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를 바라보는 내 태도에 대한 반성과 고찰
한때 내게 인도는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가 전부였다. 혹은 대학교 동기들이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요즘 인도가 핫하구나." 생각했던 정도. 딱 그만큼이었다. 신비롭고 영적인 무언가가 있고, 요가와 명상을 하며, 수행자의 태도를 갖춘 듯한 나라. 그런 막연한 동경이 다였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남편, 즉 인도 출신 남자와 결혼하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LA에서 잠시 머무르던 시절, 다운타운에서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그와 데이트를 몇 번 했다. 여러 번 만나다 보니 사람이 괜찮다 싶어서 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그렇게 인도라는 나라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내 삶으로 훅 들어왔다.
쉽지 않았던 적응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느 로맨스 소설의 도입부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은 전혀 딴판이었다. 지금도 벵갈루루의 충격적인 첫인상을 잊지 못한다. 꽤나 힘들었다. 원체 깔끔을 떠는 사람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뭐니뭐니해도 음식이었다. 내 입맛에는 하나같이 너무 맵고 또 자극적이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인도 음식 적응은 포기했다.)
우선 오픈 마인드로 부딪혀 보자며 벵갈루루 이곳저곳을 가 보기도 하고, 음식도 이것저것 먹어 보기도 했다. 얄궂게도 그때마다 아프거나 탈이 났다. 자기 변호를 좀 하자면 여기서 두세 시간짜리 차멀미에 시달려 보고, 서너 배로 독하고 아픈 감기에 걸려 보고, 응급실을 한두 번 드나들고 나면 그렇게 방어적으로 변하기도 어렵지 않다. 남편의 나라라는 이유로 인도를 무턱대고 좋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랬던 내 마음이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결혼식 준비를 하며 여러 사람과 부대끼고, 얼굴을 익혔다. 남편의 이모와 이모부들, 친남매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촌 동생과 누나들. 매일같이 보는 메이드와 헬퍼들. 오로지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선뜻 도움의 손길을 건네던 낯선 이들. 유쾌한 미소로 사진 한 번 찍자며 다가오던 아이들. 수줍게 바라만보다가 내가 건넨 농담에 혼자서 씩 웃곤 하던 사람들.
그러다 보니 시나브로 이 나라와 사람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인도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타지마할도, 명상도, 요가도 아니었다. 결국 사람이었다.
남편은 늘 내 글에 잔소리를 했다
온라인카지노에 인도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 남편은 처음부터 걱정이 많았다. 더럽고 부정적인 이야기는 쓰지 마라. 사람들의 선입견을 자극하지 마라.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인데 왜 못 쓰게 하지? 내가 겪은 걸 쓰겠다는데 왜 이렇게 방어적인가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평소 궁금했던 걸 물었다. "왜 인도에는 좋은 소식도 많은데, 세상 언론들은 늘 강간이나 범죄, 재해 같은 것만 보도하는 걸까?" 남편의 대답은 이랬다. 인도에 대한 케케묵은 프레임 때문이라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면, 지배받는 쪽을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질서하고 미개한 사람들'로 그려야 하니까. 그래야 '우리가 다스려 주는 게 곧 도움이자 문명'이라는 논리가 성립하니까. 그렇게 200년 가까이 선진국의 교과서와 신문에 깔려 있는 인도에 대한 이미지는, 독립 후 79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흔이 이 나라 곳곳에 짙고 깊숙이 배어 있다.
인도가 영국의 GDP 총량을 넘어선 데다, 최근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4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뉴스는 해묵은 프레임에 잘 들어맞지 않아서인지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다. 대신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건 늘 사건과 사고다. 비단 영국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한국 뉴스에 등장하는 인도 역시 대개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 역시 뜨끔했다. 남의 프레임을 흉볼 처지가 아니었다. 처음 와서 이 나라의 현실을 마주하고선 더럽다고 도끼눈을 떴고, 하마터면 그걸 그대로 글로 옮길 뻔한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남편의 잔소리는 과민함이 아니었다. 그 프레임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의, 아주 오래된 피로감이었던 것이다.
판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록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왕과 서커스>라는 소설이 있다. 네팔로 취재를 온 어느 저널리스트의 이야기인데, 가볍게 집어 들었다가 전혀 다른 질문을 안고 바카라을 덮었다. 네팔군 준위 '라제스와르'와 동네 소년 '사가르'의 말에는 날카로운 뼈가 있다. 외부인이 마치 뭐든 다 안다는 듯한 얼굴로 이곳의 비참한 생활을 보도하는 것이 싫다던, 우리의 불행을 당신들의 돈벌이로 이용하지 말라던 그 말.
실토하자면, 인도에 대해 여과 없이 투덜대는 글을 딱 한 번 쓴 적이 있다. 얼마 전 그 글을 조용히 지웠다. 이 나라의 다름을 내 조회수의 땔감으로, 감정을 배설하는 쓰레기통으로 쓰고 싶지는 않다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인도가 원치 않게 짊어지고 가야 했던, 그 200년짜리 프레임에 벽돌 한 장을 더 얹는 일이 될 테니까.
나는 인도에서, 그리고 이 온라인카지노북 <뱅갈루루에 사는 한국인>에서 그 '외부인'이 되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도 되도록 인도의 새롭고 흥미로운 구석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어디에서도 소개되지 않는 색다른 얼굴을 담으려 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오해는 마시길. 여전히 답답한 구석은 있다. 사실은 다 좋은 곳이라고 미화할 생각도 없다. 다만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고 싶다. 띄우지도 깎지도 않고, 그냥 여기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라고. 덮어놓고 마음을 닫는 대신, '이렇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이래야만 했던 이유는 뭘까'라고 한 번 더 사유해 보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주어가 '인도'일 때와 '나'일 때는 전혀 다른 글이 된다. "인도는 더럽다"와 "그날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는 전혀 다른 문장이니까. 앞의 것은 판정이고, 뒤의 것은 기록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인도가 어떤지, 혹은 그런 선입견이 깨진 나라가 있는지 궁금하다. 처음엔 오해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전혀 다르게 보이게 된 무언가 말이다.
여러분은, 인도라는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