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을 고른 이유는 딱 하나, 바다를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였다.
통유리 창 밖에 푸른 아드리아해가 넘실거리고, 요트와 유유자적 수영하는 사람들이 내려다보이는 집은 아니었다. 골목을 굽이굽이 들어가야 나오는 집, 발코니에 나가면 어디선가 나타난 고양이가 작은 배 위에 올라타 나와 눈싸움을 하는 집이었다. 원하는 풍경을 방 안에서 볼 수 있는 숙소는 나라를 막론하고 비싸다는 게 숙소의 기본 공식이니까.
‘그래, 해넘이는 당진 왜목마을에서도 실컷 봤잖아.’
문제는 숙소를 찾아가는 길부터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폭의 경사진 도로에서 마주 오는 차를 비켜주랴, 숙소를 찾으랴, 돌담에 차가 긁히지는 않을까 살피랴, 도착하기도 전부터 앞자리의 나와 남편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빨리 내려서 바다 수영하고 싶어.”
뒷자리의 아이들은 그런 부모의 사정도 모른 채 조잘거렸고, 나는 서둘러 미션을 던졌다.
“숙소 빨리 찾는 사람이 화장실 먼저 쓰기!”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이 자매에게 ‘먼저’라는 단어는 굉장한 혜택처럼 느껴지는지, 둘은 창가에 바짝 달라붙어 집 찾기에 동참했다.
“저기 아니야?”
“저긴가 봐!”
“저 아저씨는 팬티만 입고 있어!”
여기저기서 목격담이 쏟아졌지만, 가장 먼저 숙소를 찾아낸 건 이번에도 우리 가족의 해결사인 남편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 작은 전실 같은 공간이 나왔다. 바닷가에서 돌아와 모래를 털고 젖은 옷을 처리하는, 이 동네 집들의 특징 같은 공간이었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건조대를 보니 빨래도 널어 말리는 모양이었다.
전실을 지나 신발을 벗고 맨발로 생활공간의 바닥을 딛는 순간 ‘아차!’ 싶었다. 서둘러 챙겨 온 슬리퍼부터 꺼내 신었다. 아담한 주방 겸 거실에 침실 두 개. 집을 찬찬히 둘러보기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이미 한참 앞서 바다에 가 있었다. 우리는 짐만 대충 내려놓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밖으로 나왔다.
골목을 따라 내려가자 집들 사이로 조금씩 파란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사로를 내려갈수록 바닷가에서 막 수영을 끝내고 올라오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났고, 발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하나씩 느껴지기 시작하자 ‘바다구나!’ 싶었다.
바다에 온 것이 무려 2년 만이었다. 마지막 바다 기억이 해파리 떼로 입수 금지가 됐던 동해 바다였다.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바다를 보자 그 감격에 한참을 물속에서 놀다 보니 허기가 몰려왔다. 숙소 체크인하고 점심도 먹지 않은 채 바다로 내달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늦은 점심때가 되어 있었고, 바다 맞은편 화덕피자 가게에는 줄이 꽤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피자 두 판을 받아와 모래사장 위에 펼쳐놓았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바닷물을 닦을 새도 없이, 식탁도 접시도 없이 피자 상자를 가운데 두고 한 조각씩 집어 들었다. 쫀득한 도우가 입안에 오래 감겼다.
내가 크로아티아에서 기대했던 건 어쩌면 이런 것이었나 보다. 어디에 앉든 우리가 앉으면 근사한 식탁이 되고, 누구도 서두르지 않고 마음까지 느슨해지는 시간. 어느새 우리도 그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었다.
물놀이를 마치고 50센트를 넣으면 30초간 민물이 쏟아지는 샤워기를 찾아냈다. 아까 피자를 사 먹느라 정말 딱 50센트만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 짧은 시간 안에 바닷물의 짠기를 씻어내겠다며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대충 소금기를 털고 집으로 돌아와서 제대로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그런데 먼저 샤워를 마치고 나온 둘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내가 들어가 보니 매끈해야 할 욕조 바닥에는 그슬린 자국이 남아 있었고, 한쪽에는 오래된 흉터처럼 긴 금이 나 있었다. 깨진 자리를 다른 재료로 덧대 메워놓은 흔적까지 있었고, 수도꼭지를 최대로 돌렸는데도 샤워기 물은 졸졸졸, 힘없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이 숙소, 난이도가 좀 있네.’
불편했을 텐데도 투덜거리지 않고 샤워를 잘 마친 둘째를 다독거려 주고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왔다. 식기세척기가 없는 것을 보고 살짝 놀랄 뻔했으나 고무장갑을 챙겨 온 나의 준비성에 스스로 감탄하며 마음을 달랬다.
문제는 가스레인지였다. 자동으로 불이 붙지 않아 라이터를 가까이 가져간 채 동시에 다이얼을 돌려야 했는데, 몇 번을 해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 불꽃만 허공에서 사라졌다. 불 켜는 것을 잠깐 포기한 채로 식기를 찾기 위해 싱크대 아래 문을 열었다가 노란 가스통 하나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이게 집 안에 있다고? 한국에서 LPG통은 밖에 있었는데?
‘이거 터지면 어쩌지?’
설거지가 귀찮다는 생각 따위는 불꽃과 함께 타버렸다.
몇 차례의 실패 끝에 라이터의 불꽃과 다이얼을 돌리는 손의 타이밍이 맞아떨어졌고, 그제야 프라이팬을 올릴 수 있었다. 식기세척기가 없으니 요리 도구도 최대한 줄여야 했고, 밥을 먹을 때도 접시를 아껴 쓰게 됐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꺼냈을 그릇 하나, 냄비 하나에도 한 번 더 생각이 필요한 며칠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불편은 바다에만 나가면 금세 작아졌다.
다음 날에도 우리는 수영복을 챙겨 들고 같은 길을 걸어 내려갔다. 뜨거운 여름 태양에 달궈진 도로를 지날 때는 그늘 하나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고, 골목 끝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 발걸음은 다시 빨라졌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태양은 조금씩 낮아졌고, 바다 위로 붉은빛이 길게 번지기 시작했다. 한낮에는 해가 빨리 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수평선 위로 내려가는 해를 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조금만 더 머물러주었으면 싶었다.
바다를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것.
결국 그 한 가지가 이 집의 여러 불편을 조용히 덮어주었다. 샤워기에서 물이 졸졸 흘러도, 저녁마다 라이터를 들고 가스불과 씨름해야 해도, 문을 열고 조금만 걸으면 이 바다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니 가끔은 눈을 감아도 괜찮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