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는 것은 언제나 옳을 거라고 확신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내가 정해주는 것이 많았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에 갈지, 무엇을 경험해볼지.
바카라을 골라주고 함께 갈 곳을 찾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보이면 관련된 바카라을 건네고,
직접 볼 수 있는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겼고,
하기 싫은 것도 분명해졌다.
자기 시간을 어떻게 쓸지,
무엇을 먼저 할지도 스스로 정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게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더 해주는 일이 아니라 조금씩 물러서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요즘 첫째는 자기가 해야 할 공부를 스스로 계획한다.
내가 보기에는 계획한 양이 조금 적어 보일 때도 있다.
‘이 정도만 해도 될까?’
조금 더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것도 같이 하면 좋을 텐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 머릿속에서는
어느새 아이의 것보다 훨씬 빡빡한 계획표 하나가 완성된다.
그럴 때 마음 속은 복잡하다.
“이것도 조금 더 해보는 건 어때?”
말 한마디만 보태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그 말을 한번 삼켜본다.
아이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만큼 먼저 해보게 둔다.
우리 집에는 완료 도장이 있다.
문제집 한 권을 끝내면 두껍든 얇든 상관없이 도장 다섯 개를 찍어준다.
도장이 모이면 주말에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아이는 문제집을 끝내고 받은 도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물론 보상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보니 도장에는 보상 말고도 하나가 더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한 권 끝냈다.’
시작한 것을 끝까지 해냈다는 표시.
아이에게는 그것도 꽤 좋은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했다.
부모가 계획을 더 잘 짜주면 아이가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조금 더 해두면 나중에 편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는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는 자기가 끝낼 수 있는 만큼을 계획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에게 변화가 생겼다.
자기가 정한 것을 끝까지 해보려고 했다.
한 권을 끝냈다.
나는 도장 다섯 개를 찍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는 다음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더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하나를 끝내고 나니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이 생긴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자신이 해낸 경험이 다음 목표를 스스로 높이고 있었다.
내가 아이의 목표를 높여주는 것보다
아이가 자기 힘으로 목표를 높이는 순간을 기다려보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물론 늘 이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계획을 너무 적게 세울 수도 있고,
반대로 욕심을 부렸다가 다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기가 선택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과 다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개입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자신은 아직 없다.
나도 부모니까.
말해주고 싶고,
조금 덜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고 싶고,
실패할 것 같으면 미리 잡아주고 싶다.
그래서 아이의 선택을 믿는 일은 내게 아직도 연습이다.
믿는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물으면 내 생각을 말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함께 방법을 찾는다.
부모가 바카라임져야 할 일은 당연히 부모가 바카라임진다.
다만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선택까지 내가 대신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가 자기 계획을 세웠다면 한번 해보게 하고,
자기가 선택한 일이라면 그 선택을 살아볼 시간을 주는 것.
잘되면 자기 선택으로 얻은 기쁨이 남을 것이다.
잘되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도 아이의 몫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오래 바라보려고 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물었다.
이제는 아이가 자기 시간을 어떻게 쓸지,
무엇을 목표로 삼을지도 조금씩 자기 몫으로 가져가고 있다.
아이가 커질수록 내가 물러서야 할 자리도 함께 커지는 것 같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큰 선택 앞에 설 것이다.
그때 내가 얼마나 잘 기다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또 마음이 복잡할 것이다.
내가 보기 좋은 길을 알려주고 싶을 것이고,
조금 덜 힘든 길로 데려가고 싶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기억하고 싶다.
믿는다는 것은 아이의 선택이 언제나 옳을 거라고 확신하는 일이 아니었다.
틀릴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고,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래도 자기 선택을 한번 살아볼 시간을 주는 것.
나는 지금도 그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