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을 오래 보았다

해본 뒤에도 다시 찾는 것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by트윙클쥬

나는 첫째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었으면 했다.

피아노를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태권도 학원도 가지 않던 아이에게

피아노 학원은 더더욱 내키지 않는 곳이었다.


“피아노는 별로 배우고 싶지 않아.”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악기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학교 방과후 수업에 기타가 있었다.

피아노가 싫다면 기타는 어떨까 싶었다.


“기타 한번 배워볼래?”

대답은 단호했다.


“싫어.”

아이가 하고 싶은 방과후 수업은 따로 있었다.

지능로봇과 생명과학.

딱 그것만 하고 싶다고 했다.


기다렸다.

혹시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하염없이 기다렸다.

당연히 하고싶은 마음은 안 생겼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내가 배우기로 했다.

기타를 하나 샀다.

그리고 아이에게 아주 중요한 말을 했다.


“이거 엄마 거야. 절대 만지지 마.”

작전은 통했다.

엄마가 기타를 샀는데 자기 것은 아니라고 하니 슬슬 관심이 생겼다.


그러더니 자기도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자기가 기타를 배우면 엄마 기타를 자기에게 달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야.

오케이. 배운다면야.

그렇게 온몸으로 기타를 거부하던 첫째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둘째에게도 슬쩍 기타 이야기를 꺼냈다.

둘째는 이미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다.

피아노는 그대로 하면서 기타도 한번 배워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악동뮤지션 이야기도 했다.

남매가 함께 기타를 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둘째도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첫째에게 말했다.


“그럼 이 기타는 둘째 줘야겠네.”

그랬더니 첫째가 다시 기타를 더 해보겠다고 했다.

동생이 기타를 배운다는 말이 첫째에게도 작은 자극이 된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남매가 함께 기타를 배웠다.

둘 다 기타를 배우는 시간을 즐겼다.

학예회가 있을 때면 첫째도 둘째도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섰다.

배운 곡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같은 악기를 배우고 같은 무대에도 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아이가 더 좋아하는 것은 조금씩 달라졌다.


첫째는 달라졌다.

그렇게 하기 싫다던 아이가 학예회 때마다 기타를 쳤다.

무대에 올라 연주했고, 기타는 어느새 아이가 즐기는 것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갖고 싶은 선물을 물었더니 말했다.

“일렉기타.”

처음 기타를 권했을 때 온몸으로 싫다고 하던 아이가 졸업선물로 일렉기타를 골랐다.

웃음이 났다.

엄마 기타를 건드리지 말라던 그 작전이 여기까지 올 줄은 나도 몰랐다.


둘째도 기타를 즐겁게 배웠고 학예회 때 기타를 쳤다.

하지만 피아노와 기타를 함께 해보면서

자신이 어느 악기를 더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둘째의 마음은 피아노 쪽이었다.

그렇다고 기타를 배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기타도 충분히 즐겨보았고, 그 시간을 지나 자기 마음이 더 가는 곳도 알게 되었으니까.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하면 부모는 자꾸 그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잘하는지.

계속 배워야 하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나도 그랬다.

그런데 아이들을 보다 보니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꼭 같지 않았다.

잘해서 칭찬을 받아도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고,

아직 서툴러도 자꾸 손이 가는 것이 있었다.


첫째에게 기타는 자꾸 다시 손이 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싫다고 했지만 자기 마음으로 시작한 뒤에는 달랐다.

계속 배우고 싶어 했고, 새로운 기타도 갖고 싶어 했다.


둘째는 기타도 즐겼지만 다시 마음이 향한 곳은 피아노였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잘하는지는 결과가 알려주기도 했지만,

좋아하는지는 아이가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알려주었다.


첫째는 기타로 돌아왔고, 둘째는 피아노로 돌아왔다.


둘 다 직접 해본 뒤에야 자기 마음이 더 오래 머무는 곳을 알게 된 셈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처음부터 정확히 알아맞힌 엄마가 아니었다.


첫째에게 피아노를 권했고, 거절당했다.

기타를 권했고, 또 거절당했다.

기다려도 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기타를 사서


“엄마 거야. 절대 만지지 마.”

라는 조금 치사한 작전까지 썼다.


그렇게 문 하나를 슬쩍 열어놓았다.

그런데 그다음은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첫째는 뒤늦게 기타를 좋아하게 되었고,

둘째는 피아노와 기타를 모두 경험해본 뒤 피아노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아이에게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해준다는 것은

그중 하나를 반드시 오래 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직접 해보면서 자기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갈 기회를 주는 일이었다.


나는 문을 열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문 안으로 들어갈지,

얼마나 머물지,

다시 나와 다른 곳으로 갈지는 아이가 정할 일이었다.


문은 엄마가 슬쩍 열었지만,

그다음 길은 아이들이 서로 다르게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