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 하나를 물리고 값을 덜 받는 것

빼고 푸는 2등의 선택이 1등에게 수익성의 족쇄를 채운다

by조병묵

시장을 오래 지킨 1등의 제품은 어느새 그 업종의 표준이 된다. 제품만이 아니다. 파는 방식, 매장의 모양, 딸려 나오는 서비스까지 전부 표준이 된다. 많은 2등이 그 표준을 따라간다. 착각이다. 1등은 먼저 왔다는 이미지를 선점했고, 큰 규모에서 나오는 원가 절감까지 함께 누린다. 같은 것을 만들면 2등은 이미지를 따라잡느라 마케팅비를 더 쓰고, 규모가 작아 원가는 더 높다. 따라 하기 전략(Me-too)은 2등을 천천히 말려 죽인다.


길은 반대편에 있다. 표준을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표준 하나를 지우는 것이다. 지워도 안전한 이유는 하나다. 1등은 따라 지우지 못한다. 우리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대형마트는 2009년만 해도 국내 유통업 매출의 절반 이상을 가져갔다. 그런데 온라인이 커지고 균일가 매장이 골목까지 들어오는 사이, 대형마트 3사의 매출 비중은 2020년 17.9%에서 2026년 4월 7.9%로 떨어졌다. 6년 만에 절반 아래다. 홈플러스는 2025년 기업회생에 들어갔다. 쿠팡처럼 값을 내리면 매장의 이익이 무너지고, 다이소처럼 균일가로 가면 스무 해 쌓은 정체성이 흔들린다. 알면서도 못 내려왔다.


못 내려온 진짜 이유는 가격표 안에 있다. 1등의 가격은 한 상 차림 값이기 때문이다. 고깃집에서 반찬에 손도 안 대는 손님도 상차림비를 낸다. 1등은 제품과 거기 딸린 서비스를 한 상에 묶어 한 값을 받는다. 그 묶음이 곧 1등의 마진이다. 2등이 할 일은 그 상을 푸는 것이다. 상을 푼다는 것은 손님에게 이렇게 제안하는 일이다. 이 접시를 물리겠다. 대신 값을 덜 받겠다. 그러면 고객이 두 갈래로 들어온다. 안 먹는 반찬값을 내고 있던 1등의 고객이 넘어오고, 상차림비가 부담스러워 아예 오지 않던 사람이 처음 들어온다. 1등은 따라 풀지 못한다. 풀어 가격을 내리면 표준이 무너지고 마진이 함께 사라진다. 2등이 구조에서 항목 하나를 빼는 것은 설계다. 1등이 같은 항목을 빼는 것은 손실 처리다.


부산에서 시작한 저가 커피 브랜드는 매장을 열 평 남짓으로 줄이고 테이크아웃을 중심에 놓았다. 넓은 좌석과 긴 체류를 상에서 덜어낸 것이다. 평수가 주니 임차료가 줄고, 임차료가 주니 골목 안쪽에도 들어간다. 대신 그 돈을 고객에게 돌려줬다. 손님은 앉을 자리를 내주고 싼 값과 매일 바꿔 마실 메뉴를 받았다. 2023년 매출 888억 원에 영업이익 367억 원, 이익률 40%를 넘겼다. 가맹본부 기준이라 셈법은 다르지만, 아메리카노를 세 배 넘는 값에 파는 1등의 영업이익률은 5%대였다.


현장에서 만난 정육식당은 그 상을 말 그대로 풀었다. 고깃집의 표준 원가는 주방 조리 인력과 반찬 가짓수와 홀 서비스다. 이 집은 셋을 다 걷어냈다. 손님이 직접 굽고, 반찬은 네 가지고, 고기는 벽의 진열장에서 직접 골라 온다. 그 돈은 전부 고기로 갔다. 손님은 상차림을 내주고 한 등급 위의 고기를 받았다. 접대하러 오는 손님은 오지 않는다. 대신 고기에만 돈을 내고 싶던 손님이 넘어온다. 잃은 것이 아니라 골라낸 것이다.


빼는 데도 순서가 있다. 아무 접시나 치우면 그냥 부실한 상이 된다.


첫째, 1등이 빼면 손실 처리가 되는 항목을 찾아라. 판정은 셋이다. 그 항목이 1등의 브랜드 약속에 문장으로 박혀 있는가. 계약에 묶여 있는가. 장부에 감가상각이 남아 있는가. 1등 커피 브랜드의 좌석은 셋 다 걸린다. 공간을 판다고 스무 해를 말해왔고, 임차는 면적으로 계약되고, 인테리어는 아직 상각 중이다.


