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귀신이 산다고 하면 요즘 사람들은 으스스한 이야기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불을 끄고 혼자 들어갔는데 거울 뒤에서 귀신이 나타난다든가, 변기 안에서 손이 올라온다든가 하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에게 화장실에 귀신이 산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집 안 곳곳에 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부엌에는 조왕신이 있었고, 집터에는 터주가 있었으며, 대문에는 문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사람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집에 화장실이라고 신이 없었을까? 물론 있었다. 뒷간에도 그곳을 지키는 신이 있었다. 바로 측신(厠神)이다.
측신은 말 그대로 뒷간을 관장하는 신이다. 지역에 따라 측간신, 뒷간귀신, 변소각시, 측신각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대체로 여성의 모습으로 전해지는데 성격은 그다지 온순하지 않았다. 사납고 노여움을 잘 타는 존재로 여겨졌고, 뒷간에서 함부로 행동하면 측신의 노여움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궁금하다. 왜 하필 뒷간에 이렇게 무서운 신을 두었을까?
옛날의 뒷간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실과는 상당히 달랐다. 집 안에 깔끔하게 자리 잡은 공간도 아니었고, 대개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따로 만들어졌다. 바닥에는 깊은 구덩이가 있었고 밤에는 어둡고 위험했다. 어린아이가 빠지거나 사람이 다치는 사고도 생길 수 있었다. 그러니 뒷간에서는 지켜야 할 것이 많았다. 장난을 치지 말아야 했고 함부로 행동해서도 안 됐다. 또한 문 앞에서는 헛기침을 해서 자신을 왔음을 알려야 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뒷간에 혼자 가는 것 자체가 무서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이런 위험을 오늘날처럼 ‘안전사고’라는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뒷간에서 탈이 나면 측신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장소에 신이 있다고 믿음으로써 그곳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도록 했던 셈이다.
측신을 달래는 방법도 지역에 따라 다양했다. 뒷간에 음식을 차려놓기도 했고, 변소를 새로 만들 때 탈이 없기를 바라며 간단한 의례를 하기도 했다. 뒷간에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측신에게 빌기도 했다. 그렇다고 측신을 단순히 ‘무서운 귀신’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집안의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였다. 잘 모시면 집안을 지켜주지만 함부로 대하면 탈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였다. 뒷간에도 주인이 있었던 것이다.
측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요즘 사람들에게 익숙한 작품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주호민의 웹툰 《신과 함께》다. 작품 속에는 성주신과 조왕신을 비롯해 여러 가택신이 등장하고 그 가운데 측신도 나온다. 그러니 《신과 함께》에서 만나는 측신은 작가가 재미를 위해 갑자기 만들어낸 귀신만은 아니다. 실제 우리 민속신앙에서 전해 내려오던 존재를 작품 속으로 불러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만화나 영화에서 만나는 귀신 가운데에는 이렇게 오래전 사람들의 믿음에서 출발한 존재도 있다.
그런데 측신 이야기를 찾아보다 보면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난다. 제주에서는 조왕신과 측신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조왕신은 부엌을 지키는 신이다. 음식을 만들고 불을 사용하는 곳을 관장한다. 반면 측신은 변소를 지킨다. 한쪽은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고 다른 한쪽은 배설물을 처리하는 공간이다. 서로 가까이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두 공간을 옛사람들은 신들의 관계로 표현했다.
생각해보면 꽤 재미있다. 오늘날 우리는 부엌과 화장실을 위생이라는 기준으로 구분한다. 음식을 만드는 곳과 배설물을 처리하는 곳은 깨끗하게 분리해야 한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그것을 신들의 영역으로 구분했다. 부엌에는 조왕신이 있고 뒷간에는 측신이 있으니 두 영역이 섞이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가 지금 위생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공간의 구분을 옛사람들은 신앙과 금기의 언어로 설명했던 셈이다.
이렇게 보면 측신은 단순히 ‘화장실 귀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아깝다. 그 안에는 옛사람들이 뒷간을 바라보던 생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뒷간은 더러운 곳이었다. 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누구나 매일 이용해야 했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에도 신을 두었다. 그리고 그 신을 두려워하면서 뒷간에서 지켜야 할 여러 규칙을 만들었다. 지금은 화장실에 들어가 불을 켜고 문을 닫으면 그만이다. 측신에게 인사를 할 필요도 없고 음식을 차려놓을 필요도 없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물이 내려가고 우리가 남긴 흔적은 눈앞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에게 뒷간은 그렇게 간단한 공간이 아니었다. 뒷간에도 주인이 있었다. 그 주인은 우리가 함부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꽤 까다로운 성격의 여자 귀신이었다. 그러니 옛날 뒷간에 갈 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조심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측신이 보고 있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