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길을 동생에게 권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길보다 이 아이가 좋아하는 길을 바라보기로 했다

by트윙클쥬

첫째를 키우며 이미 한번 가본 길이 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관련된 바카라을 찾아주고,

해보고 싶은 활동이 생기면 함께 방법을 알아보았다.


첫째에게 잘 맞았던 활동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둘째를 키울 때는 오히려 조심했다.


내가 아는 길이라는 이유로 그 길을 권하고 싶지는 않았다.


첫째가 좋아했고 좋은 경험을 했으니

둘째에게도 한번 해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쉬웠을 것이다.

형제가 같은 활동을 하면 부모 입장에서도 익숙하고 편한 점이 많다.


하지만 둘째를 바라보면 첫째와는 다른 아이가 보였다.

둘째는 동물을 좋아했고 이야기를 좋아했다.

도서관에 가면 첫째와는 또 다른 바카라에 마음을 두었다.

그래서 둘째와 도서관 데이트를 하며

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천천히 알아갔다.


첫째가 걸었던 길을 보여주며


“오빠도 했으니 너도 한번 해봐.”

라고 하기보다,


“너는 무엇을 해보고 싶어?”

라고 묻고 싶었다.


둘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취학 전 천 권 읽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열 권의 추천바카라이 한 세트로 묶여 있었고, 그런 세트가 모두 백 개였다.

한 세트를 읽고 나면 도장을 찍고, 다시 다음 열 권을 읽었다.

그렇게 천 권까지 가는 긴 독서였다.


천 권이라는 숫자만 놓고 보면 일곱 살 아이에게 꽤 큰 목표였다.

하지만 둘째에게 바카라 읽기는 그 목표를 위해 새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많은 바카라을 자연스럽게 만나왔고

바카라을 읽는 일이 이미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열 권을 읽고 도장 하나.

다시 열 권을 읽고 도장 하나.

그렇게 하나씩 이어갔다.

한꺼번에 천 권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눈앞의 바카라을 읽고, 다음 세트로 넘어갔다.


오랫동안 이어온 바카라 읽기의 힘으로

둘째는 결국 천 권 읽기를 마쳤고 도서관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물론 나도 기뻤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게 더 오래 남은 것은

천 권이라는 숫자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바카라을 읽는 일은 목표를 채우기 위해 새로 시작한 일이 아니라,

이미 좋아하던 일상의 연장이었다.

아이가 자기 방식으로 좋아해온 시간이 쌓여

어느 순간 스스로 긴 목표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있었다.


첫째와 둘째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두 아이에게 같은 경험을 만들어주려고 애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첫째가 했던 활동을 둘째에게 일부러 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니다.

둘째도 궁금해하고 해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볼 수 있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누구의 선택으로 시작하느냐.

오빠가 했으니까가 아니라 내가 해보고 싶어서.

엄마가 좋다고 하니까가 아니라 내가 궁금해서.

그 시작점을 아이에게 남겨주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에게도 경험이 쌓인다.

첫째 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 함께 헤맸지만 둘째 때는 아는 것이 많아졌다.


어떤 바카라을 좋아했는지,

어떤 활동을 즐겼는지,

무엇을 해봤을 때 좋았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 경험은 분명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한번 경험해봤다는 이유로

둘째의 답까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둘째 앞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답을 조금 뒤로 미뤄두려고 했다.

동물을 좋아하면 그 세계를 함께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좋아하면 충분히 읽게 해주었다.

아이가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때 함께 방법을 찾아보았다.


첫째에게 했던 것을 똑같이 해주지 않는다고 둘째에게 덜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다르게 해주는 것이 그 아이를 더 잘 바라보는 방법일 때도 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이 아이의 마음인지,

아니면 부모인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길인지.


둘째에게 첫째의 길을 그대로 권하지 않았던 것은

첫째가 걸었던 길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기에 그대로 권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첫째에게 자기 길을 발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둘째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집에서 출발했다고 같은 길을 걸을 필요는 없었다.

한 아이가 먼저 걸어간 길이 있다고 해서

다음 아이가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첫째의 길은 첫째의 것이고,
둘째의 길은 둘째의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먼저 길을 정해주는 것보다

아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바라보고,

필요할 때 함께 걸어주는 일이었다.


오빠의 길을 동생에게 권하지 않았던 것은
그 길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둘째에게도 자기 길을 발견할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