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의 대표제품을 고립시키는 2등의 신제품 전략
많은 이들이 1등은 트렌드를 놓쳐서 늦는다고 여긴다. 착각이다. 1등이 더 먼저, 더 정확히 봤다. 조사비를 더 쓰고, 데이터를 더 갖고, 매대를 매일 들여다보는 쪽은 1등이다. 1등은 보았다. 보고도 못 움직였다. 회의실에서 질문 하나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거 하면 기존 거 얼마 빠집니까."
1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니즈를 읽어 제품을 만들고, 광고비를 부어 목소리를 키우고, 배송과 반품과 AS로 신뢰를 쌓는다. 리뷰가 쌓이고 구전이 퍼지고 재구매가 붙는다. 그러면 고객이 우리 이름 자체를 검색어로 사용한다. 그 과정이 남긴 유산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브랜드 호감, 이미 땅에 묻어버린 물류 투자, 운영 탁월성을 갖춘 시스템과 사람이다. 동시에 파레토의 법칙이 자리를 잡는다. 20%의 제품이 80%의 매출을 만든다. 어느 순간 새로 얻을 것보다 지킬 것이 많아진다. 갑옷이 무거워진 것이다.
그래서 2등에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긴다. 대표제품의 카니발라이제이션을 일으킬 수 있는 신제품을 출시하지 못하는 1등의 족쇄가 보이는 것이다.
미국에 무알코올 맥주만 만드는 회사가 있다. 2018년에 창업해 알코올이 든 맥주는 한 캔도 만들지 않는다. 2023년 매출 9천만 달러, 미국 무알코올 맥주 시장의 19%를 쥐었다. 무알코올이 잘 팔려서 손해 보는 제품이 사내에 없기 때문이다. 대형 맥주사의 회의실에는 그 제품이 있다.
현장에서 만난 동네 수학학원은 원생이 마흔 명이었다. 길 건너 프랜차이즈의 무기는 주 3회 정규반, 좌석이 곧 매출인 구조다. 이 학원은 반대로 갔다. 주 1회만 오게 하고 나머지 나흘은 저녁마다 오답 사진을 받아 15분씩 음성으로 답을 보냈다. 원비는 절반, 강사 한 명이 맡는 학생은 세 배가 됐다. 프랜차이즈는 이 상품을 못 만든다. 임대료와 강사 시급이 앉아 있는 시간에 묶여 있어서다. 덜 오게 하는 상품은 그들에게 매출을 스스로 지우는 일이다.
다만 오해하지 마라. 매출의 족쇄는 1등을 영영 붙잡아두지는 못한다. 1등은 온다. 망설이다 늦게 올뿐이다. 2등이 얻는 것은 시차다. 그 시차 안에 무엇을 하느냐로 승부가 갈린다. 2등이 니즈 변화에 맞춘 신제품을 내놓는 순간, 1등의 족쇄는 채워진다.
첫째, 경쟁자 명단을 수요의 눈으로 다시 써라. 공급자의 눈으로 보면 경쟁자는 같은 매대에 놓인 회사들이다. 수요의 눈으로 보면 고객이 우리 대신 고르는 모든 것이다. 인터넷 게임의 공급자 관점 경쟁자는 다른 게임이지만, 수요 관점에서는 독서와 운동이다. 맥주도 그렇다. 사람들은 취하려고 모이지 않는다. 함께 있으려고 모인다.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이유를 물었더니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의 대안이라는 답이 절반을 넘었다. 국내 1등들도 이것을 알았다. 그래서 냈다. 다만 한 곳은 맥주 회사가 아니라 음료 계열사에 맡겼고, 다른 곳은 온라인 전용으로 조용히 시작했다. 낼 수는 있었다. 자기 매대 옆에 놓지는 못했다.
둘째, 1등을 낡게 만들어라. 하지만 1등을 언급하지는 마라. 2022년 9월, 한 후발 소주가 과당을 뺀 제품을 냈다. 자기는 달지 않다고만 했다. 1등의 이름은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그 순간 1등이 단맛 나는 옛날 소주가 됐다. 넉 달 뒤 1등이 대응했다. 자기 2번 제품의 도수를 낮추고 당을 뺐다. 월 1억 2천만 병이 팔리는 대표제품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그 사이 후발주자는 7개월 만에 1억 병을 팔았고, 소주 소매 점유율은 1년 만에 14.9%에서 18%로 올라갔다.
