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의 조직, 1등 흉내 내면 진다

전략이 방향을 정하면, 속도와 힘은 조직이 만든다

by조병묵

돈을 벌면 1등처럼 조직을 갖추겠다. 많은 2등 대표들의 꿈이다. 직급을 늘리고, 결재선을 세우고, 기획팀을 만들고, 사람을 뽑는다. 착각이다. 1등의 조직은 1등의 싸움법에 맞춰 지은 배다. 그 배를 빌려 타는 순간, 2등은 1등의 바다에서 1등의 방식으로 싸우게 된다. 그 바다에서는 수가 많은 쪽이 이긴다.


임진왜란의 바다를 보라. 왜선은 수가 많았다. 배도 많았고, 훈련된 병사도 많았다. 삼나무로 지어 가볍고, 바닥이 뾰족해 빨랐다. 빠르게 붙어서 상대 배에 올라타고, 칼싸움으로 끝냈다. 쪽수로 미는 싸움이었다. 조선의 배는 달랐다. 소나무로 짜 무거웠고, 바닥이 평평해 느렸다. 대신 제자리에서 돌았고, 함포를 실었다. 붙기 전에 쏘았다. 그리고 그 위에 덮개를 씌우고 칼송곳을 꽂은 배 한 척을 더 만들었다. 거북선이다. 수는 열 배 차이가 났다. 그런데 남해의 주인은 바뀌지 않았다.


기억하라. 기업은 스스로 자라는 유기체다. 자라려면 조직에는 셋이 필요하다. 방향, 속도, 힘. 1등은 이 셋을 시스템과 수로 만든다. 2등은 대표와 구성원의 몰입으로 만든다. 재료가 다르다. 그러니 2등이 1등의 조직을 흉내 내는 것은, 자기 무기를 내려놓고 남의 무기를 빌리는 짓이다. 남의 무기는 손에 맞지 않는다.


거북선부터 보라. 거북선은 새로 설계한 배가 아니다. 이미 있던 판옥선 위에 판자를 덮고, 그 위에 칼송곳을 심은 배다. 곳간이 넉넉했다면 판옥선을 더 지었을 것이다. 곳간이 비어 있었기에 "올라탈 수 없는 배"라는 예상 밖의 답이 나왔다. 이순신은 조정에 이렇게 보고했다.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엿볼 수 없어, 적선 수백 척 속으로도 뛰어들어 포를 쏠 수 있다고. 1등의 필살기인 "올라타기"를 무력하게 만드는 배를, 1등의 수를 따라가지 않고 만든 것이다.


대전의 한 빵집은 프랜차이즈를 하지 않는다. 가맹점도, 전국 출점도 없다. 매장 수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2025년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643억 원으로, 전국에 수천 개 가맹점을 거느린 1·2위 프랜차이즈 운영사의 영업이익을 합친 542억 원보다 컸다. 사업 방식이 달라 단순 비교는 무리라는 반론도 있다. 옳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핵심이다. 이 회사는 1등의 방식으로 1등과 싸우지 않았다. 매장 수라는 1등의 수를 흉내 내지 않았기에, 매장 수가 의미 없는 싸움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2등의 조직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첫째, 방향은 빈 곳간에서 나온다. 1등의 전략은 회의실에서 나온다. 시장 조사와 보고서와 합의를 거친 그럴듯한 계획이다. 그럴듯한 계획은 상대도 읽는다. 왜군의 전략은 남해를 돌아 서해로 올라가 보급을 잇는 것이었다.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왜군이 어디로 올지 알았다. 2등의 전략은 대표의 머리와 현장에서 나온다. 자원이 부족하니 남들이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하게 된다. 2등이 기획팀을 두고 보고서로 전략을 만들기 시작하면, 자원은 2등인데 전략은 1등처럼 뻔해진다.


둘째, 속도는 무를 수 없는 한 수가 결정한다. 2등의 속도는 대표가 정한다. 전략형 대표는 순응형보다 조금 느리다. 그 느림이 중소기업에서는 정교함이 된다. 1등을 따라가는 순응형 대표는 일반적으로 빠르다. 그러나 큰 그림을 놓치고, 독단으로 치닫고, 자주 바꾼다. 못을 박는 것이 아니라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칠천량으로 가던 함대가 그랬다. 출정하고 물러나고 다시 출정했다. 바람과 파도를 재지 않고 적을 쫓다 판옥선 열두 척을 표류로 잃었다. 명량의 이순신은 느렸다. 물길을 고르고 진영을 옮긴 뒤에야 싸웠다. 그러나 한 번 두자 무르지 않았다. 빠른 대표와 서두르는 대표는 다르다. 조직은 아홉 번의 무르기를 기억한다.


