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고 먹고 기다리고 양보한 시간이 쌓여 우리는 서로를 알아갔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여행 취향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오래 걷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빨리 쉬고 싶어 했다.
한 사람은 이것을 꼭 보고 싶은데 다른 사람은 별 관심이 없을 때도 있었다.
먹고 싶은 것도 달랐다.
여행을 준비할 때는 모두 즐거울 것 같지만 막상 떠나보면 가족의 차이가 평소보다 더 잘 보인다.
피곤하면 참을성도 줄어든다.
“언제 가?”
“조금만 더 보면 안 돼?”
“나 배고파.”
“나는 이거 보고 싶은데.”
여행은 가족사진처럼 늘 웃는 얼굴로만 남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러 번 함께 다니다 보니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씩 늘었다.
누가 어떤 장소에서 오래 머무는지,
무엇을 먹으면 좋아하는지,
언제쯤 힘들어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취향도 여행에서 더 잘 보였다.
무엇을 만나면 눈빛이 달라지는지,
무엇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지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음 여행에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것이 조금씩 들어갔다.
내가 꼭 보고 싶은 곳 하나.
네가 가고 싶은 곳 하나.
누군가 오래 보고 싶어 하면 다른 사람은 조금 기다렸다.
내가 별 관심 없는 곳이라도 가족이 좋아하면 함께 가보았다.
그렇게 우리 여행에는 서로의 취향이 조금씩 섞였다.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는 것도 비슷했다.
나는 어릴 때 영화 보는 일을 꽤 사치스럽게 생각했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고 나 자신에게도 엄격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달랐다.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함께 보자고 했고, 나는 아이들을 따라 영화관에 갔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함께 갔다.
그런데 같이 보다 보니 나도 재미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등장인물 이야기를 하고,
다음 편을 기다리고,
서로 좋아하는 장면을 이야기했다.
어느새 영화도 우리 가족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아이의 취향을 따라갔다가 그것이 가족의 취향이 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가족이면 당연히 서로를 잘 아는 줄 알았다.
매일 같은 집에서 살고 함께 밥을 먹으니까.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서로를 알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싫은 것도 드러내고,
기다리고,
때로는 양보하는 시간.
여행을 가면 그런 모습이 더 잘 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도 여행이었고,
내가 원하지 않았던 곳에 함께 가주는 것도 여행이었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알게 되었다.
가족이라서 서로를 잘 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내며 서로를 알아온 것이었다.
지금도 우리 가족의 취향이 모두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이걸 보면 누가 좋아하겠구나.
여기에 가면 누가 오래 있겠구나.
이 영화는 함께 보면 좋겠구나.
서로를 안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함께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족도 그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맞춰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