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안의 작은 마을,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
우리는 벵갈루루에 따로 집이 없다. 그래서 올 때마다 시아버님이 혼자 지내시는 아파트에 잠시 신세를 지는데, 바로 옆 동에는 남편의 형님 부부가 산다. 형님네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온 것도 친구들의 추천 덕분이었다. 친구 그룹의 절반쯤이 이 단지에 모여 산다.
그러니까 이곳은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을 부르는 곳이다. 저녁 산바카라길에는 형님네 친구와 마주치고, 놀이터에서 뛰놀던 그 집 아이가 손을 흔든다. 한 단지 안에 가족이 있고, 가족의 친구가 있고, 친구의 친구가 있다. 아파트라기보다는 담장을 두른 작은 마을에 가깝다.
그 마을에 들어오려면 문을 하나 지나야 한다. 입구의 게이트(Gate)다. 마을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매일 드나드는 평범한 문이지만, 처음 온 사람에게는 꽤 깐깐한 문이다. 이곳을 오간 지 다섯 해째, 어느새 나도 그 문을 열어 주는 쪽이 됐다.
담장 안의 작은 동네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 인도 대도시 중산층에서는 꽤 보편적인 주거 형태이다. 말 그대로 담장으로 둘러싸인 주거 단지인데, 입구에는 커다란 대문과 24시간 자리를 지키는 경비원이 있다. 겉보기에는 한국 아파트 단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문의 무게랄까. 손님도, 택시도, 배달도, 집안일을 도와주는 분들도 이 문을 지날 때마다 확인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
그 확인을 맡는 게 마이게이트(MyGate)라는 앱이다. 벵갈루루에서 나온 앱으로, 회사 쪽 설명으로는 2023년 기준 약 2만 5천 개 단지, 350만 가구가 쓴다고 한다. 델리, 뭄바이, 푸네 같은 도시에서도 쓰이고, 비슷한 경쟁 앱도 여럿 있다.
방식은 이렇다. 낯선 누군가 게이트에 도착하면 경비원이 그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고 앱으로 세대주를 호출한다. 그러면 내 휴대폰에 알림이 뜬다. 누가, 어디서 왔는지, 얼굴 사진과 이름까지. 그 아래에는 버튼이 세 개 있다. 출입 거절, 게이트에 두고 가기, 승인. 내가 승인을 누르지 않으면 그 사람은 단지 안으로 한 발짝도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정해진 대사가 하나 있다. 식료품이든 음식이든 주문을 완료하고 나면 남편이 꼭 한마디 얹는다. "마이게이트 출입 승인 꼭 해." 승인을 깜빡하는 순간, 따끈한 저녁은 게이트 앞에서 식어 간다. 아차!
마치 만물상 같은 앱
처음엔 단순한 출입 관리 앱인 줄 알았는데, 쓰다 보니 별게 다 들어 있다.
출입 승인: 손님, 택시, 배달, 방문 도우미를 미리 허용해 둘 수 있다. 문 앞에 왔을 때 그때그때 승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며칠 동안, 얼마나 자주, 어느 배달 업체까지 허용할지 미리 정해 둘 수도 있다.
오늘의 출입 기록: 누가 몇 시에 들어왔는지, 정확한 시간과 출입 정보가 출입자 사진과 함께 뜬다.
공지 확인: 단수, 정전, 방역 같은 단지 소식이 여기로 온다.
공과금과 관리비 납부
경비원 호출, 차량 호출: 외출할 일이 있으면 이 앱으로도 택시 혹은 툭툭이를 부를 수 있다.
수리 요청: 전기가 나가도, 주방 가전이 고장 나도, 집에 문제가 생겨도 앱으로 요청하면 사람이 온다.
중고 거래: 이웃끼리 자전거를 사고, 안 쓰는 소파를 팔고, 물건을 바꾼다. 단지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고 당근마켓을 하는 셈이다. 같은 단지 주민끼리만 거래하니 가짜 매물이나 스팸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다림질 요청: 여기서는 도비 왈라(Dhobi wallah)라고 부르더라. 앱으로 호출을 받은 그에게 옷을 한아름 건네주면, 몇 시간 만에 깔끔하게 다림질되고 정갈하게 개어진 옷이 문 앞으로 배달된다.
게이티드 커뮤니티라서 가능한 것들
입주민끼리만 쓰는 공간도 많다. 아이들 놀이터, 헬스장, 수영장, 그리고 행사를 열 수 있는 파티룸 겸 강당까지. 한번은 그곳에서 열린 합동 생일파티를 구경하러 간 적이 있다. 단지에 사는 아이들 열 명쯤이 한꺼번에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아이들은 선물을 주고받고, 엄마 아빠들은 한쪽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이웃끼리 알고 지내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아침에 주차장에 내려가면 차가 반짝인다. 매일 누군가 차를 닦고 먼지를 털어 주기 때문이다. 단지 화단도 늘 말끔하게 손질되어 있다. 뭔가 고장 나면 앱 하나로 사람이 온다. 음식 배달은 물론이요, 청소와 각종 집안일, 장보기까지 집에서 다 해결된다. 심지어 혈액 검사를 하려고 해도 간호사가 집으로 와서 피를 뽑아 가고, 손톱만 한 유심 칩 하나를 사려고 해도 통신사 직원이 문 앞까지 찾아온다.
처음 인도에 왔을 때 시댁 식구들이 농담처럼 한 말이 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에 살면 왕이나 다름없다고. 인도에서 현명하게 사는 법은 집 안에 느긋하게 늘어져서 모든 걸 배달로 시키고, 필요한 사람은 문 앞으로 부르는 거라고. 이쯤 되니 이방인으로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인도에는 이런 문이 이렇게 많을까. 그리고 이 왕의 생활은 누구의 손으로 돌아가고 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