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했던 시간을 없던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둘째는 오래 준비했다.
주제를 고민하고,
질문에서 시작해 자료를 찾아보고,
직접 양팔저울을 빌려 비교하며 실험했다.
원고를 쓰고 영상을 촬영했고,
바쁜 일정을 쪼개어 사전특강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최우수상을 받고 싶다며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준비했다.
하지만 발표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학교의 행정 실수와 전달 과정의 오류가 겹치면서
제출한 영상은 접수되지 않았고,
사전특강에 참여했던 기록조차 남지 않았다.
결과에는 단 한 줄.
'예선 불참.'
그 순간 화가 났다.
아이의 잘못이 아닌데도 아이의 노력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속상했다.
민원을 넣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하지만 나는 그 담당 선생님이 얼마나 아이들을 위해 애써 왔는지 알고 있었다.
한 학기 동안 둘째를 응원하며 여러 대회를 함께 준비해 주셨고, 누구보다 미안해하셨다.
잘못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 한 사람에게만 바카라임을 돌리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신 나는 교육청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로서 단 한 가지는 꼭 말하고 싶었다.
"사전특강만이라도 참여한 기록으로 인정해 주세요."
돌아온 대답은 규정상 어렵다는 말이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화는 둘째를 위한 것이었다.
엄마는 네 노력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전화를 끊고, 우리는 함께 화를 냈다.
"엄마도 정말 화가 난다."
"이건 정말 억울한 일이다."
둘째는 나중에 조용히 말했다.
"엄마가 같이 화내주니까 마음이 풀렸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알았다.
부모는 언제나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아이의 감정만큼은 혼자 남겨 두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을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은 생길 수 있다.
그 경험을 일부러 시킬 필요는 없지만,
내 품 안에 있을 때 찾아온 억울함이라면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는지 함께 보여 주고 싶었다.
화가 나는 것은 잘못된 감정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너무도 건강한 감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감정을 누르기보다,
공감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결국 우리는 내년을 약속했다.
최우수상을 향한 꿈은 잠시 미뤄졌지만,
둘째의 노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록에는 '불참'이라고 남았지만,
우리 가족의 기억에는
끝까지 준비했던 아이로 남아 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부모는 아이 대신 세상을 공평하게 만들 수는 없다.
억울한 일을 모두 막아 줄 수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할 수 있다.
아이가 흘린 노력을 끝까지 기억해 주는 사람.
세상이 알아주지 못한 날에도
“엄마는 알고 있어.”
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날 내가 지켜주고 싶었던 것은
상장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