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에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삶이 앞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일을 해야 했고, 성과를 만들어야 했으며,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야 했다. 기회가 오면 붙잡아야 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워야 했다. 가만히 있는 것은 왠지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무엇을 했는가’로 하루를 평가하곤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전에 없던 질문 하나가 생겼다.
‘이것을 꼭 해야 하는가.’
할 수 있다는 것과 해야 한다는 것은 달랐다
경험이 쌓이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누군가 어려움을 겪으면 방법이 보이고, 회사에서 문제가 생기면 내가 나서면 빨리 해결할 수 있을 때도 있다. 그래서 자꾸 손을 뻗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대신 결정하지 않아야 다른 사람이 판단하는 법을 배운다. 내가 먼저 답하지 않아야 누군가 자기 답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모든 일을 움켜쥐지 않아야 다음 사람이 설 자리가 생긴다.
하지 않음은 바카라임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때로 바카라임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었다. 한마디 하지 않았더니 사람 사이에서도 그렇다. 살다 보면 꼭 한마디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했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대부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더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 말을 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이미 실수한 사람은 자기 실수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마음도 무거울 것이다. 그때 옳은 말 하나를 더 얹는 것이 정말 필요한가. 언젠가부터 그런 순간에 말을 삼켜보려고 한다. 쉽지 않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고 기다리면 전에는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릴 때가 있다. 상대가 먼저 말한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때 깨닫는다. 내가 말하지 않아야 상대의 마음에서 나오는 말도 있었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無爲, 무위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젊은 날에는 이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떻게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살아보니 무위는 게으름이나 무바카라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그것을 요즘 불필요하게 끼어들지 않는 지혜로 읽는다.
『도덕경』 제48장의 말처럼,
爲無爲, 則無不治矣。 (위무위 즉무불치의)
억지로 일을 만들고 사람을 움직이지 않는 무위의 방식으로 다스리면 다스리지 못할 일이 없게 된다.
따라서, 억지로 일을 만들어 개입하기보다 사물과 사람이 제 힘으로 움직일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씨앗을 심은 뒤 매일 땅을 파헤쳐 뿌리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물은 주되 잡아당기지는 않는다. 햇볕을 받게 하되 꽃이 피는 날짜까지 명령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 않기로 한 것들
나이가 들면서 나는 해야 할 일보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골라내고 싶어진다. 모든 논쟁에서 이기려고 하지 않는 것. 내가 옳다는 사실을 끝까지 증명하려 하지 않는 것. 누군가 나를 오해했다고 해서 모든 오해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것. 지나간 일을 계속 마음속 법정으로 불러내지 않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에 필요 이상으로 답을 써주지 않는 것.
처음에는 이것들이 포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씩 하지 않아 보니 마음이 조금 조용해졌다. 세상에는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산에서도 멈추는 것이 산행이다
산을 걸을 때도 계속 걷는 것만이 산행은 아니다. 숨이 차면 멈춘다. 배낭을 내려놓는다. 물 한 모금을 마신다. 멀리 능선을 바라본다. 그 몇 분 동안 나는 정상에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산행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잘 쉬는 것도 다음 걸음을 위한 산행의 일부다.
삶도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편해진다. 멈춘 하루가 뒤처진 하루는 아니다. 아무 성과도 만들지 않은 시간이 쓸모없는 시간인 것도 아니다.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도 삶에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행동하는 사람이고 싶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하고, 바카라임져야 할 것이 있다면 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제 행동만을 용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나서지 않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말하지 않는 것. 기다리는 것. 맡기는 것. 놓아주는 것. 그리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알아보는 것. 삶의 후반에는 그런 선택도 배워야 할 것 같다.
무엇을 했는가가 나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하지 않기로 했는가도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