둘째, 표준 이하로 낮출 항목을 정하라. 없애지는 않되 업계 평균의 절반만 쓴다. 반찬을 열두 가지에서 네 가지로 줄이면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다. 고기 등급을 한 단계 내리면 다음 주에 손님이 준다. 같은 절감액이라도 결과가 반대다.


셋째, 뺀 돈을 전부 가격으로 내리지 마라. 절반만 내리고 절반은 남긴다. 전부 내리면 그것은 박리다매이고, 박리다매는 규모를 가진 1등의 무기다. 앞의 커피 브랜드가 40%를 낸 것이 그 증거다. 값도 이기고 이익률도 이겼다.


넷째, 뺀 자리를 채워라. 업계 손익계산서에 없던 항목을 하나 신설하라. 앞의 정육식당은 홀에 숙성고를 들이고 등급 판정서를 벽에 붙였다. 고깃집 장부에 없던 항목이다. 없앤 것은 누구나 흉내 내지만, 새로 만든 항목은 흉내 내려면 자기 장부를 고쳐야 한다.


대형마트는 표준을 고수하는 자존심으로 버텼다. 그다음엔 온라인 채널을 사들이는 어정쩡한 수로 버텼다. 그러다 이마트가 방향을 바꿨다. 2025년 8월 모든 상품을 5,000원 이하로 묶은 5K프라이스를 내놨다. 두부와 콩나물이 400그램에 980원이다. 5K프라이스 제품은 1년 만에 4,000만 개가 팔렸다. 생활용품이 아니라 매일 사는 식품을 앞세운 것이 쿠팡이나 다이소와는 다른 점이다. 자기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만들고, 자기 장부 대신 다른 장부를 짰다. 골리앗이 2등의 방식으로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다윗은 돌 하나로 이겼다. 그런데 싸우러 나가기 전, 시내에서 다섯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의 골리앗은 쓰러지지 않는다. 반응할 뿐이다. 우리가 뺀 자리를 언젠가 흉내 내고, 그러면 우리의 값은 더는 새롭지 않다. 그때 두 번째 돌이 필요하다. 돌 하나는 전략이고, 주머니 속 다섯 개는 운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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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 진단을 위한 세 가지 시선]


CEO의 시선

1. 우리 상에 올라 있는 접시는 몇 개인가. 1등의 상을 보고 그대로 올린 접시는 그중 몇 개인가.

2. 지난 1년간 내가 내린 접시는 몇 개인가. 양을 줄인 것 말고 아예 내린 것으로 세라.

3. 내려서 생긴 돈은 어디로 갔는가. 값인가, 이익인가, 새 접시인가.


고객의 시선

1. 우리 손님이 가장 손을 안 대는 접시 하나는 무엇인가. 이름을 댈 수 있는가.

2. 1등에서 넘어온 손님은 무엇이 없어서 넘어왔는가. 그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는가.

3. 값이 비싸 안 오던 사람 중 우리에게 처음 온 사람은 몇 명인가.


1등 재무팀의 시선

1. 1등이 우리 값에 맞추면 잃는 기존 이익은 얼마인가.

2. 1등의 사업보고서에서 3년째 줄지 않는 판관비 항목은 무엇인가.

3. 1등이 그 항목을 내린다면 무엇을 부정하게 되는가.


[운영 탁월성을 갖춘 조직의 월요일 실천과제]

손님이 손도 안 대는 접시 하나를 찾아라


1단계(월요일 오전, 2시간) 우리 업종의 표준 상차림을 백지에 적는다. 접시 열 개면 충분하다. 1등의 사업보고서 판관비, 1등의 채용공고, 1등 매장과 제품의 물리적 구성. 세 곳을 보면 열 개는 나온다.

2단계(월요일 오후, 2시간) 열 개를 두 축에 놓는다. 원가가 크고 손님의 체감이 작은 칸. 거기 남는 것만 고른다. 보통 두세 개로 줄어든다.

3단계(주중) 남은 접시마다 세 번 묻는다. 1등의 약속에 박혀 있는가. 계약에 묶여 있는가. 상각이 남았는가. 둘 이상 걸린 접시 하나를 고른다. 그 접시에 우리가 1년간 쓰는 금액이 이번 분기의 숫자다. 벽에 붙여라. 그 숫자가 0이 되는 날, 우리는 다른 상을 차리는 집이 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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