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사람은 없다

by진경수

함께 일하다 보면 눈에 잘 띄는 사람이 있다. 말을 잘하고, 판단이 빠르며, 일을 맡기면 결과도 좋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기회가 많이 간다. 반대편에는 잘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말수가 적고, 회의에서도 좀처럼 먼저 손을 들지 않는다. 일을 배우는 속도가 조금 느리기도 하고, 몇 번을 알려주어야 익히는 사람도 있다.


젊은 날의 나는 아무래도 전자에게 마음이 더 갔던 것 같다. 일에는 결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빠른 사람에게 맡기면 편했다. 잘하는 사람에게 일을 주면 실패할 가능성도 줄었다. 그것이 효율이라고 생각했다.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 사람들과 일하면서 효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장면을 여러 번 만났다.



느린 사람에게도 자기 시간이 있었다


처음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자기 몫을 단단히 해내는 경우가 있었다. 배우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익힌 일은 꼼꼼하게 해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남들이 놓친 것을 챙겼다. 앞에서 사람들을 끌고 가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흐트러진 일을 조용히 정리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의 능력은 한 가지 자로 잴 수 없었다.


빠르다고 반드시 깊은 것은 아니었고, 말을 잘한다고 반드시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느리다고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저마다 빛나는 자리가 달랐다. 그런데 조직은 자꾸 같은 기준으로 사람을 본다. 속도. 성과. 숫자. 평가. 그 기준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조직에는 분명한 평가가 필요하다. 다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가능성까지 단정하는 순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생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람의 시간이다. ‘쓸모없다’는 말은 너무 빨리 내려지는 판정이다 공장이나 현장에서 자재를 다루다 보면 같은 재료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어떤 부재는 구조의 중심에서 힘을 받는다. 어떤 것은 작은 연결부에 들어간다. 겉으로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것 하나가 빠지면 전체가 제대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모두가 기둥일 필요는 없다. 모두가 앞에 설 필요도 없다.


누군가는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누군가는 받쳐주는 사람이 된다.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능하고, 누군가는 시작된 일을 끝까지 지켜내는 데 강하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맞는 자리를 아직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살아보니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말보다 조심해야 할 말도 드물었다. 그 말에는 한 사람의 오늘뿐 아니라 내일까지 미리 닫아버리는 차가움이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도덕경』 제27장에서 말한다.


是以聖人, 常善救人, 故無棄人 (시이성인, 상선구인, 고무기인).

성인은 늘 사람을 잘 살리므로 버리는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나는 이 가운데 무기인(無棄人), ‘버릴 사람이 없다’는 세 글자를 오래 바라보게 된다. 예전에는 좋은 사람은 누구도 버리지 않는다는 도덕적인 가르침 정도로 읽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사람을 너무 빨리 규정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린다. 지금 부족하다고 앞으로도 부족한 것은 아니다. 오늘 실수했다고 그 사람 전체가 실수인 것도 아니다. 내 방식과 맞지 않는다고 그 사람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 자꾸 현재형으로 미래까지 써버린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


그 말 한마디로 한 사람에게 마침표를 찍는다. 그러나 사람에게 그렇게 쉽게 마침표를 찍어도 되는 것일까.



나 역시 누군가의 기다림 속에서 자랐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은 잘 보인다. 내 부족함은 지나고 나서야 보인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처음부터 모든 일을 잘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몰랐던 때가 있었고, 판단을 잘못했던 적도 있었으며,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누군가 나를 한 번의 실수로 끝내버렸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다시 해볼 기회를 주었다. 누군가는 모르는 것을 알려주었다. 누군가는 내가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런데 사람은 이상하다. 자기가 받은 기다림은 쉽게 잊고 다른 사람에게는 빨리 결과를 요구한다. 나 역시 그러지 않았을까. 그 생각을 하면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 느슨해진다. 나는 완성된 사람들을 만나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의 빈 곳을 메우며 여기까지 왔다.



살리는 사람


노자의 ‘구인(救人)’을 나는 이제 거창하게 읽고 싶지 않다.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 반드시 인생을 바꾸어주는 큰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 더 해보세요.”

“이번에는 이 방법으로 해보면 어떨까요?”

“괜찮습니다. 다시 하면 됩니다.”


그 한마디가 사람을 다시 일으킬 때가 있다. 반대로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가 사람을 오랫동안 주저앉히기도 한다.


“당신은 안 돼.”

“역시 이것밖에 못하네.”


말은 입에서 몇 초 만에 나오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몇 해씩 남을 수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게 어떤 말을 남길 것인지 더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끝없이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조직에는 바카라임이 필요하다. 반복되는 잘못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맡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조치도 필요하다. 무기인(無棄人)은 무바카라임을 눈감아주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바카라임을 묻더라도 사람 자체까지 함부로 버리지 않는 태도로 읽고 싶다.


행동은 고칠 수 있고, 역할은 바꿀 수 있으며, 맞지 않는 자리는 다시 찾을 수 있다. 한 번의 평가표가 한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며 속으로 한 번 더 묻는다.


‘이 사람에게 아직 내가 보지 못한 것이 있지 않을까.’


그 질문 하나가 판단을 조금 늦춘다. 판단이 늦어지면 관찰할 시간이 생긴다. 관찰하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 대단한 기회가 아니다. 자신의 쓸모를 발견할 때까지 너무 일찍 포기당하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살아보니 정말 버려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을 너무 빨리 재단하는 내 마음, 내 기준 하나로 타인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성급함, 그리고 지금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믿는 오만이었다. 노자의 무기인(無棄人)은 그래서 오늘도 내게 묻는다.


“당신은 사람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이 매긴 점수만 보고 있는가.”


나는 아직 그 질문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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