셋째, 아류를 만들지 마라. 1등과 같은 매대에 나란히 서면 가격으로만 이긴다. 그런 제품은 아주 쌀 때나, 1등이 품절일 때나 팔린다. 2009년 부산의 작은 주류회사가 36.5도 위스키를 냈다. 당시 시장은 두 글로벌 브랜드의 40도 제품이 양분했다. 두 회사도 뒤늦게 저도주를 냈다. 냈지만 팔지 않았다. 마케팅은 여전히 전통적인 대표제품을 향하고 있었다. 자기 40도가 매출의 거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 작은 회사의 매출은 2009년 36억 원에서 2015년 1,141억 원이 됐다.
넷째, 따라오기 전에 잠식을 끝내라. 시차는 짧다. 앞의 소주는 넉 달이었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도 짧으면 넉 달이다. 한 방으로는 못 끝낸다. 2019년, 붙이는 젤네일을 만드는 회사가 첫해 여름 한 시즌에만 신제품 마흔일곱 종을 쏟아냈다. 이 회사의 골리앗은 다른 화장품 회사가 아니라 네일샵이었다. 몇 시간씩 앉아 받던 시술을 손톱 위 필름 한 장으로 옮겼다. 네일샵은 이 제품을 만들 수 없다. 만드는 순간 자기 의자를 비우는 일이다. 전년 매출 65억 원이던 회사가 이듬해 상반기에만 410억 원을 팔았다. 반년 만에 여섯 배다. 미투 제품이 몰려왔을 때 카테고리의 이름은 이미 그 브랜드였다. 리듬은 남발이 아니다. 한 번 얻은 시차를 다시 만들어내는 호흡이다.
그 위스키 회사는 이겼다. 2017년 1위에 올랐다. 그리고 2022년 사상 최대 실적을 찍은 뒤 매출이 줄기 시작했다. 하이볼과 싱글몰트가 밀려오는 동안 그들이 한 일은 그 술들을 수입해 자기 매대 옆에 놓는 것이었다. 그물을 쳤다. 15년 전 두 골리앗이 저도주를 냈던 것과 똑같이. 족쇄는 상속된다. 1등이 되는 순간 채워진다. 1등은 못 봐서 지지 않는다. 보고도 못 움직여서 진다. 그러니 물어라. 지금 우리 회의실에서 1등에게 매출의 족새를 채울 안건은 무엇인가.
[우리 회사 진단을 위한 세 가지 시선]
고객의 시선
1. 고객이 우리를 안 살 때 대신 사는 것 셋은 무엇인가? 그중 업종 밖의 것은 몇 개인가?
2. 고객이 우리 제품으로 끝내려는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을 더 싸게 해주는 방법이 이미 있는가?
3. 1등 대신 우리를 고른 이유를 고객 열 명에게 물으면 몇 명이 같은 답을 하는가?
1등 회의실의 시선
1. 1등의 매출 80%를 만드는 제품은 무엇이며, 그 금액은 얼마인가?
2. 우리가 지금 파는 것을 1등이 그대로 팔면 자기 매출에서 얼마를 잃는가?
3. 1등의 회의실에서 우리 이름은 어떤 안건에 오르는가? 통과되는가, 보류되는가?
CEO의 시선
1. 1등이 우리를 따라오기까지 몇 개월인가? 근거는?
2. 지난 12개월간 내놓은 새로운 것은 몇 개인가? 다음 12개월에는 몇 개인가?
3. 1등의 매대 옆에 놓였을 때 고객은 가격 말고 무엇을 보고 우리를 고르나?
[운영 탁월성을 갖춘 조직의 월요일 실천과제]
1등이 결재판에 올리지 못할 제품 하나를 찾아라
1단계(월요일 오전, 2시간) 1등의 대표제품 하나를 정하고 매출 규모를 추정한다. 공시와 기사를 뒤지고 유통 담당자에게 묻는다. 자릿수만 맞으면 된다. 그 금액이 1등이 찬 족쇄의 무게다.
2단계(월요일 오후, 2시간) 고객이 우리 대신 고르는 것을 열 개 적는다. 업종 밖의 것도 적어라. 그중 1등이 팔면 1단계 금액을 갉아먹는 것에 동그라미를 친다. 그것이 1등이 결재판에 올리지 못할 제품이다.
3단계(주중) 동그라미 하나를 골라 출시일을 날짜로 못 박는다. 1등이 따라오기까지 걸릴 개월 수를 팀원 각자 적어 평균을 낸다. 그 숫자가 이번 분기의 크리티컬 넘버다. 짧으면 넉 달이다. 달력에 그날을 붉게 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