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보다 해보는 즐거움을 먼저 알았으면 했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대회와 활동을 만났다.
처음에는 나도 결과가 궁금했다.
상을 받으면 기뻤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함께 축하했다.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처음 지역 본선에 나갔을 때 첫째는 잔뜩 기대했다.
“엄마, 나 본선에서 금상 타서 전국대회 꼭 나갈래.
전국대회에서 잘하면 세계대회도 가는 건가?”
아이의 마음은 벌써 세계대회까지 가 있었다.
그 말이 귀여우면서도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대회에 나가보면 늘 자신보다 잘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어도 지역 본선에 가면 또 다른 벽을 만났다.
전국대회에 가려면 금상을 받아야 했지만 은상을 받아 더 나아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매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했다.
아이의 실망을 보고 있으면 부모의 마음도 흔들린다.
조금 더 준비시켜볼까.
전문적으로 배우면 다음에는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대회에는 훨씬 오래 준비한 아이들도 있었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것도 각 가정과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때 다른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에도
나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직접 만나보는 경험.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열심히 했다고 언제나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런 경험도 아이가 직접 겪어보았으면 했다.
그래서 대회를 결과로만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다.
상을 받았는지보다 무엇을 해봤는지를 물었다.
준비하면서 무엇이 재미있었는지,
다음에 다시 한다면 무엇을 바꿔보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활동은 한번 해본 뒤 다시 하지 않았다.
어떤 것은 결과가 아쉬웠는데도 또 하고 싶어 했다.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보기에는 재미있어 보여도 막상 해보면 나와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어려워 보여 망설였는데 해보니 좋아질 수도 있었다.
경험은 잘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데도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겪을 실패를
내가 모두 피하게 해줄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대신 실패한 뒤에 자기 마음을 한번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했다.
‘상을 못 받았으니 나는 못해.’
거기에서 끝나는 대신,
‘그래도 재미있었나?’
‘다시 해보고 싶은가?’
그걸 생각해봤으면 했다.
결과가 좋으면 기뻐했고, 아쉬우면 함께 아쉬워했다.
속상해하는 아이에게 굳이 좋은 경험이었다고 서둘러 말하지도 않았다.
속상하면 잠시 속상해해도 괜찮았다.
그러고 나면 아이는 또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조금씩 배웠다.
아이에게 성공하는 경험만 줄 필요는 없었다.
한번 해보고, 기대하고, 때로는 실패하고, 그래도 다시 선택해보는 것.
그 과정까지 아이의 경험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결과를 보기 전에 먼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