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표지판이 붙은 차고를 찾으세요.”
알투스리트 숙소의 체크인 안내는 그렇게 시작됐다.
호스트로부터 받은 주소에 도착해 보니 정말 차고 문 위에 코끼리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차고 옆 숫자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처음에는 차를 안에 넣으라는 뜻인가 싶었는데, 숙소로 가는 길이 그 안에 있었다.
차고 안쪽으로 들어가 뒤편 문을 열어 숙소 열쇠를 찾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숙소가 나오는 구조였다. 호스트가 보내준 안내를 몇 번씩 읽었지만 잘 이해되지 않았다. 차고 앞에 서서 안내대로 하나씩 따라 해보고서야 동선이 이해됐다.
주인집 차고 벽에는 크고 작은 공구와 생활용품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우리 옆집 할아버지네 차고도 늘 이런 식으로 빽빽했는데, 남의 집 차고 한가운데를 현관처럼 드나든 건 처음이었다. 집주인의 생활 방식을 슬쩍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묵을 공간은 반지하에 가까웠다. 호스트 부부는 바로 위층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마침 집에 있어서 숙소에 대한 안내를 직접 받았고, 마당에 있는 킥보드와 공, 그네도 마음껏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습한 기운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졌다. 널찍한 내부 공간과 마당으로 이어지는 테라스까지, 첫인상은 꽤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문제는 해가 지고 나서였다.
5월이라 낮에는 제법 따뜻했는데, 어둠이 깔리자 데워졌던 공기가 금세 식었다. 집 안도 생각보다 많이 쌀쌀해졌다. 반지하에 가까운 방 안에는 바닥에서부터 서늘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런 찬 공기와 습기 속에서 자면 아이들이 금방 감기에 걸릴 것 같아서 독일식 라디에이터인 ‘하이쭝’의 다이얼을 돌렸다. 평소라면 하이쭝을 켜고 잠시 지나면 차갑던 쇠 부분이 서서히 따뜻해지면서 방 안 공기도 조금씩 데워진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차가웠다. 다이얼을 더 높여봐도 그대로였다.
“이거 안 되는 거 같지?”
우리끼리 몇 번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호스트에게 난방을 가동해 줄 수 있느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스트가 직접 내려왔다. 이 집의 호스트는 메시지로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곧잘 내려와 이야기를 해주었다. 호스트는 하이쭝을 살펴본 뒤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몇 번 터치하더니 우리에게 보여줬다.
독일어가 바로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만국 공통의 언어인 숫자와 막대그래프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에너지 사용량? 이걸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였어?’
한국에서는 여름이면 전기 계량기를 들여다보며 에어컨을 더 틀어도 될지 가늠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독일 집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계량기 숫자를 확인해 집주인에게 알려주고, 나중에 정산서를 받아 1년 치 요금을 정산하는 식이었다. 독일에 온 첫해 겨울에는 얼마를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전기장판도 하이쭝도 꽤 아껴 썼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휴대폰 하나로 사용량을 확인하고 있다니.
호스트는 바깥 기온이 난방이 작동되는 기준까지 충분히 내려가지 않아 하이쭝이 가동되지 않는 거라고 알려줬다.
“밤이 되면 더 추워질 텐데요. 온도가 내려가면 난방이 작동하나요?” 남편이 물었다.
지금보다 기온이 더 내려가면 이대로 자는 건 아무래도 걱정스러웠다. 아이들도 있으니 난방을 켜주겠다는 대답을 듣고 간단한 밤인사를 나눈 뒤 이야기가 끝났다.
호스트가 다시 위층으로 올라간 뒤에도 조금 전 본 휴대폰 화면이 자꾸 생각났다. 우리가 전기를 얼마나 쓰는지, 가스를 얼마나 쓰는지. 이 집에서 사용하는 것들이 저 화면 어딘가에 계속 쌓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은근 신경 쓰이네.’
결국 짐가방에서 내복을 꺼내 아이들에게 입혔다. 자다가 이불을 걷어찰까 봐 다리 밑으로 이불을 단단히 말아 넣었더니 꼭 미라의 다리처럼 보였다. “사람은 목이 따뜻해야 해.”라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손수건을 돌돌 말아 목에 둘러줬다.
다음 날 아침부터 에너지와 관련된 모든 행동에 나의 잔소리가 졸졸졸 따라다녔다.
“불 껐지?”
“물 아껴 썼지?”
원래도 하던 말이었는데 그 숙소에서는 한 번씩 더 힘줘서 말하게 됐다.
그동안은 숙소를 내 집처럼 생각하고 살뜰하게 잘 지내다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왠지 셋방살이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숙소비를 결제했는데도 전등 하나, 수도꼭지 하나에 괜히 눈치를 보게 됐다.
다행히 우리가 막대그래프를 치솟게 할 정도로 에너지를 많이 쓰지는 않았는지, 체크아웃할 때도 호스트와 웃는 얼굴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차고를 빠져나오면서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그 막대그래프의 존재를 몰랐다면, 그 집에서의 하루는 조금 달랐을까.
적어도 내 잔소리는 절반으로 줄었을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