셋째, 힘은 머릿수가 아니라 눈빛이다. 1등의 힘은 수에서 나온다. 2등의 힘은 구성원의 몰입에서 나온다. 냉소하는 사람, 끌려가는 사람, 스스로 끌고 가는 사람. 이 셋의 비율이 2등의 힘이다. 칠천량에 정박한 함대에 왜선 한 척이 다가와 조총 한 발을 쏘자, 백 척 넘는 배들이 놀라 흩어졌다고 전해진다. 수는 있었고 힘은 없었다. 2등이 1등처럼 사람을 늘리고 역할을 잘게 쪼개면, 숨을 곳이 없던 조직에 숨을 곳이 생긴다. 머릿수는 늘어도 눈빛은 흐려진다.


넷째, 셋은 곱이다. 방향 곱하기 속도 곱하기 힘. 하나라도 0이면 전체가 0이다. 명량의 아침이 그랬다. 방향은 맞았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열두 척이 겁을 먹고 나아가지 않았다. 힘이 0이었다. 그래서 대장선 한 척이 홀로 적진에 들어가야 했다. 방향과 속도를 갖춘 대표라도, 힘이 없으면 혼자 싸운다.


다시 보라. 1등의 조직을 흉내 낸다는 것은 방향·속도·힘의 재료를 통째로 바꾸는 일이다. 대표의 선택을 회의실의 계획으로, 정교한 한 수를 결재선의 직진으로, 구성원의 눈빛을 머릿수로. 그런데 1등의 재료는 2등의 몸에 맞지 않는다. 판옥선은 왜선을 흉내 내지 않았다. 흉내 내지 않았기에 이겼다.


그런데 같은 판옥선이 칠천량에서는 가라앉았다. 배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의 문제였다. 다음 편에서 그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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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 진단을 위한 세 가지 시선]


CEO의 시선 — 방향과 속도

1. 지난 1년간 새로 도입한 제도·직급·절차 중 "1등도 그렇게 한다"가 도입 이유였던 것은 몇 개인가?

2. 지난 1년간 되돌린 결정은 몇 번이었고, 그중 되돌릴 조건을 미리 정해 둔 것은 몇 번인가?

3. 경쟁사가 예측하지 못했을 우리의 결정 하나를 꼽는다면 그 이름은 무엇인가?


실무자의 시선 — 힘

1. 우리 회사에서 내가 빠지면 멈추는 일의 이름은 무엇인가? (없다면 그것이 답이다)

2. 대표가 방향을 바꿨을 때 "또 바뀌겠지"라고 말한 동료는 몇 명인가?

3. 대표의 결정에 반대한 뒤 그 일의 실행을 맡은 사람의 이름은 누구인가?


경쟁사의 시선 — 1등이 본 우리

1. 1등이 우리를 따라 하려면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의 이름은 무엇인가?

2. 1등이 우리 시장에 올라타 물량으로 덮을 때,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3. 1등이 우리 회사에서 가장 먼저 빼 가고 싶어 할 사람은 누구인가?


[운영 탁월성을 갖춘 조직의 월요일 실천과제]


1단계 지난 1년간 도입한 제도·직급·절차를 한 줄씩 적어라. 그중 "1등도 하니까"가 이유였던 것에 표시하라. 그 개수가 우리 배에 달린 남의 돛의 수다.

2단계 표시한 것 중 하나를 골라, 그 제도 때문에 한 건의 결정이 거치는 단계 수와 평균 대기일을 세어라. 결재선이 하나 늘 때마다 대표의 한 수는 하루씩 늦어진다.

3단계 팀장들에게 부탁해 각자 팀원에게 "내가 없으면 멈추는 일"을 한 줄씩 받아라. 한 줄도 쓰지 못한 사람의 수를 세어라. 그 수가 조직 안에 생긴 숨을 곳의 수다.


이번 주 안에 정할 숫자 하나, 1단계에서 표시한 제도 중 이번 주 안에 걷어낼 것 하나를 이름으로 정하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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