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입성했다.
에끌레어를 한입 베어 문 것도, 에펠탑을 배경 삼아 가족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었다. 프랑스 땅을 밟고 있는 것은 자동차 바퀴였지만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하늘빛이 다르게 보이고 스쳐 가는 들판마저 명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내 선글라스에 ‘Paris filter’를 끼워 넣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소와 다르게 실없이 들떠 있는 나를 보고 아이들도 덩달아 화보라도 찍는 모델처럼 턱을 살짝 치켜들고 “봉쥬르~”, “마드모아젤~”, “마담~” 하며 끝소리를 길게 늘여 가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불어를 흉내 냈다.
그 환상은 딱 거기까지였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파리 남쪽 이브리쉬르센에 있었다. 1층에는 마트가 있고 그 위로 아파트가 올라가 있는 한국의 주상복합 같은 구조였다. 숙소 설명과 호스트의 메시지에서 분명 프라이빗 주차장이 있다고 했다. 프라이빗! 말만 들어도 안심이 되는 철제 금고가 떠오르는 단어였다. 문제는 그 거주자만 들어갈 수 있는 주차장 입구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안내받은 주소로 들어가면 마트 주차장이 나왔다. 프라이빗 주차장을 찾을 수가 없어서 다시 밖으로 나가 건물을 한 바퀴 돌고 주차장에 또 들어갔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애꿎은 마트 주차장만 세 번을 들락거렸다. 그러다 프랑스는 프라이빗이라는 단어를 안 쓰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럼 프랑스어로 뭐라고 하지?
그렇다. 우리는 프랑스어 까막눈이었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처럼 표지판을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기라도 돌려보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인터넷이 잡히지 않았다. 한국의 빵빵한 와이파이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프랑스어는 모르겠고, 번역기를 쓰려면 인터넷이 필요하고, 인터넷을 쓰려면 다시 주차장 밖으로 올라가야 했다. 표지판 하나 해석하려고 사진을 찍고 인터넷이 터지는 곳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하는 어이없는 굴레였다.
암호를 하나 풀어야 다음 문이 열리는 방탈출. 딱 그게 떠올랐다. 방탈출 카페에서는 다들 맨몸으로 들어가서 게임을 풀던데, 핸드폰이 있어도 쓰질 못하고 프랑스어도 못 하는 우리 모양새가 꼭 방탈출 ‘지하주차장’ 편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남편이 사태 수습에 나섰다. 마트 주차장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핸드폰을 높이 치켜든 채 신호가 잡히는 곳을 찾아 주차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화면에 안테나 한 칸이라도 뜨면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다시 사라지면 몇 걸음 옆으로 이동했다.
나와 아이들도 처음에는 신호를 찾아 나서려다 남편과 길이 엇갈리면 다시 만날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차 안에 머물기로 했다.
그렇다고 차 안이 편한 것도 아니었다. 차 키를 가지고 있는 남편이 멀어지면 키가 멀어졌다고 삐삐 부저음이 울리고, 너무 답답해서 문을 살짝 열어 공기를 순환시키면 지하 주차장 특유의 꼬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러면 다시 문을 닫고, 또 답답해지면 다시 열고. 그렇게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결국 아무 말 끝말잇기를 시작했다.
십여 분 뒤 멀리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찾았다!”
진입하기 어려웠던 입주민 전용 주차장에 들어가 보니 주차칸마다 번호가 적혀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번호의 주차칸을 찾아 차를 제대로 세우고 나니 이제 숙소에 올라가 짐만 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문이 하나 있었고, 그 문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또 있었다. 건물 입구를 통과한 뒤에도 마지막에는 숙소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에 성공했을 때 방탈출이 끝난 줄 알았는데 겨우 첫 번째 방을 통과한 셈이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숙소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갈 수 있고, 파리 시내로 환승 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마트가 1층에 있다는 것?
나가는 것은 좋지만 문제는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 일이었다.
파리 시내에서 빅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파리의 내음을 만끽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려면 온 가족이 움직여야 하는데 마실 것은 뭘 사 갈까. 저녁 먹을 음식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어제 마트에서 본 와인을 다시 한번 보러 가고 싶다. 열심히 나갔는데 다 팔리고 없으면 어쩌지.
한 번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싶다는 생각과 집에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내 걱정들과 별개로 밤이 되어서야 둘째가 잘 때마다 안고 자는 곰인형을 차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은근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둘째도 덩달아 긴장했는지, 엄마 아빠를 잘 따라다녀야겠다는 생각에 황급히 움직이느라 곰인형 토토를 못 챙긴 것이었다. 토토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아이는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며 방 안을 서성였다.
예전 같았으면 “차에 토토 놓고 왔어! 아빠 토토 갖다 줘~ 뿌엥~!!” 하고 울상을 지었을 텐데,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빠를 보더니 잠시 망설이다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베개를 곰인형 삼아 안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둘째는 차에서 다시 만난 토토를 꼭 끌어안아줬다.
“차에 혼자 있어서 심심했지?”
(여행을 즐기는 토토 친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