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글을 쓸 때 여백이 없으면 답답하다. 아무리 좋은 문장이라도 종이 끝에서 끝까지 빼곡하게 채워놓으면 눈이 쉴 곳이 없다. 글보다 빈 공간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백이 있어야 문장이 살아난다. 그림도 그렇다. 그리지 않은 곳이 있다고 해서 미완성은 아니다. 때로는 그 빈 곳 때문에 그려진 것이 더 선명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내 마음도 그런 한 장의 종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을 채우지 않은 마음.
마음도 너무 가득 차면 무거워진다
오래 살면 마음에 참 많은 것이 쌓인다. 경험이 쌓이고, 기억이 쌓이고, 사람이 쌓인다. 좋았던 일도 있고, 후회되는 일도 있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고마운 말도 남아 있고, 오래전 서운했던 말도 뜻밖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문제는 마음이 기억을 가려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리고 싶은 것도 함께 쌓인다. 그래서 가끔은 마음에도 정리가 필요하다.
‘이것을 아직도 들고 있어야 하나.’
십 년 전의 서운함을 오늘까지 들고 올 필요가 있을까. 이미 사과받은 일을 마음속에서 다시 재판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잘못했던 일을 평생 나를 꾸짖는 재료로 사용해야 할까. 지나간 일을 기억하는 것과 지나간 일 속에 계속 사는 것은 다르다.
모르는 사람을 위한 자리
마음의 여백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내 생각이 가득 차 있으면 다른 생각이 들어올 곳이 없다.
“나는 이미 알아.”
“원래 그런 거야.”
“내 경험으로는 안 돼.”
이런 말들이 마음을 꽉 채우고 있으면 새로운 세상은 문밖에서 돌아간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일부러라도 작은 빈칸 하나를 남겨두고 싶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이 문장 하나가 들어갈 자리다. 그 자리가 있으면 젊은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새로운 기술도 배울 수 있다. 내가 평생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살펴볼 수도 있다. 지적 겸손은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의 문을 잠그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사람에게도 한 뼘의 여백을
가까운 사람일수록 우리는 잘 안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그렇다. 오랜 친구도 그렇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직원도 그렇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
이 말은 편리하다. 그러나 동시에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내일을 어제의 모습 안에 가두기 때문이다.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늦게 철이 들기도 하며, 어느 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니 사람을 판단할 때도 한 뼘쯤 빈 곳을 남겨두면 좋겠다.
‘내가 아직 모르는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 여백이 사람을 다시 보게 한다.
하루에도 빈 시간이 필요했다
나이가 들면서 하루의 속도도 조금 바꾸고 싶어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할 일을 빼곡히 채우기보다 아무 일정도 없는 시간이 있었으면 한다.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창밖을 보는 시간. 바카라 몇 쪽을 읽다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산길을 걸으며 굳이 정상 시간을 계산하지 않는 시간. 누군가와 만나 결론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젊은 날에는 이런 시간을 ‘남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지금은 반대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 나머지 시간이 제자리를 찾는다. 쉼은 일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삶의 호흡을 되찾는 시간이다.
노자의 비움은 가난해지는 일이 아니었다
노자를 오래 읽으며 ‘비움’이라는 말을 여러 번 만났다. 처음에는 욕심을 버리고 소박하게 살라는 뜻으로만 읽기 쉬웠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더 넓게 읽고 싶다. 비운다는 것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두는 것이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조금 비워 다른 사람의 말을 담고, 바쁜 시간을 조금 비워 사람을 만나고, 오래된 서운함을 비워 오늘의 평온을 들이고, 내가 차지했던 자리를 비워 다음 사람이 설 수 있게 하는 것. 그렇게 보면 비움은 상실이 아니라 환대다. 무엇인가를 내보내는 동시에 다른 무엇인가를 맞아들이는 일이다.
산길의 쉼터처럼
산을 걷다가 쉼터를 만나면 반갑다. 쉼터에는 대단한 것이 없다. 작은 평상 하나, 의자 몇 개, 그늘 정도다. 그런데 그 빈 공간이 참 고맙다.
배낭을 내려놓을 수 있고, 숨을 고를 수 있으며, 물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내 마음이 그런 쉼터 같았으면 좋겠다.
나 자신에게도, 내 곁에 오는 사람에게도. 무엇인가를 증명해야만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그냥 잠시 앉아도 되는 마음. 잘한 일을 말하지 않아도 되고, 힘들다고 털어놓아도 되고, 말없이 차 한잔 마셔도 되는 자리.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 마음을 내려놓을 빈자리 하나를 내어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제 삶의 후반을 생각하면 무엇을 더 채울 것인가 보다 어떤 여백을 남길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일정표의 여백. 말과 말 사이의 여백. 사람을 판단할 때의 여백.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의 여백. 그리고 내 삶의 마지막 장까지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는 여백. 아직 배울 것이 들어올 자리다. 아직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자리다. 아직 내가 달라질 수 있는 자리다.
젊은 날에는 빈칸을 보면 불안했다. 무엇인가 적어 넣어야 할 것 같았다. 이제는 안다. 삶의 모든 빈칸에 답을 써넣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어떤 곳은 그냥 비워두어도 좋다.
바람이 머물다 가고, 햇살이 잠시 내려앉고, 누군가 힘든 날 찾아와 조용히 앉았다 갈 수 있도록. 살아보니 여백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었다. 아직 무엇이든 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남은 날의 마음에는 조금 더 넓은 여백을 두고 싶다.
더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