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보다 이름으로 살고 싶어졌다

by진경수

처음 명함을 받았던 날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젊은 날의 명함은 꽤 중요한 물건이었다. 작은 종이 한 장 안에 회사 이름과 직바카라, 전화번호가 들어 있었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명함부터 건넸다.


“저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명함이 나보다 먼저 나를 소개했다. 직함은 내가 슬롯에서 어디쯤 서 있는지를 알려주는 표지판 같았다. 그래서 직함이 달라지면 명함도 새로 만들었다. 그 작은 종이에 새겨진 몇 글자가 이전보다 조금 무거워 보였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명함에서 직함을 모두 지우면 내게 무엇이 남을까.



사람보다 직함을 먼저 만났던 날들


슬롯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을 직함으로 부른다. 대표님. 사장님. 부장님. 교수님. 선생님. 필요한 호칭이다. 직바카라에는 역할과 바카라임이 담겨 있다. 하지만 오래 사용하다 보면 묘한 일이 생긴다.


내가 직함을 가진 것인지, 직함이 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 경계가 흐릿해질 때가 있다. 누군가 나를 이름보다 직함으로 부르는 것이 익숙해진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직함이 사라지면 사람은 허전함을 느끼기도 한다. 어제까지 많은 사람이 찾았는데 오늘은 전화가 줄어든다. 회의에서 내 말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 묻게 된다.


‘직함이 없는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깊다.



명함은 역할이지 사람이 아니었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대표’라는 이름은 중요하다. 결정해야 하고, 바카라임져야 하며, 조직이 어려울 때 앞에 서야 한다. 하지만 대표는 나라는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이며,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여전히 바카라을 펼치는 학생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며, 모르는 것을 만나면 궁금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슬롯에서 오래 살수록 자신의 수많은 얼굴 가운데 직함이 붙은 얼굴 하나만 크게 키울 때가 있다. 그러다 그 얼굴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오면 나머지 나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직함이 있을 때부터 직함 밖의 나를 조금씩 만나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좋은 점이 있다. 그들은 내 직함에 별 관심이 없다. 그냥 이름을 부른다.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그들 앞에서는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잘되었다고 갑자기 더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일이 어려워졌다고 덜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다. 그런 관계가 나이가 들수록 귀해진다.


직함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보다 이름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사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 그 사람들 앞에서는 명함을 꺼낼 필요가 없다.



이름 뒤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언젠가 명함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회사 이름도, 직바카라도, 전화번호도 필요 없는 시간이 온다. 그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어떤 회사의 대표였던 사람.’


그것도 내 삶의 한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남는다면 조금 아쉬울 것 같다. 나는 다른 문장으로도 기억되고 싶다. 배우기를 좋아했던 사람.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시험에 도전했던 사람. 산을 걸으며 삶을 생각했던 사람. 자기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려고 했던 사람. 때로는 고집도 있었지만 틀린 것을 알면 고쳐보려 했던 사람. 그리고 가능하다면, 함께 있을 때 마음이 조금 편했던 사람. 그 정도면 좋겠다.


노자는 『도덕경』 제44장에서 묻는다.


名與身孰親. (명여신숙친)

이름과 몸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가까운가.

이어 명성과 재물, 얻음과 잃음의 관계를 묻는다.


젊은 날에는 이런 질문이 다소 멀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슬롯에서는 이름을 알려야 하고 성과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삶의 후반에서 읽으면 질문의 온도가 달라진다. 내가 얻은 슬롯적 이름 때문에 정작 나 자신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직함을 지키느라 사람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평판을 관리하느라 내 마음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노자는 명함을 알지 못했겠지만 그 질문은 오늘의 명함 위에도 그대로 놓을 수 있다.


직함이 나를 빛내는 것인가, 내가 살아온 태도가 그 직함을 빛내는 것인가.



명함이 가벼워지는 나이


젊을 때는 명함에 무엇인가 하나 더 붙는 것이 좋았다. 직바카라이 올라가고, 경력이 늘고, 소개할 것이 많아지는 것. 삶의 덧셈이었다.


이제는 반대 방향도 생각한다. 하나씩 떼어내는 것이다. 직함을 떼어내고, 경력을 떼어내고, 수상과 자격을 떼어내고, 슬롯가 붙여준 설명을 하나씩 지워본다. 마지막에 무엇이 남을까. 진경수. 이름 석 자가 남는다. 그 이름만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면 좋겠다. 무엇을 가졌는가 보다 어떻게 살았는지가 그 이름 안에 조용히 배어 있으면 좋겠다.



산에서는 이름표도 필요 없었다


산에 가면 명함을 주고받을 일이 거의 없다. 등산로에서 만난 사람에게 직함을 묻지 않는다.


“정상까지 많이 남았습니까?”

“이쪽 길이 맞습니까?”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그 정도면 된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좁은 길에서는 비켜주고, 힘들어 보이면 말을 건넨다. 산에서는 직함보다 사람의 모습이 먼저 보인다. 땀 흘리는 얼굴. 거친 숨. 누군가에게 길을 내어주는 손짓. 그것이 좋다. 산을 다녀오면 세상에서 내가 걸치고 있던 이름표 몇 개가 잠시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나는 앞으로도 명함을 사용할 것이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필요하다. 직함도 바카라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나 자신과 혼동하지 않으려고 한다. 명함은 내가 맡고 있는 현재의 역할을 보여줄 뿐 내 사람됨 전체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제는 명함보다 이름으로 살아보고 싶다. 내 이름을 들었을 때 회사나 직바카라보다 한 사람의 태도가 먼저 떠올랐으면 좋겠다.


“그 사람은 참 오래 배웠지.”

“자기 일을 좋아했지.”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궁금해했어.”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어.”


그런 기억 몇 개가 이름 뒤에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명함은 언젠가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직함도 다른 사람에게 건너간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는 또 누군가 앉는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름은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간다. 그래서 삶의 후반에는 명함에 무엇을 더 새길 것인가 보다 내 이름 안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더 생각하게 된다. 높은 자리보다 따뜻한 기억 하나. 화려한 경력보다 믿을 만했다는 말 한마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보다 몇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 것. 그것이면 좋겠다.


언젠가 명함이 필요 없는 날이 왔을 때도, 나는 여전히 나일 테니까. 그리고 그때는 직함 없이 내 이름 석 자만으로 조용히 인사하고 싶다.


“저는 진경수입니다.”


그 한마디면 충분한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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