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 민트라(Myntra)
샌들 한 켤레만 사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남편이 슬쩍 거든다. "자기 옷 사는 김에 내 것도 하나 주문하자."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그러자 또 한마디가 붙는다. "11월에 디왈리인데, 그때 새 옷 입어야 하니까 그것도 지금 사두자." 인도에서 디왈리는 헌 옷을 입지 않는 날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옷 사면 거기 맞출 액세서리도 있어야지." "인도 면이 좋으니까 온 김에 티셔츠랑 속옷도 사자."
정신을 차려 보니 장바구니에는 샌들 하나, 속옷 여러 개, 리바이스 면 티셔츠 다섯 장, 원피스 한 벌, 쿠르타 두 벌, 그리고 액세서리 두어 개까지 그득했다. 민트라(Myntra)는 원래 이런 앱이다. 한 번 들어가면 절대 하나만 사고 나올 수 없는 곳이다. 마치 개미지옥과도 같은 앱이랄까.
인도판 쉬인, 그런데 좀 다른
민트라(Myntra)를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북미에 쉬인(SHEIN)이 있다면, 인도에는 민트라가 있다는 말이 가장 와닿을 것 같다. 옷과 신발은 기본이고 홈 데코, 뷰티, 잡화까지 온갖 것을 다 파는 '만물상'이라는 점에서 둘은 꼭 닮았다.
카테고리를 열어 보면 정말 끝이 없다. 남성·여성·키즈 의류는 물론이고, 침구부터 커튼, 주방용품, 심지어 힌두교 의식에 쓰는 푸자(Pooja) 용품까지 있다. 뷰티 탭에는 익숙한 화장품 브랜드가 즐비하고, 스마트워치와 헤드폰 같은 가전도 판다.
그런데 쓰다 보면 쉬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보인다. 쉬인이 이름 없는 초저가 자체 상품 위주라면, 민트라는 오히려 편집숍이나 백화점에 가깝다.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해외 브랜드와 인도 패션 브랜드들이 정식 입점해 있고 '100% 정품'을 내세운다. 쉬인의 문어발 확장성과 백화점의 라인업을 합쳐 놓은 듯하다.
이 차이는 옷을 입어 보면 더 확실해진다. 사실 나도 캐나다에서 처음 몇 번은 쉬인을 썼다. 그러나 이제는 거기서 옷을 사지 않는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몇 번 빨면 옷이 축 늘어지거나 후줄근해져 오래 못 입겠더라. 반면 민트라에서 산 옷은 가격은 저렴한데도 질이 좋아 두고두고 입는다.
대체 이 차이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애초에 사업 모델이 달랐다. 최대한 싸고 빠르게 찍어내는 데 초점을 둔 초저가 패스트패션과, 정식 브랜드 제품을 세일가에 파는 곳. 시작점이 다르니 손에 남는 물건도 다를 수밖에. 이유가 무엇이든, 내 옷장은 어느새 인도에서 사 온 옷들로 채워지고 있다.
옷 쇼핑은 인도가 최고
민트라의 가장 큰 매력을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가격이다. 앞서 잔뜩 담은 장바구니, 그 결제 금액이 얼마였을까. 샌들 하나, 속옷 여러 개, 리바이스 면 티셔츠 다섯 장, 원피스 한 벌, 쿠르타 두 벌, 액세서리까지 전부 합쳐서 배송비 포함 13만 원 정도였다. 가격 면에선 정말이지 따라올 자가 없다.
사실 우리 부부는 인도에 올 때마다 옷을 잔뜩 사서 돌아간다. 캐나다는 공산품 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인도 옷은 질이 좋으면서도 값이 싸니, 이곳에서 옷장을 채워 가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이다. 특히 면 종류가 그렇다. 인도는 중국에 이은 세계 2위의 면화 생산국이자 손꼽히는 면직물 수출국이니, 물건을 원산지에서 곧장 사는 셈이라 품질도 가격도 만족스러울 수밖에.
흥미로운 건 인도 브랜드만 싼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글로벌 브랜드도 같은 제품을 인도에서 사면 최소 만 원, 많게는 이만 원가량 저렴하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현지에서 만들어 파는 물량이 많고 그만큼 관세나 유통 비용 부담이 덜한 덕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어느 쪽이든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저 반가운 일이다.
전통 복식과 최신 유행이 한자리에
민트라가 또 흥미로운 건, 서양의 최신 복식과 인도의 오랜 전통 의상을 한 화면에서 나란히 취급한다는 점이다. 한쪽에는 리바이스 청바지와 자라풍 원피스가 걸려 있고, 다른 한쪽에는 사리, 쿠르타, 렝가, 셔르와니 같은 인도 전통 의상이 카테고리별로 촘촘히 나뉘어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오직 인도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쇼핑몰에서 한복과 서양 옷을 굳이 나란히 팔지는 않는다. 왜일까? 인도의 전통 의상은 특별한 날에만 꺼내 입는 박제된 예복이 아니라 지금도 매일 입는 일상복이기 때문이다. '쿠르타'는 남녀가 함께 입는 무릎 길이의 튜닉을 말하는데, 도시든 시골이든 남녀노소가 청바지처럼 매일 걸치는 실사용 의류다.
인도에는 '에스닉 웨어(ethnic wear)'라는 개념이 따로 있어서, 전통에서 출발했지만 현대적으로 변형된 옷을 일상에서 폭넓게 소화한다. 그러니 이들에게 전통 의상은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계절마다 조용히 업데이트되는 살아 있는 패션이고, 서양 옷 옆에 나란히 놓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한복이 걸어온 길과 사리가 걸어온 길이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로웠다.
한국은 역시 셔츠의 나라
이 인도색 짙은 앱을 구경하다 반가운 것도 발견했다. 한국 스타일 옷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셔츠가 많다. 어떤 남성복은 아예 상품명에 '코리안(Korean)'을 붙여 "오버사이즈 코리안 셔츠"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역시 "시크한" 셔츠의 나라인가 보다.
한국 패션의 인기는 상품 몇 개에 그치지 않는다. 민트라는 아예 블로그에 한국 스타일 코디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따로 올려 둘 정도로, 이를 특별히 다루고 있었다. 그곳에 정리된, 인도에서 바라본 한국 패션의 특징은 이랬다. 모노톤의 셔츠나 재킷을 즐겨 입고, 운동복마저 스타일리시하게 소화하는 것. K-드라마와 K-팝의 인기를 타고 한국 패션이 이곳까지 흘러든 것이다.
한 번 들어가면 옷 몇 벌은 기본이고, 커튼이며 립스틱이며 온갖 것을 담아 나오게 만드는 앱. 인도의 오랜 전통이 담긴 에스닉 웨어와 한국발 최신 트렌드가 한 화면에 나란히 놓이는 앱. 그래서일까, 민트라를 구경하다 보면 물건을 넘어 요즘 인도의 생활 풍경까지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 참조 1
※ 참조 2
https://blog.myntra.com/10-chic-korean-outfit-ideas-for-a-trendy-l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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