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라나 할아버지와의 이틀-크로아티아, 코라나

by지노아


"안녕하세요. 내일 체크인하는데 문제가 없습니까?"


호스트에게 이미 몇 차례나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수신 확인이 안 되는 에어비앤비 자체 메시지창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 보통이라면 문 여는 방법이나 주차 안내 같은 메시지가 미리 오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안내도 없었다. 채팅창에는 우리가 보낸 메시지만 차곡차곡 쌓였다.


아드리아해와 가까웠던 숙소를 떠나 아바타의 배경으로 알려진 플리트비체의 이른 입장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근처 산속에 숙소를 잡았다. 산길을 한참 오르다 보니 계곡이 나왔고 그 안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숙소로 향하면서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다가도 '혹시 숙소가 없으면 근처에 남는 숙소부터 빨리 찾아보자'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아이 둘을 태우고 몇 시간을 달린 탓인지, 오지 않는 답장에 초조해질 뿐이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또 하나의 문제가 우리를 맞이했다. 집 번지수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찾아왔는데 차에서 내려 보니 같은 번지수를 달고 있는 집이 세 채나 있었다. 어느 집이 예약한 숙소인지 가늠하기 어려운데 호스트와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계곡 건너편에서 물놀이를 하던 사람들도 갑자기 나타나 집 주변을 서성이는 우리를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괜히 동네를 구경하는 사람처럼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다시 숙소 앞에 돌아왔을 때 남편이 한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찾았어?"


아이들은 드디어 우리가 어느 집에 들어갈 수 있는지 이 수수께끼를 빨리 풀고 싶은 마음에 아빠를 재촉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서 호스트 이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을 아냐고 물어봤단다.


숙소를 실제로 관리하는 사람은 이 할아버지였다. 에어비앤비 메시지를 확인하고 예약 일정을 전달하는 일은 아들이 맡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 우리의 체크인 일정을 이틀 뒤로 잘못 알려준 것이었다. 우리는 정확한 날짜에 찾아왔지만, 숙소는 우리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여행에서 이런 순간이 제일 난감하다. 일을 잘못한 사람은 자리에 없고, 애꿎은 사람들끼리 마주 보고 있어야 할 때. 나는 에어비앤비에 상황을 알리고 클레임을 남겼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우리에게 여러 번 사과를 했다. 자신의 영어가 부족하다며, 손짓과 표정으로 뭔가를 필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마치 아들에게 해가 될까 봐 아버지가 대신 나서서 사과하는 것 같았다.


화면 속 호스트에게는 따져 묻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정작 눈앞에 있는 할아버지를 보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서둘러 숙소를 준비하겠다며, 우리에게 크로아티아 맥주 두 병을 꺼내주셨다. 우리는 맥주병을 받아들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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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아이들이 숙소 옆으로 흐르는 계곡을 발견했다.

"엄마! 수영복 어딨어?"

아이들은 방금 전까지 어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는 관심 없고 우선 집을 찾았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는지 물가로 달려갔다. 계곡은 플리트비체와 이어져 있었고 물빛이 맑고 예뻤다. 동네 사람들이 노는 곳이라 사람도 많지 않았고, 정말 아이들만 풀어놔도 될 것 같은 한적한 곳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울진의 어느 계곡에 숨어 있는 선녀탕 같은 곳. 동네 사람들이 단오날이면 몰래 멱을 감으러 나올 법한 곳이었다.


거기다 이 집에는 고양이와 개도 여러 마리 있었다. 어디선가 털 색깔과 몸집이 다른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이들이 이름을 붙여 주다가 포기할 만큼 계속 바뀌었다. 큰 개는 두 마리였는데, 알고 보니 개집 안쪽에는 이제 막 태어난 강아지들이 옹기종기 웅크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물가에서 나왔다가 동물들에게 갔다가, 다시 물가로 뛰어가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꼬여버린 체크인 일정과 에어비앤비 클레임을 처리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이 집은 이미 계곡과 동물들이 있는 완벽한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예정된 체크인 시간에서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우리는 겨우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숙소를 둘러보는 순간 주방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진에는 식기와 냉장고가 있었는데 싱크대가 없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숙소에 들어와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점심도 대충 때웠는데, 물놀이를 끝낸 아이들은 곧 배가 고프다고 할 게 뻔했다. 숙소는 마을의 식당가와도 떨어져 있어서, 차를 타고 나가려면 족히 20분은 걸리는 곳이었다.


남편과 나는 진지하게 "숙소를 바꿔야 하나?" 하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물에 몸을 담갔고 숙소에는 들어왔고, 우리는 다시 짐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결국 할아버지께 라면을 끓일 수 있게 가스불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 와중에 챙겨 온 라면은 짜파게티. 면을 끓이고 물을 적당히 따라내고 분말 스프와 올리브유를 섞어야 하는 짜파게티. 매운 것을 못 먹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진라면 순한맛 정도를 차근차근 연습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집에서 이틀을 묵고 떠나는 날, 할아버지는 문 앞까지 나와 우리를 배웅했다. 끝내 많은 말은 오가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괜찮다는 뜻으로 여행 가방에 넣어 다니던 한글 바카라갈피와 볼펜 세트를 건넸다. 할아버지는 선물을 받아 들고 한동안 우리를 바라보았다.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처음 만났을 때도, 헤어질 때도 우리는 말보다 먼저 할아버지의 눈빛을 읽었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집을 떠올리면 두 장면이 함께 떠오른다.

문 앞에 서 있던 할아버지와 계곡에서 물을 튀기며 웃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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