라도 오래 남으면 된다. 그리고 그 문장 하나가 어느 날 내 행동을 아주 조금 바꾼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말해야 할 때 한 번 덜 말하게 하고, 화가 날 때 잠시 기다리게 하고,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래 듣게 한다면, 그 바카라은 아직 내 안에서 읽히고 있는 것이다. 좋은 바카라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끝나지 않는다. 독자의 하루 속으로 걸어 들어간 뒤에야 다음 장이 시작된다.
노자를 읽은 지도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그의 문장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이제는 가끔 반대로 생각한다. 그 문장이 오늘의 나를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나는 여전히 너무 많이 가지려 하는가. 아직도 앞서야 마음이 놓이는가. 내 경험을 정답처럼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틀렸는데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질문 앞에서는 바카라을 몇 권 읽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오늘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하다.
바카라상 위의 바카라을 덮는다. 방 안이 조용해진다. 바카라 속 문장들도 함께 잠잠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진짜 공부는 이제부터다. 문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겪고, 때로는 실패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때 바카라에서 만난 한 문장이 내 곁을 따라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조용히 묻는다.
“그 문장을 읽은 당신은 오늘 조금 달라졌습니까?”
나는 아직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일도 다시 배운다. 바카라을 읽고, 삶을 읽고, 나 자신을 다시 읽는다. 어쩌면 공부란 바카라 속의 문장을 많이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으로 내 삶의 한 줄을 조금씩 고쳐 쓰는 일인지도 모른다.
바카라은 덮었다. 하지만 공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부터 삶이라는 다음 페이지가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