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한 마음이 지나간 뒤 다시 해볼 마음이 돌아올 때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가능하면 실패하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잘될 것 같은 길을 알려주고 싶었고,
내가 먼저 해본 일이면 시행착오도 줄여주고 싶었다.
아이가 넘어질 것 같으면 손부터 내밀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커갈수록 내가 막아줄 수 없는 일이 많아졌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었고,
자신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기대했던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아이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일이 틀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속상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아이가 빨리 괜찮아졌으면 했다.
“다음에 다시 하면 되지.”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잖아.”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속상한 아이에게는 속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쉬우면 아쉬워해도 되고, 화가 나면 화를 내도 되었다.
당장 다시 해보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부모가 먼저 다음을 꺼내면
아이의 마음은 아직 그 자리에 있는데 나만 앞서 가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아이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그러다 보면 아이는 다시 무언가를 시작했다.
꼭 같은 것일 필요는 없었다.
아쉬웠던 일에 다시 도전하기도 했고,
전혀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 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다시 하느냐가 아니었다.
다시 해볼 마음이 생겼다는 것.
그 모습을 몇 번 보고 나서야 나도 조금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삶이 아니었다.
그런 삶을 내가 만들어줄 수도 없었다.
대신 한 번의 실패가 자기 자신에 대한 결론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이번에는 안 됐어.”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안 되는 사람이야.”
그건 다른 이야기다.
아이들이 실패하거나 실망할 때마다
나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꼭 가르칠 필요는 없었다.
실패해보고,
속상해하고,
잠시 멈춰보고,
그러다가 어느 날 다시 해보는 것.
그 시간을 아이가 직접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었다.
이제 나는 아이가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보다
실패한 뒤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
앞으로 아이가 만날 일을 내가 모두 막아줄 수는 없다.
그리고 아이의 삶이라면 내가 모두 막아서도 안 될 것이다.
넘어졌을 때 바로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잠시 앉아 있어도 된다.
속상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고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때 시작하면 된다.
다시 시작하는 데 꼭 거창한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한번 더 해볼까?”
그 마음이면 충분할 때가 있다.
나는 아이 대신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