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적 열세를 이기는 2등의 조직력, 어디서 나오나

1등의 수와 체계를 압도하는 리더의 전략과 구성원의 몰입

by조병묵

명량의 열두 척은 칠천량에서 도망친 배였다. 조선 수군이 무너진 그날 새벽, 경상우수사 배설은 휘하 판옥선 열두 척을 이끌고 전장을 빠져나갔다. 한 달 뒤 이순신이 물려받은 함대가 바로 그 열두 척이었다. 같은 배, 같은 노꾼, 같은 바다. 달라진 것은 지휘관뿐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많은 이들이 조직의 힘을 사람 수, 그리고 시스템과 제도로 잰다. 착각이다.


칠천량의 함대를 보라. 판옥선이 백 척을 넘었고, 거북선도 있었고, 병력은 넉넉했다. 그러나 지휘관이 흔들리자 수군은 오합지졸이 되었고, 밤의 기습 백병전에 무너졌다. 왜선 한 척의 조총 한 발에 흩어졌다고 전해진다. 명량의 함대를 보라. 열두 척에 백성이 가져온 한 척을 더한 열세 척이었다. 적은 백서른세 척이었다. 그 열세 척이 물길을 막았다. 수로 재면 칠천량이 이기고 명량이 진다. 현실은 거꾸로였다. 칠천량의 바카라임을 두고는 오늘까지 논쟁이 있다. 그러나 결과는 논쟁할 수 없다.


기억하라. 1등은 숫자로 싸운다. 2등은 몰입으로 싸운다. 그러나 몰입은 명령으로 생기지 않는다. 대표가 어떻게 결정하느냐가, 구성원이 어떻게 노를 젓느냐를 정한다. 대표의 결정 방식은 둘이다. 근거로 결정하는 전략형과, 오만·변덕·독선으로 결정하는 무모형. 구성원의 몰입은 셋이다. 등을 돌리는 냉소형, 시키는 만큼만 젓는 종형, 이름을 걸고 노를 젓는 주인형. 둘 곱하기 셋, 여섯 칸이다. 2등의 조직은 이 여섯 칸 중 하나에 떠 있다.


역사가 여섯 칸을 다 보여 준다. 무모한 지휘 아래 판옥선은 명령대로 막다른 포구로 후퇴해 상륙했고, 거북선은 돌격 한 번 못 해 보고 가라앉았고, 열두 척은 등을 돌려 도망쳤다. 전략가의 지휘 아래 판옥선은 학익진의 대열이 됐고, 거북선은 적진을 먼저 뚫는 선봉이 됐고, 도망쳤던 열두 척은 명량에서 백서른세 척을 막았다. 세로로 읽으면 결론이 하나다. 무모한 대표 밑에서는 주인형도 종형도 가라앉고 냉소형만 살아남는다. 전략형 대표 밑에서는 냉소형조차 기적의 주역이 된다. 구성원의 유형보다 대표의 유형이 먼저다.


간편 송금 하나로 은행권에 도전한 작은 팀이 있었다. 이 회사는 직급이나 연차가 아니라, 그 문제를 가장 깊이 고민한 사람에게 결정권을 주는 제도를 두었다. 대표가 반대할 때도 "나는 반대하지만, 당신이 꼭 하고 싶다면 해 보라"라고 말한다고 한다. 대표가 근거로 결정하고, 제안을 한 사람이 실행의 선두에 선다. 전략형 대표와 주인형 구성원이 만나는 칸이다.


