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말을 잘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 처리가 빠른 사람도 있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고, 어디에서든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던 사람. 자신의 공을 굳이 앞세우지 않았던 사람. 내가 힘들 때 해결바카라부터 꺼내놓기보다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사람. 그 사람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생각하다가 문득 물을 떠올린다.
물은 자기 자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물은 참 이상하다. 손으로 움켜쥐면 빠져나가는데 오래 두면 바위를 깎는다. 자기 모양도 없다.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글어지고,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가 된다. 그렇다고 물이 자기 본성을 잃는 것은 아니다. 부드럽게 모습을 바꾸면서도 끝까지 물이다.
사람에게도 그런 부드러움이 있다. 어디에 가든 자기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보폭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줏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기 생각은 있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의 목에 걸어놓지 않는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그런 사람이 좋다. 자기중심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모양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 곁에서는 나도 내 모습으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낮은 곳에는 사람이 모인다
노자는 『도덕경』 제8장에서 물을 이야기한다.
上善若水. (상선약수)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수선리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고,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꺼리는 낮은 곳에 머문다는 뜻으로 읽힌다.
젊은 날에는 이 구절에서 ‘부쟁(不爭)’을 많이 보았다. 다투지 않는 물. 그런데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니 처중인지소오(處衆人之所惡), 남들이 꺼리는 낮은 곳에 머문다는 말이 더 눈에 들어온다.
사람은 대개 높은 곳을 좋아한다. 앞자리, 좋은 자리, 인정받는 자리. 나도 그랬다. 하지만 조직을 오래 들여다보면 낮은 곳을 묵묵히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말없이 하는 사람. 문제가 생겼을 때 바카라임을 떠넘기기보다 먼저 수습하는 사람. 성과가 나면 앞으로 나오기보다 함께한 사람의 이름을 먼저 말하는 사람. 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빠지고 나면 금세 빈자리가 느껴진다. 그제야 안다.
낮은 곳에 있었다고 작은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곁에 있으면 편안한 사람
사람에게는 저마다 온도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괜히 말을 조심하게 된다. 실수하면 안 될 것 같고, 내가 모르는 것을 드러내면 안 될 것 같다. 반면 어떤 사람 앞에서는 마음이 느슨해진다.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요즘 좀 힘듭니다.”
그런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까. 나는 그것이 판단하지 않는 여백이라고 생각한다.
물은 돌에게 왜 네가 거기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돌을 만나면 돌아 흐른다. 나무뿌리를 만나면 그 사이를 지난다. 사람도 상대를 당장 고치려 하지 않을 때 마음에 물길 하나가 생긴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 한마디가 막혀 있던 마음을 흐르게 할 때가 있다.
강한 사람보다 오래가는 사람
젊은 날에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흔들리지 않고, 결정할 때는 단호하며,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는 사람.
그런 힘은 필요하다. 하지만 오래 살아보니 강함만으로는 사람 곁에 오래 머물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너무 단단한 것은 부딪히면 깨진다. 부드러운 것은 밀려나는 듯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물은 싸우지 않는다. 그런데 결국 낮은 곳을 채우고, 강을 만들고, 바다에 닿는다. 그래서 이제 내가 바라는 강함은 조금 달라졌다.
상대를 눌러 이기는 힘보다 상대를 받아내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힘. 그런 힘이 더 오래간다.
나도 누군가에게 물 같은 사람이었을까
다른 사람을 떠올리다 보면 질문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내 표정을 먼저 살펴야 했을까. 내가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상대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지는 않았을까. 회의에서 내 의견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없지 않다. 사람은 자신의 목소리는 작게 듣고 상대가 받은 울림은 알기 어렵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직바카라이 높아질수록 작은 말도 커져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나는 한마디 했을 뿐인데 누군가에게는 지시가 될 수 있다. 나는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 누군가는 이미 결론이 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리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말의 자세는 오히려 낮아져야 한다. 이것도 물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은 자기 흔적을 자랑하지 않는다
비가 내린 뒤 산길을 걷다 보면 작은 물길이 생겨 있다. 물은 흙 사이를 흐르고 돌 틈을 지나 아래로 내려간다. 그 길을 따라 풀이 살아나고 나무가 물을 마신다. 그런데 물은 자신이 무엇을 살렸는지 적어두지 않는다.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더라도 오래 기억시키지 않는 사람. 후배가 성장했을 때 “내가 키웠다”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 함께 만든 성과를 자기 이름 하나로 가져가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의 곁에는 이상하게 사람이 남는다.
붙잡아서 남는 것이 아니다. 머물고 싶어서 남는 것이다. 살아보니 사람의 마음은 움켜쥔다고 오래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놓아주었을 때 돌아오는 마음이 있었다. 강하게 끌고 가는 사람보다 조용히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 오래 기억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면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대단한 말을 많이 했던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으면 숨을 조금 편하게 쉴 수 있었던 사람. 내 생각을 강요하기보다 그의 이야기가 흘러갈 자리를 내주었던 사람. 그리고 필요할 때 말없이 물 한 모금처럼 곁에 있었던 사람.
노자는 가장 좋은 것을 물에 비유했다. 나는 아직 물처럼 살지 못한다. 그래도 이제는 물이 흐르는 방향 정도는 알 것 같다. 높은 곳을 차지하기보다 낮은 곳을 적시고, 자기 모양을 고집하기보다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쪽으로. 돌아보니 내 곁에 오래 남은 사람들은 대개 그런 사람들이었다.
물처럼 조용했고, 물처럼 부드러웠으며, 내 삶의 메마른 곳을 말없이 지나가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