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유럽여행이자 신혼여행으로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위스를 돌았다. 스위스는 남편 친구 집에서 묵어서 몰랐지만, 파리와 바르셀로나의 호텔은 내가 알던 '호텔'과는 많이 달랐다.
한 손에는 캐리어, 어깨에는 내 상반신만 한 배낭을 메고 도착한 호텔은 로비에서부터 매우 한정된 공간에 오밀조밀함을 뽐내며 나를 마주했다. 엘리베이터는 성인 두 명이 캐리어와 함께 타면 몸을 돌릴 수 없을 만큼 좁았고, 버튼 대신 다이얼을 돌려야 하는 곳도 있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의 안도감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타고 다녔던 출근길 9호선 급행열차에서 자주 느낄 수 있었던 감각이었다. 조금 넉넉하게 출근한다면 일반열차를 타고 가겠지만 나의 아침은 항상 촉박했고, 나는 급행을 선택해야 했다. 나의 행선지는 9호선 중간쯤에서 시작하여 신논현역까지였다. 복잡한 9호선에서도 많은 인파가 밀물과 썰물처럼 빠지는 주요 역이 있는데, 여의도, 동작, 고터(고속터미널)가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통에 속에서부터 멀미가 느껴지는 날에는 동작역에서 일반열차로 갈아탈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 빽빽하게 끼어 서서 문이 간당간당하게 열렸다 닫히면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그 안도는 오래가지 않는다.
내 코와 지하철 문 사이의 간격은 단 10센티. 내가 숨을 쉴 때마다 서리가 번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파리의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그 서리 낀 창문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신혼여행인데 왜 그렇게 힘든 여행을 선택했을까. 요즘은 크루즈도 타고 일주일 내내 풀빌라 리조트에서 인생사진 남기며 달달한 허니문을 보내다 올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슬쩍 고개를 들 때가 있다. 그 아쉬움들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파란색 잉크 한 방울이 내 마음속 일기장 위에 툭, 떨어져 조용히 번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반복하는 메트로놈처럼 집과 회사를 오가는 우리에게, 일주일의 공식적인 휴가는 인생의 파격적인 혜택이었다. 그래서 신혼여행지를 결정할 때 무조건 '유럽'이었고, 그동안 가고 싶었던 유럽여행과 맞물려 이런 형태로 맺어진 게 아니었나 싶다. 결국 우리의 손으로 빚어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호화로운 체인 호텔에는 가지 않았다. 매번 그런 곳에 묵을 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여행을 거치며 숙소를 고르는 목록에서 호텔은 자연스럽게 지워졌다.
그리고 거기에 아이들이 더해졌다.
아이들은 원할 때 언제든 쉬어야 하고, 먹어야 하고, 에너지를 채워야 한다. 그런데 호텔에서는 취사가 안 되고, 방은 좁아서 아이들이 굴러다닐 자리도 없다. 우리가 주로 묵었던 호텔들의 인테리어는 어느 나라를 가나 비슷비슷해서, 창밖 풍경을 가리고 나면 여기가 파리인지 프라하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혼자였다면, 혹은 어른 둘만의 여행이었다면 그냥 감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그 좁은 공간이 단순히 불편한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움직이고, 먹고, 쉬고, 이야기하는 모든 일이 숙소의 크기와 벽의 두께에 영향을 받았다.
그 부작용은 뉘른베르크의 한 호텔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날 우리는 플레이모빌 펀파크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의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시켰다고 자신했다. 종일 뛰어다니고, 물놀이하고, 이것저것 만지느라 지칠 대로 지쳤을 거라 믿었던 아이들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거짓말처럼 다시 완충 상태가 되어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낮에 있었던 재미있었던 순간들을 서로 도란도란 늘어놓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사 온 작은 기념품을 손에 쥔 채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나는 원래도 소음에 예민한 편이라, 밤이 되면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자주 당부하는 쪽이었다. 그날 밤도 어김없이 "목소리 낮추자~ 쉿~"을 반복하며 아이들을 다독이고 있는데, 옆방에서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와 작은 웃음소리가 벽을 타고 또렷하게 넘어왔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선명하게 들린다는 건, 우리 방 소리도 옆방에 저만큼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다는 거 아닌가?'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더 조급하게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시작했고, 정작 나 자신도 발소리 하나, 문 여닫는 소리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됐다. 어른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자유조차, 그 좁은 방 안에서는 사치였다.
좁은 공간, 정말 '잠만 자는' 곳 같은 느낌.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싶어 하는데, 옆방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를 낮춰야 하는 일. 그게 여행의 재미를 반쯤 깎아 먹는다고 느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가 여행에서 필요한 숙소는 단순히 잠을 자는 방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우리는 진짜 여행을 위한, 진짜 숙소를 찾아 집을 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을 빌린다는 건, 호텔 방을 빌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도박이었다.
그 사실을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