1등도 이것을 안다. 그런데 못 한다. 세 가지 이유다. 첫째, 1등은 편애할 수 없다. 수천 명에게 같은 규칙을 적용해야 하는 조직은 한 사람에게 "당신이 꼭 하고 싶다면 해 보라"라고 말할 수 없다. 예외 하나가 수천 개의 민원이 된다. 규칙은 예외를 없애려고 존재한다. 둘째, 1등의 시스템은 사람이 바뀌어도 돌아가게 설계된다. 누가 빠져도 자리가 일한다. 그것이 시스템의 목적이다. 그런데 바로 그 목적이 리더를 필요 없게 만든다. 리더가 필요 없는 조직에서 리더십은 자라지 않는다. 셋째, 거리다. 2등은 작아서 대표의 말이 복도에서 들리고, 절실해서 뒤가 없다. 1등은 대표의 말이 공문으로 내려오고, 지더라도 내일이 있다. 명량의 열세 척에게는 내일이 없었다. 그 절실함이 몰입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면 2등 조직은 어떻게 전략형 대표와 주인형 구성원이 만나는 칸으로 옮겨 가는가.


첫째, 무모한 대표 밑에서는 좋은 사람부터 가라앉는다. 칠천량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거북선이었다. 싸울 의지가 있는 배가 무모한 명령 아래서 돌격 한 번 못 하고 침몰했다. 명령대로 움직인 판옥선도 막다른 포구에서 집단으로 좌초했다. 주인형은 소진되고, 종형은 함께 가라앉는다. 대표의 오만은 구성원의 예스맨을 낳고, 대표의 변덕은 구성원의 냉소를 낳고, 대표의 독선은 구성원의 침묵을 낳는다. 그리고 침묵한 사람은 떠난다.


둘째, 냉소는 배신이 아니라 경보다. 배설의 열두 척은 도망쳤다. 역설이지만 그 이탈이 조선 수군의 마지막 씨앗을 살렸다. 무모한 대표 밑에서 구성원이 등을 돌릴 때, 그것은 조직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다. 대표가 이 신호를 배신으로 읽으면 조직은 끝난다. 경보로 읽으면 살아난다.

셋째, 전략가는 냉소한 조직으로 출정하지 않는다. 먼저 바꾼다. 명량 직전의 이순신이 물려받은 것은 겁에 질린 열두 척이었다. 그는 곧바로 싸우지 않았다. 거짓 경보를 퍼뜨린 자를 처형해 군심을 다잡고, 물길을 고르고, 진영을 옮겼다. 그래도 전투 첫 장면에서 열두 척은 나아가지 않았다. 대장선이 홀로 적진에 들어간 뒤에야 따라붙었다.


필자가 사모펀드에 인수된 뒤 적자에 시달리던 한 회사의 대표로 처음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마주친 것도 숫자가 아니라 냉소였다. 주인도 없는 회사, 무엇을 해도 안 된다, 저 사장도 금방 날아가겠지. 복도의 공기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명량 전야의 열두 척이 거기 있었다. 전략보다 먼저 한 일은 대화였다. 대화 다음은 타협이었고, 타협은 조직과 제도로 굳혔고, 제도는 보상과 벌로 받쳤다. 냉소를 주인의식으로 바꾸는 그 과정이 곧 턴어라운드의 과정이었다. 냉소한 조직을 돌려세우는 것은 연설이 아니라 대표의 첫걸음이다. 대표가 먼저 몸으로 보여 줄 때, 냉소형은 주인형이 된다.


넷째, 명령을 규율로 바꿔라. 이순신의 판옥선 본진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다. 진법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전략가 아래서 종형은 규율이 되고, 규율은 학익진이 된다. 종형 구성원이 나쁜 것이 아니다. 종형만으로 이루어진 조직이 위험한 것이다. 선장이 바뀌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배가 이 배이기 때문이다. 대표는 종형 구성원 중 하나라도 주인형으로 세워야 한다. 그 한 명이 대표가 없는 날의 대장선이다.


다시 보라. 1등의 수와 체계는 2등이 따라잡을 수 없다. 따라잡을 필요도 없다. 칠천량의 백 척은 총 한 발에 흩어졌고, 명량의 열세 척은 백서른세 척을 막았다. 방향·속도·힘의 곱에서 힘을 정하는 것은 머릿수가 아니라 몰입이다. 그리고 몰입은 구성원의 성품이 아니라 대표의 결정 방식, 전략에서 만든다. 도망친 열두 척이 명량에서 이겼다. 배는 그대로였다. 바뀐 것은 선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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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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