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지 않아 적기 시작한 시간이 어느새 나를 돌아보게 했다
PART 5. 아이를 키우며 부모도 자랐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종종 기록을 남겼다.
대단한 것을 기록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오늘 아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디에 다녀왔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사진을 찍고 짧은 글을 붙였다.
아이들과 보낸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서 남겨두고 싶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짧은 기록을 훗날 아이들과 다시 보게 될 줄은.
아이들이 조금 자란 뒤 예전 사진과 글을 함께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은 자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재미있어했다.
“내가 진짜 이랬어?”
“이때 여기 갔었어?”
자기는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사진과 글로 만나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나도 잊고 있었던 일이 많았다.
아이의 표정 하나를 보다가 그날의 일이 떠오르기도 했고,
내가 써놓은 짧은 문장을 읽다가 그때의 내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 기록에는 어린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도 있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한동안 뜸했던 기록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릴 때와 조금 달랐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질문을 하는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놓치지 않고 보고 싶었다.
그런데 기록을 이어가다 보니 이상하게 아이보다 내가 더 많이 보일 때가 있었다.
아이의 계획을 보며 조금 더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나.
아이가 속상해하면 빨리 괜찮게 해주고 싶었던 나.
아이가 물으면 답을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
그러다가 기다려본 나.
말해주고 싶은 것을 한번 삼켜본 나.
아이의 선택을 지켜본 나.
기록에는 아이의 변화만 남아 있지 않았다.
아이를 바라보는 내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잘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록은 가끔 내 기억을 바로잡아주기도 했다.
지금의 생각으로 과거를 좋게 포장하고 싶을 때,
그때 써둔 글에는 당시의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즐거웠던 날도 있었고 지쳤던 날도 있었다.
잘했다고 생각한 선택도 있었고,
지금 돌아보면 조금 아쉬운 날도 있었다.
그래서 기록이 좋았다.
완벽한 엄마의 이야기를 만들어주지 않아서.
그때의 우리를 그때 모습 그대로 남겨주어서.
예전에 남긴 기록 중에는 지금 읽으면 웃음이 나는 문장도 있다.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나는 이렇게 적었다.
“알차고 야무지게 엄마와 둘만의 데이트 완료.”
그 문장에는 그때의 내가 있다.
아이 둘을 키우며 하루를 보내고,
잠깐이라도 한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만들고 나면 그것이 그렇게 뿌듯했던 엄마.
그 엄마도 나였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 기록했다.
그런데 오래 적다 보니 나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 때문에 처음 가본 곳이 있었고,
아이 덕분에 읽은 바카라이 있었고,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내가 어떤 부모인지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이야기를 조금 더 길게 써보고 싶어졌다.
잘 키운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잊어버리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지나온 시간을 한번 천천히 돌아보고 싶었다.
아이를 기록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옆에서 살아온 나도 함께 기록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