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사람들은 똥을 어디에 눴을까?

by크눌프

요즘은 집에 화장실이 없는 집을 상상하기 어렵다.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화장실은 당연히 집 안에 있다. 문을 닫으면 나만의 공간이 된다. 밤에 가고 싶으면 그냥 일어나서 가면 되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없다. 그런데 불과 몇십 년 전 서울의 모습은 지금과 꽤 달랐다. 특히 산비탈이나 하천 주변에 만들어진 판자촌에서는 집 안에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여러 가구가 하나의 공동화장실을 함께 사용했다. 청계천 주변 판자촌에도 공동수도와 공동화장실이 있었고, 당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도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꽤 불편한 생활이었다. 화장실에 가려면 일단 집 밖으로 나가야 했다. 밤늦게 화장실에 가는 것도, 비가 쏟아지는 날 화장실을 찾는 것도 지금보다 훨씬 번거로웠을 것이다. 아침이면 사람들이 몰렸을 테고, 여러 집이 함께 사용하는 만큼 청소와 관리 문제도 생겼을 것이다.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가끔 만나는 ‘골목 끝 공동변소’라는 장면은 단순한 문학적 상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이 하나 생긴다. 그 많은 사람들의 똥은 어디로 갔을까? 조선시대 한양에서는 엄행수 같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분뇨를 치웠다. 그리고 그것은 농촌의 밭으로 가서 거름이 되었다. 그렇다면 1960~70년대 서울의 달동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까?


이 질문에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답하기 어렵다. 당시 서울의 모든 공동화장실이 똑같은 방식으로 관리된 것도 아니었고, 지역과 시기에 따라 분뇨를 처리하는 방법도 달랐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 당시 서울에는 지금과 같은 하수도 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70년 서울의 하수도 보급률은 27.9%에 불과했다. 같은 해 상수도 보급률이 85.6%였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상당하다. 물은 점점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지만, 사용한 물과 분뇨를 밖으로 내보낼 시설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쓰고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사라지는 과정’ 자체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그래서 공동화장실은 단순히 불편한 시설 하나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당시 서울의 주거 문제와 위생 문제, 하수도 문제가 한꺼번에 모여 있었다. 집을 지을 때 화장실까지 만들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도시가 그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서울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도시였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왔지만, 그들을 받아들일 집은 충분하지 않았다. 산비탈과 하천 주변에는 판잣집이 늘어났고, 좁은 골목 사이로 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섰다. 집 한 채에 화장실 하나를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가구가 하나의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계속 공동화장실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서울의 모습은 빠르게 변했다. 1970년대부터 변소개량사업과 하수도 시설 확충이 진행되었고, 정화조를 이용한 수세식 변기도 점차 보급되었다. 집 밖에 있던 변소가 조금씩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아파트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변화는 더욱 빨라졌다. 욕조와 세면대, 변기가 한 공간에 갖춰진 현대적인 욕실이 새로운 주거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집 안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은 사실 꽤 최근에 만들어진 생활 방식이다.


이렇게 보면 화장실의 역사는 단순히 똥을 처리하는 방법의 역사가 아니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았는지, 도시가 얼마나 빠르게 커졌는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민의 위생을 어떻게 관리하기 시작했는지와도 연결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똥이 밭으로 갔다. 한양에서는 엄행수 같은 사람이 그것을 모아 농촌으로 보냈다. 그런데 수백 년이 지나 서울의 달동네에서는 공동화장실과 하수도, 분뇨 처리 시설이 새로운 문제로 등장했다. 똥을 처리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은 사람들이 갑자기 똥을 싫어하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농촌에서는 똥을 밭으로 돌려보내면 됐다. 도시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여 살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물을 공급해야 했고, 오염된 물을 밖으로 내보내야 했으며, 분뇨를 처리할 시설도 필요했다. 도시가 커질수록 똥 문제도 커졌다. 결국 화장실은 개인의 생활공간인 동시에 도시의 기반시설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집 안의 화장실에서 문을 닫고 혼자 볼일을 본다. 골목 끝 공동변소에서 차례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화장실에 갈 필요도 없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물이 내려가고, 똥은 눈앞에서 사라진다. 너무 당연해서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 누군가에게는 골목 끝 공동변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었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좁은 집에서 화장실만큼은 집 밖에 있었고, 밤이면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집 안의 화장실도 꽤 재미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그곳에는 서울이 농촌에서 거대한 도시로 변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집이 늘어나고, 공동화장실이 생기고, 하수도가 놓이고, 마침내 화장실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지금 너무 당연하게 사용하는 화장실은 서울이 얼마나 빠르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작은 역사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매일 화장실 문을 닫는 순간에도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청계천 판자촌 공용화장실.jpg1970년대 서울 청계천 판자촌 공용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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