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물 망고를 찾아 떠나다

길 자체가 거대한 시장, 벵갈루루의 노점과 가게

by금파랑

망고 철이 끝나 간다. 인도에 사는 사람에게 이 말은 생각보다 묵직하다. 여름 내내 시장을 노랗게 물들이던 그 열매가 슬슬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 '아, 올해도 다 갔구나' 하는 계절의 감각이 밀려온다고 한다. 올여름에 잠시 인도를 방문한 이유에도 망고가 한몫했다. "이번 시즌에 가면 망고 먹을 수 있어." 라는 말로 남편이 나를 꼬드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고를 사러 나섰다. 그런데 늘 가던 과일 노점에 망고가 없다. 철이 지나서 물건이 안 들어왔단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가게를 찾아 골목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망고를 찾으러 떠난 소소한 원정에서, 늘 무심하게 지나쳐만 갔던 동네 노점을 자세히 엿보기로 했다. 이곳은 길 자체가 이미 거대한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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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위에 차린 가게


인도의 노점은 그 형태가 참 다양하다. 큰길로 접어들자마자 보이는 것은 카르나타카(Karnataka)주의 국민 유업 '난디니(Nandini)'의 파란 부스. 우유와 빵, 과자를 파는 이 부스는 이곳에 늘 붙박이처럼 서 있다. 하루에도 몇 컵씩 짜이를 끓여 마시는 시아버님의 단골 우유 가게다. 그 옆으로는 나무 손수레들이 줄지어 있는데, 매일 먹는 간단한 야채 등을 팔곤 한다.


옥수수 노점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껍질을 벗겨 숯불에 구워 파는, 일종의 스트리트 푸드다. 자전거 바퀴 두 개에 나무판을 얹은 게 전부인, 지극히 단출한 이동식 좌판. 어느 것 하나 포장도 없이 맨몸으로 뙤약볕과 흙먼지를 견디고 있다.


어떤 상인은 아예 트럭을 통째로 가게로 쓴다. 파란 컨테이너 트럭 짐칸을 초록 코코넛으로 가득 채우고, 그 앞엔 손님이 마시고 버린 코코넛 껍질이 산처럼 쌓여 있다. 붙박이 부스부터 손수레와 트럭까지, 정착의 정도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접고 떠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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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향으로 유혹하는 노점


인도 노점의 진짜 매력은 색이다. 노랑과 주황, 빨강과 연두. 이곳의 과일은 수북이 쌓여 저마다의 색을 마음껏 뽐낸다. 형광에 가까운 분홍빛 용과가 수레 한가득 봉긋하게 쌓여 있다. 한켠에는 초록 그물망에 담긴 모삼비(mosambi)가 또 산더미다. 스위트라임이라 불리는 이 부드럽고 은은한 맛을 가진 과일은 즙을 내서 주스로 마신다고 한다.


또한 눈보다도 코가 먼저 붙잡히는 곳이기도 하다. 라임을 수북이 쌓아 둔 수레 옆을 스쳐 지나기만 해도, 코끝으로 훅 찌르는 그 시트러스 향이 여간 유혹적인 게 아니다. 어떤 값비싼 향수도 흉내 내지 못할 상큼함을 뒤로하고 걷다 보면, 한껏 익은 잭푸르트의 달콤한 냄새에 발걸음이 또다시 멈칫한다.


용과 옆에 놓인 초록 잎사귀 다발, 망고잎은 인도에서 엄연한 상품이다. 실에 잎을 줄줄이 꿰어 만든 '토란(toran)'을 현관 문틀에 걸어 두면 복이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번 집들이(그리하 프라베시) 때도 보았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금잔화(메리골드) 화환까지. 주황과 노랑의 꽃목걸이는 노점의 파라솔 아래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형형색색의 과일들과 파란 방수포, 빨간 파라솔, 노란 오토릭샤. 인도의 골목은 통째로 색의 잔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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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찾은 망고


한참을 헤매도 망고는 보이지 않았다. 포기하고 돌아설까 하던 그때, 길 건너편에 제법 번듯한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간판과 지붕을 갖춘 어엿한 청과물 가게였다. 벽에는 'Eat your Veggies', 'Love is a fruit in season at all times' 같은 문구가 큼직하게 붙어 있었다. 나름의 브랜딩까지 갖춘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노점과는 물량도 종류도 차원이 달랐다. 크레이트째 쌓인 채소들은 낯선 것투성이다. 노란 수박처럼 생겼지만 알고 보면 익혀 먹는 채소 소더카이, 생으로 파는 초록 파파야(채소처럼 무쳐 먹기도 한단다), 가느다란 롱빈, 한국보다 작고 타원형에 가까운 모양의 수박부터 시작해서 친숙한 양배추, 감자, 토마토, 희끄무레한 빛깔의 오이도 찾아볼 수 있다. 인도 요리에 빠지지 않는 커리잎과 고수 다발은 물론이고.


마침내 신문지를 곱게 깐 상자 안에서 그토록 찾던 것을 발견했다. 노랗게 익다 만, 검은 반점이 슬쩍 앉은 통통한 망고. 한여름의 탐스러운 샛노란 빛의 자태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었다. 심지어 남편보다 내가 더 빠르게 찾아냈다. 인도 출신이 맞냐며 능청스레 그를 놀리곤, 두 알을 골라 냉큼 계산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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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물 가게에서 값을 매기는 방식은 거리 노점과 다를 바 없었다. 인도는 과일이든 채소든 저울에 올려 그램 단위로 무게를 달아 값을 매긴다. 결제는 역시나 페이티엠(PayTM). 이 온라인카지노북에서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 편리한 계산 시스템이다. 계산대에 있는 QR 팻말에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슬쩍 비추기만 하면 결제 완료. 현금 한 장, 카드 한 장 없이 5초 만에 장보기가 끝난다.


망고를 품에 안고 싱글벙글 집으로 돌아왔다. 겨우 과일 하나 사려던 길에, 손수레부터 트럭, 방수포 좌판, 그리고 정찰제 가게까지. 이 도시가 물건을 파는 온갖 방식을 죄다 구경한 셈이었다. 늘 무심히 지나치던 골목도 마음먹고 들여다보니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았다.


그렇게 원정의 전리품인 망고를 깨끗이 씻어 깎아 맛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끝물이라 그런지 맛이 없어도 더럽게 없었다. 온 동네를 헤맨 보람이 무색하게 말이다. 역시 인도 망고의 제철은 한여름이다. 팔월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 시리즈는 제가 인도에 갈 때마다 이어집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면 구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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